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어느날…김영란법이 바꾼 세상은?

사건 수임 몰리는 변호사들, 공무원·기자 "억울하다"
약속 전엔 밥값하고 확인 아내 새 옷 출처도 의심
2차 술자리·골프접대 사라져..등산객 늘고 더치페이 확산
  • 등록 2015-03-03 오후 7:49:00

    수정 2015-03-04 오전 5:53:12

[이데일리 김정민 최훈길 조용석 기자] 2016년 12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세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공직자와 언론인 교직원 등 직접 대상자 186만 명을 비롯해 300만 명에 달한다.

공직사회 아내 단속 비상

국토교통부에서 근무하는 김 과장은 건설업계 사람들과 약속이 잡히면 분주해진다. 김 과장은 정책 관련 업계 반응을 듣고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업계 사람들과 자주 자리를 갖는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예전보다 챙겨야 할 게 많아졌다. 식사 장소가 정해지면 밥값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밥값 비싼 저녁 자리에서는 ‘더치페이(dutch pay)’를 하기도 한다.

없는 살림에 더치페이를 하려니 속이 쓰리지만 김영란법을 어기면 과태료는 물론 부처에서 별도로 징계를 받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 동문회는 발길을 끊었다. 동문을 통한 인·허가 관련 청탁이 간혹 있어서다. 연말 모임도 조심스럽다. 송년모임은 행시 동기모임과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모임만 가기로 했다.

김 과장은 아내 옷차림에 부쩍 신경을 쓴다. 비싸 보이는 옷이나 장신구를 걸치면 어디서 났는지 확인한다. “마누라 단속 잘하라”는 선배들의 조언 때문이다. 행시 동기인 최 과장은 아내가 최 과장 몰래 선물을 받았다가 들통 나 면직됐다. 아내와 대판 부부싸움을 벌인 최 과장은 이혼 수속 중이다.

법원 검찰 업무폭주에 비명

법원과 검찰은 폭주한 업무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형사처벌뿐 아니라 과태료 부과업무까지 맡은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법조타운은 활기가 넘친다. 법률사무소를 운영 중인 김 변호사는 요즘 신입 변호사 채용을 고민 중이다. 김영란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과 언론인이 잇달아 사무소를 찾으면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정된 김영란법이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취지가 무색하다.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공직자들은 인허가 관련 업무를 주로 맡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항변한다.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라 내부에서 견제가 들어온 것이라고 억울해하기도 한다. 아내가 지인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찾아온 공무원도 있다.

최근 변호를 맡은 기자 A씨는 10년 이상 알고 지낸 대기업 임원과 만나 술 마신 것이 화근이 됐다. 이 임원이 출장 때 현지 면세점에서 사 온 양주를 나눠 마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중에선 8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 고가의 양주였다. 취한 김에 2차, 3차를 달리다 보니 그날 얻어 마신 술값만 100만원을 넘어버렸다.

대기업을 취재하는 언론인은 단골손님이다. 얼마 전 사무실을 찾아온 B기자도 인수합병(M&A) 이슈가 있는 기업을 취재하다 김영란법에 발목이 잡혔다. 해당 기업 고위 임원과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많이 마신 날이 문제였다. 이날 취재한 내용으로 B기자는 특종을 썼지만 돌아온 것은 검찰의 출석 요구서였다. 물 먹은 경쟁사 기자가 앙심을 품고 검찰에 제보한 것이다.

홍보·대관, 술자리 2차·골프 접대 사라져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최 과장은 근래 귀가시간이 빨라졌다. 예전에는 출입기자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2차, 3차로 이어져 새벽에야 귀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요즘엔 술자리 자체가 줄어든 데다 2차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게 다 김영란법 덕분(?)이다. 김영란법은 몇 차례로 나눠 술자리를 가졌는지에 관계없이 접대비 총액이 3만원을 초과하면 100만원 이내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언론사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 일식집이나 한정식집은 손님이 줄어 울상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2만원짜리 코스요리를 내놓고 술은 서비스로 무료 제공하는 곳도 생겼다지만 싼 게 비지떡이다.

통신회사에서 대관과 홍보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 전무는 최근 취미를 골프에서 등산으로 바꿨다. 김영란법은 골프 접대도 규제 대상에 포함한 때문이다. 김 전무는 주로 대학 동창들이나 언론사 간부들과 주로 골프를 쳤다. 대학 동창 중에는 변호사, 검사, 대학교수 등으로 근무하는 이들이 많아 이들만 빼고 약속을 잡기 번거롭다. 언론사 간부들과는 아예 약속을 잡지 않는다.

같이 라운딩한 인사들이 자칫 김영란법에 걸려 과태료를 물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서다. 김영란법에서는 공직자와 교직원, 언론인이 금품을 수수하거나 접대를 받은 경우, 직무와 관련성이 인정되면 100만원 이하에도 2~5배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연간 300만원을 초과해 수수하면 형사처벌한다.

(이 기사는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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