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모녀 살인사건''의 재구성

  • 등록 2008-03-11 오후 4:38:55

    수정 2008-03-11 오후 4:38:55

[조선일보 제공] 일가족의 실종.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연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세 딸과 어머니. 끝내 한강에서 변사체로 모습을 드러낸 유력 용의자.

지난 며칠간 숨가쁘게 진행되던 ‘네 모녀 피살사건’이 10일 일단락됐다. 사건의 중심인 네 모녀와 유력한 용의자가 모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사건을 재구성하고 풀리지 않는 의혹을 정리했다.

◆범죄의 재구성

지난 3일, 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여·47)씨와 세 딸이 연락이 끊겼다는 김씨 오빠의 제보였다.

김씨의 오빠는 실종 신고를 하기 일주일 전쯤인 2월 26일 전화를 받지 않는 동생이 걱정돼 집을 찾았다. 그러나 집안은 깨끗이 정돈돼 있었다. 딸들 방엔 컴퓨터도 켜져 있었다. ‘잠깐 나간 모양이구나.’ 그는 불안한 마음을 지웠다.

그렇게 일주일. 그러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오빠는 동생이 운영하는 서울 갈현동 참치횟집을 찾았다. 그가 종업원에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사장님이 출근하고 있지 않다”는 말뿐이었다. 오빠는 바로 마포 경찰서에 ‘가출 신고’를 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수사 결과 경찰은 몇 가지를 밝혀낼 수 있었다.

첫째, 김씨의 둘째 딸(19)과 셋째 딸(13)이 지난 2월17일 오후 5~6시쯤 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집으로 귀가했다. 김씨 역시 이날 자정 무렵 식당 직원들에게 “3~4일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이를 통해 실종 시점을 2월18일로 잡았다.)

둘째, 김씨 집에서 김씨의 혈흔을 발견했다. 더욱 경찰의 주목을 끈 것은 아파트 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장면. 지난 2월18일 밤 9시50분에서 10시30분 사이 아파트 1층 현관에 설치된 CCTV에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성인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여행가방 4개와 이불보, 여행용 손가방 등을 5차례에 걸쳐 카트에 싣고 나가는 장면이 찍혔다. 이 남자가 처음 카트를 들고 들어간 시각은 밤 9시50분, 그리고 6분 뒤 여행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 남자는 이후 들어갔다 나오기를 4번 더 반복했다. 김씨 집은 7층이었다.

두 번째 사실로 경찰은 단순 가출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경찰은 김씨 모녀의 위치 추적에 더 힘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이웃 주민의 중요한 진술을 확보했다. “(CCTV가 찍힌 다음날) 한 남자가 아파트 앞에 흰색 SM5 차량을 세워두고 커다란 여행가방들을 싣는 모습을 봤다"는 것.

확인 결과 그 차는 실종된 김씨 소유였다. 이 승용차는 이웃 주민이 진술한 때와 같은 날인 19일 오후 3시쯤 전남 장성 구간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CCTV에 포착됐다. 그리고 바로 하루 뒤인 20일 오후 8시쯤. 다시 김씨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한 남자가 이 차를 세워놓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역시 네 모녀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됐다. 확인 결과 이들의 휴대폰이 18일 밤늦게, 서로 다른 시간에 전원이 꺼진 것으로 밝혀졌다. CCTV에 한 남성이 처음으로 등장한 날이다. 유일하게 첫째 딸의 휴대폰만 19일에 꺼졌고, 위치는 전남 화순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아울러 김씨의 주변 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김씨가 전직 프로야구 선수인 이호성(41)씨와 각별한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찰은 이씨가 평소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거의 매일같이 들렀으며, 김씨도 "이씨와 재혼하겠다"는 말을 주변에 공공연히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식당 종업원들 역시 "CCTV에 찍힌 남자와 이씨의 걸음걸이와 인상 착의 등이 비슷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첫째 딸 친구들의 진술은 이씨가 ‘네 모녀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이들이 실종한 것으로 알려진 18일 오후 첫째 딸이 친구들에게 “엄마가 결혼할 아저씨랑 여행 가기로 했다”고 말한 것을 확인한 것.

