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있는 길]③한적함을 친구삼아 걷기좋은길

한국관광공사, 1월 추천 걷기여행길
평화누리길 3코스 한강철책길
글·사진= 이승태 여행작가
  • 등록 2018-01-20 오전 12:00:01

    수정 2018-01-20 오전 12:00:01

가좌동을 지켜 온 느티나무 고목. 수령 480년을 넘겼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국에 걸쳐 며칠간 눈이 내렸다. 서해안쪽은 폭설이 온 듯하고, 때맞춰 한파도 닥쳐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은 날 길을 나섰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하늘은 짙푸르다 못해 한기까지 느껴질 만큼 쨍하다. 미쉐린타이어 심벌처럼 꽁꽁 싸매고 나왔는데도 드러난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매섭다. 부천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출발지인 애기봉 입구다. 바로 옆인 김포여서 가까울 줄 알았는데, 교통수단을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이곳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기엔 만만찮은 오지인 ‘전방’이기 때문이리라.

가좌동의 느티나무. 사이에 평상이 있어서 여름과 가을에 쉬어가기 딱 좋다.
◇너무 멋진 가좌동의 느티나무 두 그루

택시에서 내리기 전부터 차창을 통해 반한 풍경, 가좌동을 지키고 선 두 느티나무 고목 때문이다. 조그만 마을의 모퉁이 언덕배기에 비슷한 덩치와 품을 가진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로 뻗친 가지를 맞닿은 채 마치 연인처럼 정겹게 서 있다.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리고 숨김없이 드러낸 몸뚱이도 저리 아름답다. 여름 내내 저 몸매를 어찌 감추고 살았을까! 두 느티나무 사이엔 몇 개의 평상이 놓여 있다. 여름과 가을엔 더할 나위 없는 쉼터겠다.

길은 차 한 대가 다닐만한 넓이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길 가장자리 한쪽으로 하늘색 선이 그어져 있는데, 아마 ‘DMZ 자전거길’ 표시인 듯하다. 곧 애기봉목장을 지난 길은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추수가 끝난 논엔 하얀 눈이 덮여 벼 그루터기만 줄지어 늘어서며 묘한 무늬를 만들어놓고, 누렇게 변한 산사면의 양지바른 곳곳엔 해묵은 무덤들이 훤하다.

1km쯤 간 곳에서 멋들어진 향나무 두 그루를 만난다. 이만큼 크게 자란 향나무를 보는 게 쉽지 않은 터라 가까이 가보니 조선초 영의정을 지낸 박신이란 분이 마음수양을 위해 심은 것이란다. 선비란 나 같은 속물은 이해치 못할 까마득한 세계 같다. 이곳은 운봉박씨세장지(雲峯朴氏世葬地1))로, 향나무 바로 뒤에 2015년 새로 지은 화헌재라는 사당이 있다. 근데 이 화헌재라는 글자가 아리송하다. 100m 전에 세워진 표석에서는 ‘가죽나무 저’를 쓴 ‘樗軒齋’라고 적어두고 아래엔 한글로 ‘화헌재’라고 음을 달아둔 것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나 해서 아무리 자전을 뒤져도 저 글자를 ‘화’로 읽지는 않는다. 석공이 실수로 잘못 판 것일까? 뼈대 있는 가문에서 저런 실수를 놓칠 리가 없을 테니 아마 나의 무지이리라.

향나무 맞은편 언덕에 문신상이 지키는 무덤이 보인다. 근데 무덤 형태가 일반적인 둥근 모양이 아닌 네모에, 아래로 돌을 쌓아 봉분을 올렸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고려시대의 양식인데, 자세히 둘러보기엔 남은 길이 멀어 걸음을 재촉한다.

후평리를 지나다가 본 한강 건너 북녘의 산하. 저 얼어붙은 땅에도 자유의 봄이 오기를….


◇평범한 시골풍광의 편안함

이 일대에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을 모두 가금리라 부르는데, 마을 곳곳엔 문짝이 떨어져나간 빈 집들이 여러 채 보인다.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마음이 씁쓸하다. 굵은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 산엔 참나무와 밤나무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평범하고 편안한 시골풍광을 따라 길은 휘적휘적 지나간다.

목축을 하는 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돼지축사는 없고 전부 젖소나 한우를 키운다. 그리고 또 개가 많다.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느라 짖는 소리가 릴레이를 하듯 이 동네, 저 동네로 메아리치며 이어진다.

가금리와 마근포리 일대의 마을에서는 60~70년대의 흔적이 자주 보인다. 바로 ‘4H운동’의 일환으로 세운 4H탑이다. 녹색의 클로버 이파리 모양에 각각 영어 대문자 ‘H’를 써놓은 시멘트 구조물. 페인트 색이 바래고, 깨진 모양이 많은데도 아직도 보존되고 있는 게 신기하다.

애기봉 건너편의 북한 땅. 저곳에도 곧 봄이 올 테지


◇사라진 포구, 마근포

가금리를 벗어나 마근포리로 이어진 한적한 논길을 걷다보니 너른 논 여기저기서 철새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00마리는 넘어 보이는 이 철새들이 궁금해 찾아보니 큰기러기다. 추운 날씨 탓인지 먹이활동은 않고 날개 사이에 주둥이를 파묻고 같은 방향으로 앉아 미동도 않는다.

