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골프)드라이버 샷은 쇼?

  • 등록 2010-05-04 오전 10:25:00

    수정 2010-05-04 오전 10:25:00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드라이버 티 샷 암만 잘 쳐봐야 소용없다. 퍼팅을 잘 해야 스코어도 줄고 돈도 딴다. 드라이버 샷은 쇼, 퍼팅은 돈이다.

신 과장이 귀에 못 박히게 들어 온 말이다. 입문 일년이 약간 넘었으며 100타를 깨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다 매번 좌절하고 돌아서서 괜히 배웠어, 괜히 배웠어를 중얼거리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했다. 특히 처음 골프채를 잡았던 날부터 스승님을 자처한 김 차장은 입만 열만 드라이버는 쇼!를 외쳤다.

이봐 신차장. 드라이버 샷은 말이야. 서바이벌 게임(Survival game)이거든.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서 한번 봐봐. 저쪽에 입 벌리고 있는 해저드랑 몰래 몸 숨기고 있는 허연 OB귀신, 깊은 숲 안쪽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로스트 괴물이 안보이냐 말이야. 그걸 다 피해서 어떻게 해서든 페어웨이에 공을 보내는 게 골퍼인 우리들의 의무야.

그런데 방향 조준도 제대로 안하고 아무렇게나 스탠스를 취하고서는 있는 힘껏 냅다 질러 버리면 공이 어떻게 페어웨이에 안착하겠냐고. 공에 무슨 눈이 달렸어, 발이 달렸어, 그렇다고 날개가 있어. 다 당신이 치는 대로 가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에라 모르겠다 정신으로 휘둘러 대기만 하면 어떻게 살아남겠냐고. 공이 살아서 페어웨이에 가야 온 그린도 노리고 파나 버디도 노려보는 거지.

그리고 말이야. 젤 중요한 건데 드라이버 샷 멀리 날렸다고 쳐. 그게 스코어 카드에 기록이 되냐고. 골프는 결국 남는 게 스코어거든. 카드에 적히는 숫자도 그렇고 지갑에 남는 내기 돈도 그렇고 다 스코어가 만드는 거잖아. 드라이버 샷 암만 멀리 날려서 350야드가 나와도 그거 스코어카드에 기록하는 멍한 놈은 내가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거리 욕심 절대 내지 말란 말이야.

신 과장도 김 차장 말이 다 맞다는 것을 안다. 남자는 거리다 라는 어느 골프용품 업체의 CF 문구가 한창 유행을 탄 적도 있지만 거리만 가지고는 절대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없으니까. 하여 티 샷을 할 때는 스윙 크기를 좀 줄여보기로 했다. 반만 들어서 공을 정확하게 친다. 이 작전으로 바꾼 뒤 확실하게 난초 치는 확률이 줄었다.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으니 공이 페이스 중앙에 맞는 확률이 높아졌고 덕분에 이리저리 왼쪽 오른쪽으로 휘는 일도 줄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거리도 줄었다는 데 있다. 남들보다 50야드, 때로는 100야드도 넘게 뒤처진 채 잘 맞지도 않는 우드를 들고 설치다가 또 벙커와 해저드를 전전하는 일이 잦아졌다. 벙커와 OB귀신, 로스트 괴물은 티 샷만 노리는 게 아니었다.

신경질이 난 신 과장. 연습장에서 죽어라고 드라이버 샷만 연습하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연습은 말이야 짧은 아이언으로 어프로치 샷 연습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스코어가 줄지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김 차장 말을 귓등으로 흘려 보내고 몸이 아프든 말든, 파스로 어깨에 도배를 해가면서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대신 궁리를 해가며 샷을 했다. 스탠스를 제대로 잡고 이렇게 하면 공이 저렇게 가고, 또 요렇게 치면 조렇게 날아간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신 과장. 싱글벙글하며 출근해서 김 차장을 살짝 불러냈다.

김 차장님. 제가 어제 골프 시작한 이래 제일 기분 좋게 라운드를 마쳤습니다. 스코어는 아직 100타를 깨지 못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티 샷이 단 한번도 맘에 안 든 적이 없었어요. OB도 나고 벙커에도 빠졌지만 그 소리랑 솟아 오르는 각도, 날아가는 속도 등등이 진짜 맘에 들었거든요. 지금도 생각하면 좋아 죽겠어요.

일단 기분 좋게 시작하니까 세컨 샷 때도 자신감이 넘치고, 실수를 해도 곧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세컨 샷 클럽이 짧아졌기 때문에 실제로 실수도 줄었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김 차장님 말대로 드라이버 샷이 공을 살려 보내는 서바이벌 게임인 것은 맞지만 그렇게 겁 내고 벌벌 떨 게임은 절대 아닌 것 같아요. 공이 죽는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김 차장은 당황했다. 드라이버는 쇼! 라고 주장했을 때 그 쇼를 사랑한다고 되받아 쳤던 후배골퍼는 없었다. 그저 공 살려 보내려고 드라이버 들고 조심조심, 주눅이 들고 샷이 위축되는 경우는 많았어도 말이다.

아.. 큰일이다. 저렇게 티 샷 쇼에 재미 붙여서 멀리, 그리고 조금씩 정확하게 공을 살려내면 금방 나를 따라잡을 텐데. 드라이버는 쇼지만 그 쇼가 성공하면 다른 것도 수월해지는 게 골프의 비밀인데. 겁을 좀 먹고 주춤거려야 추격 속도가 더딘데…

후배가 무섭게 치고 올라올 것을 직감한 김 차장은 당장 내일 새벽부터 연습장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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