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돌아온 작은 거인, 호베르토 카를로스

  • 등록 2008-03-18 오후 5:04:18

    수정 2008-03-18 오후 5:18:51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인간사에서 영원한 것의 존재란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지 않았던가. 제 아무리 화려했던 꽃도 결국에는 시들고, 흥했으면 쇠하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인간이 하는 스포츠인데 축구판이라고 다를 것 없겠다. 최고라 불리던 모든 스타플레이어의 이름 앞에는 어느 순간 ‘과거에’ 혹은 ‘한때’라는 표현이 붙게 된다. 펠레와 마라도나가 그랬고 크루이프와 베켄바우어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마에스트로 지단도 결국은 은퇴했다.

기존의 세력이 샘솟는 새로운 힘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생리다. 한 번 자리를 내주면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되돌아온 ‘작은 거인’의 모습이 반가운 것이다.

8강 대진이 결정된 2007~0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가장 큰 이슈라면 EPL 클럽(맨유 아스날 리버풀 첼시)들의 ‘과반수 차지’와 더불어 터키 페네르바체의 ‘깜짝 생존’일 것이다. 살아남은 클럽 중 유일한 ‘비주류 리그’인데다 이전까지의 ‘꿈의 무대’ 최고 성적이 32강이었으니 이미 새 역사를 창출했다. 16강전에서 UEFA컵 2연패에 빛나는 세비야마저 따돌리며 제대로 ‘검은 말(다크호스)’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 내에서야 입지가 다르지만 유럽의 중심무대에서는 아직 낯선 클럽 페네르바체다. 하지만 그 속에 우리에게 참으로 친숙한 인물이 숨어있다. 작지만 다부진 몸매. 스킨헤드 스타일인데도 귀엽기만 한 외모. 그리고 UFO 프리킥. 짐작할 수 있겠는가. 바로 브라질 왼쪽 풀백의 대명사였던 호베르토 카를로스다.

더 이상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레알 마드리드의 카를로스가 아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11년간 몸담았던 백곰군단을 떠났고 이제는 챔피언스리그 돌풍의 주역 페네르바체의 카를로스다. 8강 진출의 공을 모두 돌릴 수야 없지만 올 시즌 페네르바체의 돌풍에는 확실히 새로 가세한 베테랑 플레이어 카를로스의 도움이 컸다는 평이다. 스테판 아피아(전 유벤투스), 마테야 케즈만(전 AT.마드리드) 등 나름 네임밸류를 지닌 선수들이 있으나 카를로스의 질적 양적인 경험과 비할 바가 아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329경기)가 보유하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비(非)스페인출신 최다출전(370경기) 기록을 빼앗아온 인물이 바로 카를로스다. 단순히 경기 수만 많은 것도 아니다. 자국리그의 성과를 모두 차치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경험만 3번이다. 산전수전 부족할 게 없는 커리어다.

뿐이랴. 브라질 소속으로 출전한 A매치는 자그마치 125회. 이는 AC밀란의 노장 카푸(156회)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요컨대 누구나 동경하는 국가와 클럽에서 10년이 훌쩍 넘도록 베스트로 활약했던 이가 ‘작지만 강한’ 카를로스인 것이다.

2006년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2007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으니 카를로스도 세월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작은 거인’이 잠시 시간을 멈추고 다시 우리 앞에 돌아왔다. 1973년생이니 적은 나이도 아닌데 몸놀림이 여전했으니 놀랍기도 하다.

페네르바체의 당당한 질주와 함께 카를로스의 챔피언스리그 출장기록도 이어지고 있다. 초점이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 라울에 집중돼 인식이 덜할 뿐, 카를로스는 무려 114회나 꿈의 무대를 밟았다. 최다기록 보유자 라울(116회)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유일하다싶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라울의 레알 마드리드는 16강에서 멈췄다. 고로 다가올 8강 두 경기에 카를로스가 모두 출전한다면 동률이 된다. 혹여 페네르바체가 4강에라도 오를라치면? 확실히 구미가 당길 일이다. 축구를 위해 태어난 작은 거인 카를로스의 욕심이 동할 법한 상황이 마련됐다.

페네르바체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직 눈에 익지 않지만 적어도 환한 웃음과 폭발적인 플레이는 변함없었다. 그의 이름을 듣고 얼굴을 보는 자체만도 반갑다. 쉽게 떴다가 급히 지는 선수들이 하도 많은지라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카를로스의 건재함이 더욱 반가운지도 모르겠다./<베스트 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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