(이기문의 세상보기)백년지대계 교육 가능할까?

  • 등록 2007-11-21 오후 4:10:25

    수정 2007-11-21 오후 4:10:25

[이데일리 이기문 칼럼니스트] ‘BBK주가조작’, ‘삼성떡값’ 등 최근 신문 지면을 채우는 뉴스 들은 우리사회의 심각한 ‘도덕성의 부재’를 실감하게 한다. 도덕성 그 자체를 유지해야 하는 종교계, 교육계 등의 도덕 불감증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조계의 도덕 불감증도 중증이고, 관료사회, 재벌 등을 포함한 경제계, 언론계, 노동계 등을 포함해 모두 중증에 걸려 있다. 시민단체의 도덕 불감증도 이제는 심각하다.
 
그런데 도덕성 부재문제와 관련 더욱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이것이 교육계에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입시문제 유출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번 김포외고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그 구조적인 문제점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비단 김포외고 입시와 관련된 학생들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 학생들이 받은 충격을 생각하면 걱정이다. 상상하지도 못한 입시문제가 돈 몇 푼에 의해 유출되는 나라, 그리고 유출된 입시문제를 아무런 도덕적 저항없이 받아들였던 문제의 학생들, 그리고 내게도 기회가 없어 입시문제를 보지 못한 것일 뿐 그와 같은 기회가 나에게도 온다면 역시 입시문제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번 입시문제 유출사태를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 교육계가 그 동안 지향해온 가치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19일 경기교육청은 이번 김포외고의 최종 합격 취소자와 향후 대책을 발표하며 앞으로 특목고 학원 감사에 나선다고 했다. 또한 20일 서울시교육청은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에 따른 학원 설립·운영자의 책임을 물어 해당학원에 대해 등록말소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사설학원이 입시문제 사전유출 사건에 개입돼 등록말소 처분을 받은 것은 강력한 처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해당 학원은 명의를 변경하고 대표자를 변경하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다른 이름의 학원을 운영할 수 있어 문제가 근원적으로 치유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불합격 처분을 받은 학생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도덕성의 저항감 없이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문제를 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합격처분의 취소처분은 아주 심각하고 중대한 상처를 그들에게 안겨 준 것으로 보인다. 설령 해당 학부모들이 불합격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승소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어쩌다 입시문제를 본 것이 경미하다고 판단해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간이 지나 있어 승소의 의미는 반감돼 있는 상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향후 대책이나 법적 조치라는 것도 제2, 제3의 김포외고 사태를 막기에는 한없이 역부족으로 보인다. 특목고 입시부터 학사관리까지 깊이 있는 진단과 대책마련은 물론이고 입시과열을 불러일으키는 대한민국 교육 환경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되짚어 보고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 사건의 근본원인은, 좀 더 많은 수강생을 끌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학원측과 학원장이 건네준 검은 돈에 양심을 팔고 시험지를 유출한 교사들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넘어가기에는 그 파장이 한없이 크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는 특목고 입시 경쟁은 진정한 교육의 이념에 초점을 두지 않고 경쟁 위주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법적인 잘잘못을 가려 이번 사태를 빚은 이들에게 ‘처벌’을 주고 마무리 하는 식의 임시방편적 해결방법 만으로는 이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의 구조적인 문제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이 같은 일이 감히 다시 일어나지 않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경쟁을 유도하되, 교육의 이념이 제대로 배태돼 있는 교육의 현장을 만들어가야 할 시기다. 그 근본이 도덕교육이다. 도덕성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주는 보편적 가치이며, 법은 도덕의 최소한에 불과하다는 것과 도덕적 가치관이 사회를 움직일 때 진정한 경쟁력은 나오는 것임을 깨우치게 해야 한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교육은 백 년을 내다보는 큰 계획)라 했다. 혹자는 한국에서 교육 정책은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조삼모사' (朝三暮四)가 된 지 이미 오래라고들 하지만 ‘교육의 힘’에 우리는 아직도 그 실오라기 같은 기대를 저버리기는 힘들다. 바른 도덕 교육을 통해 성장한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의 ‘교육’은 누가 좋은 학교를 가느냐의 단기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에 그쳤다. 하지만 진정한 교육은 총량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으면서 각자의 전문직 사회에 미치는 도덕성의 총량이 합쳐졌을 때 우리 사회는 살만한 사회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에서 도덕불감증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자라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욕이다. 아이들이 받은 큰 상처를 보듬어 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대한민국 교육이 살아 있는 교육이 되기 위한 도덕교육의 부활은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기문 변호사(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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