경찰은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지난 7일,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씨는 90년대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면서 여러 차례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는 등 야구 스타로 인기를 누렸지만, 은퇴 후 사업에 실패해 사기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다.

8일 이씨가 일산에 머물고 있다는 첩보를 토대로 수사망을 좁혔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출국금지 조치한지 3일이 지난 10일, 끝내 경찰은 이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오전 10시 이씨에 대해 수배전단을 뿌렸다. 이씨를 공개수배한 것. 경찰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고 판단해 용의자를 최대한 빨리 검거하기 위해 내린 조치”라면서도 “아직 실종자들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어 ‘실종사건 용의자’로 수배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서울지방경찰청 1개 팀과 광역수사대 1개 팀 등을 포함한 66명의 수사팀을 꾸리는 등 수사팀을 확대했다.

사건은 급진전했다. 같은 날 오후 3시8분쯤 한강 반포대교 북단(한남대교 방향으로 400m 떨어진 지점)에서 친구 3명과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있던 신모(36)씨가 시신 한 구를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5분 뒤 경찰이 출동했다. 지문 감식 결과, 시신이 이호성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견 당시 시신에서는 공중전화카드 3장과 휴대폰 배터리, 마스크가 같이 발견됐다.

같은 날 밤 김씨 모녀 4명 역시 전남 화순의 한 공동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곳은 이호성 부친 묘소가 있는 공동묘지였다. 김씨 모녀 시신은 큰 가방 4개에 각각 담긴 채 땅 속에 묻혀 있었으며 부패 정도는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치밀한 계획

경찰 수사는 이호성씨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웠던 것을 밝혀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이씨는 김씨 모녀가 오랫동안 없어져도 주변의 의심을 받지 않게 함께 여행을 떠나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 김씨나 큰딸 등은 사건 발생일인 18일 식당 종업원이나 친구들에게 “사나흘 정도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했다.

범행 이틀 뒤인 20일 오후 4시쯤, 이씨는 김씨의 휴대전화를 사용, 식당 직원 휴대전화에 ‘주말에 식당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이 때문에 김씨 가족과 식당종업원들은 실종 신고를 뒤늦게 했다.

범행 현장인 김씨의 마포 아파트에서도 이씨가 치밀한 수법을 동원한 것이 드러난다. 김씨 집 방에 있던 침대의 시트 커버가 벗겨진 채 사라지고 매트리스 위에는 잉크 자국이 어지럽게 묻어 있었다. 경찰은 이를 용의자 이씨가 김씨 집에서 피해자들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침대 시트커버에 묻은 피가 스며들어 침대 매트리스에 묻자 이를 감추기 위해 시트커버를 걷어내고 잉크를 뿌린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 모녀 4명의 시신 암매장도 사전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범행 바로 다음날은 2월 19일 새벽 인력시장에 전화를 걸어 인부들을 모집했다. “아버지 묘의 비석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은 이날 전남 화순군 동면 청궁리의 교회 공원묘지에 구덩이를 팠다. 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다.

◆풀리지 않는 의혹들

▲돈 때문에 모녀 4명 살해?

경찰이 범행 이유로 꼽는 것은 금전 문제다. 사기 혐으로 수배돼 신용불량자 신세였던 용의자 이씨가 금전 문제를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11일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사건 발생 전 김씨와 함께 은행으로 가 김씨의 예금 1억7000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하게 한 뒤 이 돈을 빌려간 것으로 확인됐다. 1억7000만원은 김씨가 사는 서울 마포구 창전동 아파트의 전세금 중 아직 치르지 않은 잔금의 액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말 이씨로 추정되는 40대 남성과 함께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 전세 2억원에 아파트를 계약했다가 이 아파트가 가처분 신청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중 3000만원만 우선 집주인에게 건넨 뒤 나머지 1억7000만원은 올해 2월20일까지 지급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바로 이 돈을 이씨가 김씨를 설득해 빌린 것. 이씨는 범행 전후로 지인과 형, 또 다른 내연녀로 추정되는 여성 등에게 최대 몇 천 만원에 이르는 돈을 각각 보냈다. 지난달 18~19일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에게 현금 5000만원을 비닐봉지에 담아 주며 “A씨 법인 통장에 임금해 달라”고 요청했고 2월 8일엔 5000만원이 담긴 통장을 건네며 송금을 부탁한 것.

