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북 교통 동맥' 남산1호터널 복선 쌍굴 개통[그해 오늘]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1.21 사태'로 유사시 시민 대피 장소 필요성 대두
1969년 '서울요새화계획' 따라 남산1호터널 착공...1970년 광복절 개통
'보수 시급'·'교통 처리 능력 한계'에 기존 터널 옆 새 터널 뚫기로 결정
1994년 1월 8일 새 터널 개통…기존 터널 보수 후 현 시스템 완성
  • 등록 2023-01-08 오전 12:03:00

    수정 2023-01-08 오전 12:03: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는 남산1호터널. 29년 전 오늘(1월 8일)은 남산1호터널 복선 쌍굴이 개통된 날이다.
1994년 1월 8일 남산1호터널 개통 당시 모습. 사진=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남산1호터널 건설은 다소 엉뚱한 계기로 시작됐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무장공비들이 침투하는 희대의 사건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큰 충격을 받은 당시 김현욱 서울특별시장은 1969년 1월 유사시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이른바 ‘서울요새화계획’을 수립했다. 그 핵심 프로젝트가 바로 남산1호터널이었다.

터널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추진돼 두 달 뒤인 1969년 3월 한국신탁은행으로부터 개발신탁자금을 지원 받아 바로 착공에 들어갔고, 1970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개통됐다. 총공사비 15억6900만 원을 투입한 남산1호터널은 당시만 해도 길이와 규모 면서 국내 최대의 터널이었다. 순전히 우리 기술과 우리 자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 건설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꼽히기도 했다. 이 터널 개통은 종전까지 수도 서울 교통의 걸림돌로 취급되던 남산을 남북 간선도로망의 중추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남산1호터널은 1970년 8월 개통 직후부터 물이 새고 환기가 잘 안돼 여러 차례 보수해 오다 1975년 9월 터널 양쪽에 너비 1.8m의 블록벽을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 슬래브 천장을 얹어 너비가 10.8m(3차선)에서 9m(2차선)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서울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터널의 통행량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터널 확장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보수가 시급했고 교통 처리 능력이 한계를 넘어서자 서울시는 전면적 검토를 통해 터널 확장 대신 기존의 터널 옆에 새로운 터널을 뚫는 쌍굴 방식을 택했다. 공사 기간 중 적어도 7개월 간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해야 해 이에 따른 교통 혼란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새 터널은 1989년 5월 25일에 착공해 1994년 1월 8일 공사를 마쳤다. 기존 터널과 15미터 간격을 두고 나란히 뚫린 새 터널 공사비로는 223억4000만 원이 들었다.

새 터널 개통과 동시에 구 터널은 폐쇄하고 약 1년 5개월 동안 거의 다시 만드는 수준으로 보수 공사를 해 1995년 6월 10일 재개통했다. 이후 기존 터널은 상행선용, 신터널은 하행선용으로 하는 현재의 남산1호터널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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