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릴러, 빠져들기엔 뒷심이 모자라

‘추격자’ 성공 이후 잇달아 제작
‘핸드폰’ 62만명 등 예상 외 부진
“이야기 푸는 기술 아직 부족해”
  • 등록 2009-03-19 오후 5:37:15

    수정 2009-03-19 오후 5:37:15

[경향닷컴 제공] 지난해 2월 개봉한 <추격자>의 흥행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흥행에 불리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데다, 한국영화가 취약한 스릴러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추격자>는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영화 제작자들을 자극했다.
 
▲ 실종


1년이 지난 올 2월, 3편의 한국 스릴러 영화가 잇달아 개봉했다. 19일엔 또 다른 스릴러 <실종>이 관객을 찾았다. 한국 스릴러의 전성기가 열린 것일까.

◇ 오락인가, 실제인가. <실종> = 영화감독과 연예인 지망생 현아는 백숙을 먹으러 한적한 시골마을 판곤의 집에 들른다. 하지만 판곤은 감독을 살해하고 현아를 감금한다. 병들어 거동하지 못하는 노모를 모시고 사는 판곤은 이전에도 살인 경력이 있는 듯 보인다. 판곤은 현아를 성적, 정신적으로 학대한다.

실종된 현아를 찾아 언니 현정이 마을로 온다. 현정은 마지막으로 휴대폰이 통화된 판곤의 집 부근을 서성대지만, 마을 사람들은 판곤을 두둔한다.

<손톱>(1994), <올가미>(1997) 등 1990년대부터 꾸준히 스릴러를 만들어온 김성홍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2007년 전남 보성의 연쇄살인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 추격자 

 
<추격자>가 그랬듯, <실종>도 초반부 범인의 정체를 드러낸 뒤 이야기를 푼다. 스릴러가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무기인 ‘범인 알아맞히기’를 아예 포기한 것이다. 대신 ‘절대악’에 가까운 판곤의 이상 심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판곤은 자아도취에 빠진 예술가형 살인자다. 홀로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작곡도 한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처럼, 판곤도 ‘선천적 악마’로 그려진다. 판곤 역의 문성근은 “가족, 마을, 국가, 법, 윤리가 없는 인물이다. 나만의 쾌락에 빠져 산다”고 설명했다.

<실종>에는 <쏘우> 시리즈가 열어젖힌 ‘고문방 호러’의 영향도 보인다. 공포영화의 하위 갈래로 떠오른 ‘고문방 호러’는 무력하게 감금된 인물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고문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실종>의 현아도 각종 끔찍한 방법으로 학대당한다. 성인 관객조차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표현 수위다. 김 감독은 “영화는 피해자가 겪은 고통의 10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했다. 납치당한 사람의 관점에서 찍으니 관객도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쏘우>는 실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철저한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그리며, <실종>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여기서 <실종>의 관객은 혼란에 처한다. 오락으로 즐기기도, 현실의 반영으로 여기기도 애매해지는 것이다. <실종>의 고문은 잔인하지만, 공포영화 팬이 즐기기엔 충분치 않으며 악당의 매력도 덜하다. 스릴러로 보기에는 긴박감이 떨어진다.


▲ 핸드폰

◇ 한국 스릴러의 오늘은 = 지난 2월 개봉한 <마린 보이> <작전> <핸드폰>의 성적은 어땠을까. 각각 마약, 주식, 휴대폰 분실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였다. 각 제작사들은 <추격자>의 성공을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관객은 냉정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핸드폰>은 62만명, <마린 보이>는 83만명 남짓한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가장 선전한 <작전>조차 146만 관객을 모아 역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호평받은 영화가 왜 실패했을까. 한 영화홍보사 관계자는 “만듦새가 나쁜 건 아닌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뒷심이 없었다. 영화가 중반 이후 차츰 지루해졌다”고 지적했다.

독특한 소재를 찾아냈고, 안정된 기술력으로 영화를 찍어나갔으나, 전체를 조율하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장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졌으나, 아직 장르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낼 만한 ‘장인’은 나오지 않았다. <추격자>의 신인 나홍진 감독은 ‘예외적 존재’일 뿐이었다.
▲ 마린보이
영화계에선 <추격자>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고무된 투자자들이 냉정한 계산 없이 ‘묻지마 투자’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투자사 관계자는 “제작사별로 특색이 없다 보니 비슷한 종류의 작품이 몰려다닌다”며 “투자자들도 자신만의 기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돈을 태우는 형식이라 실패 확률이 많다”고 털어놨다.

강호순 사건 등 흉흉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영화가 묻힌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연쇄살인 뉴스가 더 자극적인데, 굳이 영화관에 가서 스릴러를 볼 필요가 있었겠는가”라고 극장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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