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금메달까지 빼앗다니

  • 등록 2002-02-21 오후 7:26:44

    수정 2002-02-21 오후 7:26:44

[edaily] 오늘 다들 흥분하셨죠? 올림픽 금메달이 박탈되는 장면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은 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대국답게 굴어야지. 금메달을 뺏어 가다니..." 부시의 방문과 금메달 강탈. 오늘은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하는 물음을 떠올리게 하는 하루였습니다. 증권산업부 문주용 기자가 "미국"에 대해 한마디 했습니다. 오늘 텔레비전에서 중계한 동계올림픽 경기, 다 보셨습니까. 쇼트트랙에서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가 무난히 1등으로 들어온 후 세레모니를 하다가 갑자기 태극기를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저는 당황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심판들이 라식 수술을 했나? 엊그제까지 이런 파울, 저런 파울을 다 못본체 하더니 오늘은 파울축에도 못낄 것을 이유로 탈락을 선언했습니다.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금메달에 목을 매고 멀리 솔트레이크 시티까지 갔는데, 도시 이름대로 "인심한번 짜다 짜!" 싶더군요. 중계방송이 나간 후 우리 네티즌들이 거세게 반격했습니다. 미국 방송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항의의 글을 일제히 올리고, 설문조사에 몰표를 던지면서 판정의 부당성을 알리려고 분주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미 NBC방송의 인터넷사이트 nbcolympics.com이 실시하는 설문조사에 참가, 압도적인 몰표로 우리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오후에는 메일에 "반칙송"이라며 글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내 생애 봄날은"이라는 요즘 가요를 "내 생애 골드(금메달)는"으로 바꿨더군요. 엊그제 우리를 슬프게 했던 중국의 리자준 선수와 오늘 억지로 금메달을 뺏아간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가 불러야 제 맛이 난답니다. 일부만 소개하죠. "비겁하다 /욕하지마 /더티한 플레이만 /하고는 다녀도 옆에 같이 /엎어진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 반칙처럼 /짧은 경기 /내 반칙 아낌없이 /뽐내려 했건만 심판실격 /선고하는 그 순간/ 내 생에 골드는 간다" 하필이면 오늘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2박3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오늘 우리나라를 떠나는 부시 대통령은 우리에게 귀빈이었습니다. 외교가는 물론이고 증권가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악의 축" 발언이후 놀라기도 했지만 이번 방한에서 국민들은 부시 발언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제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가 떨어뜨린 낙수는 무엇입니까. 언론마다 "부시, 북과 전쟁의사 없다"라며 헤드라인을 뽑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북관을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북과 전쟁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북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요. 이번 방한에서도 우리쪽 희망만 너무 부각됐다는 느낌입니다. 그전, 미국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우리는 너무 낙관적이었습니다. "외교"라는 고도의 정치행위는 "현실"이라는 토양과 이해관계라는 계산법으로 볼 때 하루아침에 서먹한 관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외교당국자는 이걸 너무 믿고 햇볕정책이 계속 미국측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그렇고, 국민들의 지지가 그랬고, 더욱이 냉전의 종식이라는 역사 발전 측면에서 너무나 정당해 보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어땠습니까. 부시 대통령을 축으로 한 미국 공화당 정부의 입장은 얼마나 단호합니까. 옳고 그름의 논쟁을 떠나서 보시죠. 아버지가 CIA에 오래 있어서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부시 입장에선 공산주의자들을 믿는다는 것, 그들과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를 위험천만한 일이라 생각할 만합니다. 평생을 보낸 군대에서, 공산주의자를 "악의 무리"로 교육받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온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다른 공화당 인사들보다는 온건파라 하더라도 그 역시 대결의 논리, 승패의 논리로 무장돼 있는 마당에 어떻게 해서든지 어둠에 있는 "악"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장시간의 정상회담으로도 부시가 대북관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그는 "논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도덕"의 관점에서 북한을 "악"으로 지목합니다. 부시도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도덕적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흑백의 논리가 지배하는 부시의 세계에 대 테러전쟁은 도덕의 전쟁이 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뜻입니다. 도덕이라는 잣대로 보는 사람에겐 논리적 설득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논리가 막히면 생각을 바꾸지만 도덕률은 논리의 변경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판단할 문제로만 볼 뿐입니다. 하지만 언론에 비친 우리 외교 당국자와 통일 당국자는 "결국 부시 정권이 햇볕정책을 지지하게 돼 있다"는 식으로 현실인식의 논리가 바뀌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듯합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막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견제자나 경쟁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유일한 강대국이 자신을 유일 초강대국으로 설정해놓은 현재의 세계구도를 일부러 바꿀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햇볕정책과 대통령에 대해 "용비어천가"만 불러제낀 당국자들은 결국 우리의 맹방을 오해하는 우를 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굳이 오늘 금메달 강탈 사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미국은 비판받을 만 합니다. 우선 미국은 스스로 강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쥐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양이는 쥐를 위협하는 절대 강자입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절대적인 강자일뿐 아니라 실제적인 위협의 대상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무기(카드)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강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할 만큼 자신의 힘을 의심하기 때문에 더 위협적입니다. 미국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이 바로 지구촌에서 견제받을 정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오판을 할 경우 상황은 특정 국가에 한하는 게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위협이 됩니다. 때문에 저는 미국이 지구촌 여론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금메달을 뺏긴 오늘,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지를 다시 한번 짚어봄으로써 지구촌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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