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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점이던 7회말 1사 2,3루. 투수가 좌투수로 바뀐다.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대타 000."
야구선수라면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이다. 이 뿐 아니다. 매 경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려놓고 상황에 상관 없이 꾸준히 경기를 치르는 것은 모든 선수들의 로망이다. 반대의 경우엔... 깊은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감독의 입장은 또 다르다. 이기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조합을 짜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간혹 사(私)적인 감정이 섞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든 부분이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이에 대해 "주전급 15명 정도는 기용에 불만이 없다. 아예 후보인 5명도 그렇다. 그러나 나머지 5명 정도는 다르다. 감독은 결국 그 5명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럼 선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까. 얼마 전 만난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삼성)에게서 한가지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양준혁의 해법이 정답일 수는 없다.
야구는 인생과 닮아서 한가지의 정답만있는 객관식이 아니다. 다만 여러 정답 중 분명 참고할만한 모범답안 쯤은 될 것 같아 소개해보려 한다.
'천하의'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이지만 이 두번의 시즌에선 여려차례 굴욕을 겪어야 했다. 좌투수가 선발인 날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것은 보통이었고 경기 중 교체도 숱하게 있었다.
자존심 강한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답은 간단했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땐 참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였다.
양준혁은 "스스로를 정확히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땐 내가 봐도 못 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감독의 교체 사인이 나오면 즉시 받아들이고 벤치에 돌아왔다. 힘들었지만 더 화이팅을 내려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고 있었다고 여기면 절대 오산이다. 방망이를 집어 던지거나 얼굴을 구기는 대신 가슴 속으로 칼을 갈았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양준혁의 경우 적지 않은 나이까지 거론되며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양준혁이 편견이 정해놓은 한계(나이 등)에 자신을 가둬 두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해법이었다. 양준혁은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노력했고 결국 다시 정상에 섰다.
"기회만 주면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감독이 날 믿지 못한다"는 말은 붙박이로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불만이다.
그러나 양준혁의 말을 듣다보니 진짜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 선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는 당장 눈 앞에 놓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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