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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 등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은 4·3 창원성산 재보궐 선거 운동 지원을 위해 지난달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FC와 대구FC 간의 K리그1(1부리그) 경기를 방문했다.
이날 관중석에는 7000명의 관중이 모였다. 재보궐 선거를 준비하는 각 후보들에게는 당연히 놓칠 수 없는 장소였다. 실제 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정의당, 바른미래당 등 각 후보들이 경기장을 찾아 선거운동을 벌였다.
경기장 밖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상관없다. 문제는 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은 정당명 기호가 적힌 빨간색 점퍼를 입고 관중석으로 들어와 선거운동을 펼쳤다. 구단 관계자들의 만류하는 와중에도 기호를 의미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는 행동을 이어갔다.
축구을 낮게 보는 ‘무시’(無視)인지, 축구에 대해 모르는 ‘무지’(無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K리그가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행동이다.
스포츠는 정치적으로 휘둘려서는 안된다. 그래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은 정치적 의사표시에 대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게 제한한다. 대표적인 예가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3·4위전에서 2-0으로 승리하고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전 미드필더였던 박종우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관중으로부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종이를 들고 경기장을 내달렸다. 단순히 여섯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잠깐 달렸을 뿐인데 문제가 커졌다. 정치적 메시지 전달을 일절 금지하는 IOC는 박종우의 올림픽 동메달 수여를 보류했다. 박종우는 경기 뒤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의 동메달 박탈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 문제는 6개월이나 이어졌다. IOC는 FIFA와 대한축구협회에 박종우 사건의 진상조사서 제출을 요구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우발적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박종우는 FIFA로부터 추후 2경기 출장정지에 벌금 3500스위스프랑(약 41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심지어 박종우는 IOC 징계위원회에 직접 출석해 자신의 행동을 해명했다. 다행히 IOC는 메달을 박탈할 수준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박종우는 메달을 지켰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선 스위스 대표팀의 세르단 샤키리와 그라니트 자카가 벌금 징계를 받았다. 그들은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뒤 ‘독수리 세리머니’를 펼쳤다. 독수리는 알바니아를 상징한다. 알바니아계 코소보 혈통인 샤키리와 자카는 과거 세르비아 정부가 알바니아계 주민을 상대로 자행한 탄압 및 인종 청소를 항의하기 위해 이같은 세리머니를 했다. 전세계 축구팬들이 골세리머니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냈지만 FIFA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겼다는 이유로 벌금을 매겼다.
스포츠 무대, 특히 축구장에서 정치적 행위나 목소리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유는 축구에 국가, 민족 간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감정이 개입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 사회적인 갈등으로 확대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 1969년 북중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축구로 인한 갈등 때문에 실제 전쟁까지 벌였다. 인종차별 구호,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는 유럽, 남미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K리그도 축구장 내 정치적 행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황교안 대표 논란은 정치권이 스포츠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한 예다”며 “과거에는 힘있는 정치인들이 축구장에 마음대로 들어가 유세를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록 경남FC의 직접적인 잘못은 없다고 해도 스포츠에 정치적 간섭이나 개입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상징적인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K리그 차원의 징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