이에 대해 경찰은 이씨가 여러 군데서 빚을 지고 있다가 김씨에게서 빌린 돈으로 우선 `돌려막기'를 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금 지급일이 다가오면서 김씨로부터 "잔금을 지불해야 하니 빌린 돈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리게 된 이씨는 결국 김씨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해온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다른 돈 문제 등도 많이 얽혀있는 이씨가 이 돈만을 문제로 김씨 일가족 모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것은 범행 동기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아직 김씨가 인출한 1억7000만원의 행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잔혹성

경찰 수사결과 속속 드러나는 정황에 따르면 이씨는 실종사건 당일 김씨의 집에 찾아가 김씨와 두 딸을 살해하고 뒤이어 큰 딸까지 찾아가 만나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시신발굴 결과 김씨와 두 딸은 실내복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돼 이들이 집안에서 한꺼번에 변을 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집안에 있던 컴퓨터조차 끌 새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씨가 '빚 독촉'을 하던 김씨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해서 굳이 어린 자녀까지 한꺼번에 살해했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또 이씨는 범행 뒤 시신을 차량에 실은 채 대담하게 서울 도심으로 진입해 당시 외출했던 큰 딸까지 찾아나서는 집요함을 보였다.

그러나 경찰은 이와 같은 범인의 집요함과 잔혹성을 설명할 근거를 마땅히 대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김씨를 살해하는 장면을 자녀들에게 들키자 이들도 함께 살해했거나 또는 김씨에게 돈을 빌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CCTV 화면 분석, 공범가능성 남아

공범 여부도 풀리지 않는 의혹 중 하나다. 경찰은 김씨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통해 실종 당일인 지난달 18일 밤 김씨의 집에서 대형 여행가방을 실어내는 남성과 이틀 뒤인 20일 오후 김씨 아파트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달아난 남성 등을 확인했지만 이들이 동일인물인지는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약간 뚱뚱하고 체격이 큰 편인데 20일 주차장에서 달아난 남성은 호리호리한 체격"이라며 "두 사람이 동일인물인지 계속 분석 중이다"고 말했다.

실종사건 당일 밤 30대 남성이 김씨 아파트 앞에 승합차를 세워두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다는 주민 진술도 있다. 이 목격자는 "아파트 앞에 흰색 승합차가 주차된 것을 봤는데 운전자는 30대 남성이었고 차량 트렁크에는 이민용 여행가방이 놓여 있었다"고 말해 이 남성의 정체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씨의 '허술한' 알리바이

치밀한 범행 계획만큼 허술한 점도 있다. 이씨는 범행에 앞서 시신을 넣을 비닐과 성인이 들어갈 만한 대형 가방을 미리 준비했을 만큼 치밀한 범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김씨 일가족이 실종될 경우 가장 먼저 의심 받을 사람이 자신임에도 정작 자신의 알리바이는 만들지 않았다.

이씨는 이미 지난해 김씨와 함께 인근 부동산을 찾아가 부부행세를 하며 아파트 전세계약을 맺으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 번호도 남겼다. 또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에도 자주 찾아가면서 종업원들과도 알고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씨의 딸들은 이씨가 자신의 어머니와 재혼할 것이라고 주변에 알리기까지 했다.

이처럼 이미 김씨 주변에서는 이씨의 존재를 알만큼 아는데도 불구하고 이씨가 별다른 알리바이를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도 역시 풀리지 않는 의문 가운데 하나다.

▲이씨, 왜 자살했나

이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경찰은 이씨에 대해 공개 수배에 나서자 이씨가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건 20일이 넘도록 경찰의 추적을 피해왔던 점, 오랜 수배 생활로 도피 생활로 익숙했던 점으로 미뤄볼 때 이씨가 왜 갑작스레 자살을 선택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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