‘마근포(麻近浦)’는 강녕포구, 조강포구와 함께 한국전쟁 후 포구에 살던 이들이 이주하며 사라진 한강하구의 포구중 하나로, 마근포리라는 이름으로만 남았다. 마근포리 일대도 가금리와 마찬가지로 들판은 넓고, 산은 야트막하다. 논밭 사이로 이어진 길 따라 얼마쯤 가자 오른쪽으로 나눔교회가 보인다. 패널로 지은 작은 예배당 지붕 끝엔 그에 어울리는 아담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마근포리에서도 가금리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풍광이 이어진다. 가금리에서 보았던 24번 마을버스가 이곳 마근포리도 구석구석 드나들고 있다.

곧 만난 마근포리 마을회관. 경로당을 겸하는 2층 규모의 벽돌건물은 매우 세련되어 눈길을 끈다. 이곳 마을회관 건너편 밭에도 4H 구조물이 보인다. ‘지덕노체’라고 쓴 글씨까지 남아 있다.

마근포리를 벗어나면서 길은 야트막한 산 사이로 들어선다. 어떤 밭은 벌써 갈아엎어 봄 농사 준비를 하고 있고, 어떤 밭뙈기엔 지난해의 고춧대가 아직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눈은 공평히 내려 온 천지가 하얗다. ‘청정장수마을 마조2리’라고 새겨진 갈림길의 빗돌을 지나 무인지경의 산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이정표엔 ‘후평리’라는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은 후평리의 마을들의 뒤로 돌아가거나 살짝 걸치기만 할 뿐, 교묘히 피해가며 산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길은 한적하고, 인적도 드물다.

이윽고 도착한 연화사. 1972년에 지어졌다는 절은 좀 어수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종파에 대한 정보가 없이 ‘연화산 연화사’라는 화강암으로 만든 어마어마한 석문이 서 있다. 절 입구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으나 동파방지를 위해 3월까지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출입문에 붙었고, 문은 굳게 잠겼다.

겨울철새인 큰기러기. 저녁 무렵, 무리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결코 공짜기 아니다

연화사를 지나 산모퉁이를 돌자 포도밭이 나타난다. 꽤 널찍한 몇 개의 밭이 붙어 있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지난해의 묵은 가지를 모두 정리해놓았다. 이 부근이 전체 코스의 절반쯤에 해당한다. 얼마 후 길은 시암리로 접어든다. 철조망을 두른 군 시설물이 나오고, 곧 작은 수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한강둑길이 나타난다.

친근한 한강의 강둑에 3중으로 설치된 철조망이 쳐져 있다는 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철조망 너머 강 건너편으로 파주의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보인다. 통일전망대의 맞은편인 임진강 건너, 그러니까 여기서 보이는 북서쪽은 북한 땅이다. 그러니까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이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최전방인 셈이다. 새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다. 후평리 너른 논의 철새도래지를 오가는 새들은 자유로이 넘나들어도 사람은 갈 수 없는 땅, 이 무시무시한 철조망은 언제쯤 걷힐까?

철책을 따르는 길에 서너 곳의 철새조망소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철새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석탄배수펌프장 건너편의 후평리 재두루미 도래지 탐조대엔 대형 현수막 두 개가 붙어 있다.

한때는 관광상품이자 깨끗한 환경의 지표로 환영받던 철새가 언제부턴가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이 상황을 철새들도 아는 것일까? 재두루미는 한 마리도 안 보이고, 가끔씩 큰 기러기만 몇 마리씩 텅 빈 하늘을 날고 있다.

평화누리길 3코스에서 철책을 끼고 걷는 구간은 7km다. 이 구간의 왼쪽은 철책이 전류리포구를 만나기까지 이어지고, 오른쪽은 후포리 일대 평야지대의 평화로운 풍광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안전함과 자유가 저 철책과 저곳을 지키는 군인들의 수고와 희생 때문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길이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무게가 저 철조망의 무게와 비례하는 게 아닐까.

◇여행메모

△코스 요약= 애기봉 입구→화헌재→마근포리 마을회관→마조2리 입구→연화사→후평리 철새도래지→석탄배수펌프장→전류리포구 (17km, 5시간)

△대중교통= 지하철 5호선 송정역 1번 출구(김포·강화 방면)로 나와 경기버스 88번을 타고 군하리까지 간다. 1시간 남짓 걸린다. 군하리에서 한강철책길 출발지인 애기봉 입구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서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요금은 6000원쯤이다. 송정역 1번 출구를 나와 경기버스 2번을 타고 종점인 하성까지 간다. 하성면사무소 앞에서 101번 버스가 애기봉 입구까지 간다. 15분쯤 걸린다. 하성면사무소 건너편 편의점 앞에서 24번 마을버스를 타도 애기봉 입구로 갈 수 있다. 20분쯤 걸린다. 전류포구에서는 풍천민물장어 앞에서 23번 마을버스를 이용해 종점인 하성까지 간 후 경기버스 2번으로 바꿔 타면 송정역과 계화역, 김포공항역으로 갈 수 있다. 23번 마을버스는 1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

△먹을곳= 애기봉 입구에는 식당이 없다. 날머리인 전류리포구에 각종 회와 매운탕을 파는 ‘전류리포구 직판장(031-981-4115)’과 24시간 문을 여는 양평해장국전문점인 ‘여명(031-982-8116)’, 풍천민물장어 직판장인 횟집 ‘한강어촌체험마을(031-998-977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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