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공적자금 모럴헤저드 新2題

  • 등록 2002-06-28 오후 6:10:57

    수정 2002-06-28 오후 6:10:57

[edaily 안근모기자] "공적자금 69조 회수불능" "공적자금 책임자 가려라" "69조 국민부담 승복 못한다" "뭐, 국민더러 공자금 메우라고?" 28일 신문 주요면을 장식한 제목들입니다. 막상 얼마나 부담을 짊어져야 할 지 계산이 나오니 새삼 놀라운 겁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도덕` 냄새를 맡기 어려운 얘기들이 여전히 들립니다. 어차피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이 `사적 이익`을 좇는 것이라지만.. 경제부 안근모기자의 두 가지 얘기를 들어 보시죠. 강금식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의 직업 선택권 행사 지난 4월말∼5월초 사이 경제계에서 두 가지 큰 반란(?)이 있었습니다. 4월30일 하이닉스 이사회가 매각 MOU를 부결 시킨 것과, 5월3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들이 강금식 위원을 민간위원장으로 호선한 것입니다. 둘 다 민간부문이 정부 생각 또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결정을 내려버렸기에 모두들 `반란`이라고 이름 붙였죠. 그 반란의 한 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강금식 공자위원장이 28일 돌연 사표를 낸 것입니다. 오는 8월초 있을 보궐선거에 군산지역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는 게 이유라고 합니다. 위원장직에 오른지 불과 한 달만입니다. 시비거리로 삼으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강 위원장이 8.8 보선 출마를 꿈꾸고 있었으면서도 위원장직을 마다않고 받았다는 점입니다.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당연히 당시에 있었죠. 하지만 정부에 본때를 보여줬던 민간위원들 조차 그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경제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또는 `법률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돼 있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의 위원 자격규정을 고칠때가 된 것인가요. `한화컨소시엄은 대한생명을 인수할 자격이 있다` `공적자금 손실 69조원을 재정과 금융기관이 분담한다` 그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설립이후 가장 굵직한 안건들을 주재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위원회를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에도 두 안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량은행`의 공적자금 손실 분담 불가론 외환위기 이후 들어 우리나라 은행들을 나누는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로 불리던 대형 시중은행 그룹은 `불량은행` 또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이란 별칭을 얻었습니다. 그대신 국민,주택,신한,하나,한미은행 등은 `우량은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그런 우량은행들이 어제부터 볼멘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반발`이란 표현이 그들의 투정에 붙여졌지요. `공적자금 손실을 왜 우리같은 우량은행에까지 떠넘기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적자금 받지도 않았다` `우리는 공적자금 고스란히 다 갚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럼 4년전으로 돌아가 그 우량은행들의 주가를 볼까요.(액면가는 당연히 5000원이죠) 국민은행 2920원(98년 9월23일) 주택은행 2960원(98년 9월23일) 신한은행 2750원(98년 9월15일) 하나은행 3450원(98년 9월25일) 한미은행 2750원(98년 9월25일) 내친 김에 그 이전의 역사를 들춰보죠. 이른바 `조·상·제·한·서`는 각각 `주거래`란 제도를 통해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들을 나눠 거래를 맡았습니다. 압축성장이란 기치아래 얼마되지 않던 금융자원을 배분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고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커졌습니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소득이 생긴 국민들은 내집마련을 위해, 가게를 구하거나 늘리기 위해 싸구려 이자를 감수하며 적금을 들었습니다. 그래야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집도 담보로 잡혀야 가능했습니다. 한 둘씩 보증을 세우는 건 기본이었죠. 그래서인지 `우량은행` 창구에는 항상 서민들로 붐볐고 `고객`들에게 은행원은 동사무소 직원처럼 상전이었습니다. 높은 이자로 자금을 끌어 들여 훨씬 더 높은 이자로 돈을 굴린 곳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들 모두 대형 산업자본(또는 재벌)을 키울 부담이 적었기에 나름대로 안전한 곳을 고를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4년전. 압축성장의 찌꺼기가 쌓이고 쌓인 `조상제한서`는 버티고 버티던 끝에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나라금고에 IMF 돈이 들어왔듯이 텅 빈 그들 은행 금고엔 공적자금이 들어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우량은행`의 금고에는 봉급을 압류하고 집을 경매에 부쳐 거둬들인 서민, 중소기업들의 대출금과 함께 `불량은행`에서 쫓기듯 도망쳐 온 뭉칫돈 예금이 쌓였던 거죠. 그리고 얼마 뒤. 공적자금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불량은행으로도 많진 않지만 예금이 들어가고 이 돈이 다시 대출로 공급됐습니다. 혈맥이 기력을 찾기 시작하자 경제에 활기가 다시 돌았고 고꾸라졌던 성장률과 주가가 함께 치솟았습니다. 어떤 `우량은행`의 주가는 스무배나 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 말씀 한 마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언제부터 어떻게 우량은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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