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빨아들이는 에너지…브라질 MZ작가, 서울 홀리다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개관전 라파 실바레스 '에어백'
'젊은 작가' 내걸고 서울 활동 본격 시작한
독일계 갤러리 전속작가 첫 아시아 개인전
차가운 형체속 뜨거운 흐름, 2m 대작 등에
"바탕에 깔린 '브라질 모더니즘' 살펴봐야"
  • 등록 2022-05-31 오전 12:01:00

    수정 2022-05-31 오전 12:01:00

서울 중구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에 연 라파 실바레스의 개인전 ‘에어백’에 걸린 ‘러브 피버’(2022·210×210㎝) 옆으로 갤러리 설립자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가 섰다. 독일 베를린에 거점을 둔 페레스프로젝트의 색은 “젊은 작가에서 나온다”는 페레스 대표의 말대로 서울점 개관을 신고하는 전시는 브라질 출신 MZ세대 작가로 낙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서울로 가자!” 자칫 오해할 수 있다. 과거 언젠가 ‘뜻한 바를 좇아’ 생활터전을 서울로 옮기며 외치던 소리쯤으로. 하지만 아니다. 양상도 형태도 다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근 해외 유수 갤러리들이 앞다퉈 ‘서울 입성’을 시도하며 지르는 소리라는 거다.

그 행렬에 기꺼이 합류한 독일계 갤러리가 있다. 페레스프로젝트다. 지난달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지하 1층에 서울점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글로벌 작가와 작품을 걸고 한국 관람객과 컬렉터를 만나게 하는 일 말이다. 지난 2년여 국내 아트페어에서 갤러리명과 작가로만 알렸던 행보를 키운 거다. 2002년 베를린에 문을 연 페레스프로젝트는 본관 외에 이탈리아 밀라노에 분관을 둔 중견 갤러리. 20주년을 맞은 올해를 기념하듯 ‘아시아시장 개척’을 계획했고, 그 전진기지로 서울을 선택한 셈이다.

페레스프로젝트의 가장 도드라진 색은 ‘젊은 작가’로부터 나온다. 설립자인 하비에르 페레스(50) 대표가 고집하는 우직한 예술철학이라고 했다. “도전적이고 참신한 작가를 꾸준히 찾아내 폭넓은 예술 스펙트럼을 펼치는 것, 그 위에 대중의 새로운 예술 취향과 예술 트렌드를 얹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독일 거점을 이유로 유럽 작가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지난 ‘아트부산 2022’에 이끌고 나섰던 전속작가의 면면이 그랬다. 미국 출신의 도나 후앙카(42)와 리처드 케네디(37), 영국의 레베카 애크로이드(35), 브라질의 라파 실바레스(38), 멕시코의 마뉴엘 솔라노(35)와 베이롤 히메네즈(38), 아르헨티나의 애드 미놀리티(42), 중국의 슈앙리(32)와 탄무(31) 등, 30대가 주축이 된 다국적 군단이 따로 없었던 거다. 아트페어에 앞서 이들 작가의 작품 한 점씩을 걸고 짧은 ‘맛보기’ 전시를 꾸리기도 했더랬다.

그러곤 이들 중 특별히 낙점한 1인이 있다. ‘서울점 개관’을 제대로 신고하는 자리에 띄우고 갤러리 ‘색’을 확실하게 드러내자는 건데, 바로 1984년생 라파 실바레스다. ‘에어백’(Airbag)이란 테마를 달고 2m를 훌쩍 넘기는 대작 5점을 팽팽하게 걸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처음 여는 실바레스의 개인전이다.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에 연 라파 실바레스의 개인전 ‘에어백’ 전경. ‘몽유병자’(2022·140×120㎝·왼쪽)와 ‘벌거벗은 케이크’(2022·120×100㎝)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타이틀을 단 두 점이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람은 없지만 사람에 관한 작품”

하얀 벽을 뚫어낼 듯한 대립, 그 벽을 휘감은 조화가 먼저 보인다. 칼로 잘라냈다고 해도 믿을 매끈하면서도 차가운 형체, 또 그 주위를 축축하게 감싼 물컹하고 뜨거운 흐름. ‘차가운 형체’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반질하게 잘 닦인 자동차, 정교하게 설계된 열교환기, 좀 찌그러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멀쩡해 보이는 하이브리드 압축기, 반질반질한 스테인리스 물뿌리개, 치즈가 좔좔 흐르는 케이크를 뚫고 올라온 포크 등. ‘왜 저곳에서 저들이 나돌아다녀야 하는가’를 따지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별로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다만 한 가지, ‘축축하고 물컹한 그것’이 신경이 쓰인다. 고급 승용차를 빨아들이고 삼키는 붉은 연기 같기도 하고(‘러브 피버’ 2022·210×210㎝), 압축기에서 꾸역꾸역 삐져나오는 초록 거품 같기도 하다(‘벌거벗은 케이크’ 2022·120×100㎝). 여기에 잔디밭에 놓인 물뿌리개에서 나오는 중인지 들어가는 중인지 헷갈리기만 한 세 개의 푸른 덩어리(‘세 마리’ 2022·140×120㎝)는 무엇이며, 온탕과 냉탕의 한가운데 앉아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을 교대로 토해낼 참인 저 기계(‘열교환기’ 2022·200×150㎝)는 제대로 작동하는 건가. 벽에 걸린 대형작업을 들여다보며 생기는 의문 중 7할 이상은 ‘축축하고 물컹한’ 그것이 담당한다는 얘기다.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에 연 라파 실바레스의 개인전 ‘에어백’ 전경. ‘열교환기’(2022·200×150㎝)가 흰벽 한 면을 다 차지했다. 냉랭한 기계와 물컹한 흐름은 ‘충돌하는 조화’다. ‘한 올’도 삐끗하지 않는 깔끔한 구성력과 손에 잡힐 듯한 색감 등은 온전히 작가의 붓과 손을 통해 나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에너지 흐름이다. 변화가 많아 유동적이고 열정이 많아 뜨거운, 그런 움직임을 작가가 의도한 거다.” 밀려드는 궁금증을 한번에 끊어낸 건 페레스 대표. 전시 오픈에 맞춰 작가를 대신해 서울로 날아왔던 터다.

무엇보다 “사람은 없지만 사람에 관한 작품”이란 점을 페레스 대표는 꼽았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봤을 때 전혀 움직이지 않은 사물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놀라웠다”며 전속작가로 발탁한 배경을 비추기도 했다. ‘한 올’도 삐끗하지 않는 깔끔한 구성력과 손에 잡힐 듯한 색감 등 누가 봐도 혹할 수밖에 없는, 기민하면서도 진득한 작업방식 역시 호감을 키웠던 듯했다. “디지털 프린팅인 듯 깔끔하지만 유화작업이다. 에어브러시 등의 기술은 쓰지 않았고 얼굴에 화장하듯 온전히 붓과 손으로만 계속 덧칠해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바탕에 깔린 ‘브라질 모더니즘’을 살펴보란다. 20세기 초반 미술사조를 이끈 모더니즘과는 질적으로 다른, 작가가 강하게 이입한 ‘감정이 들어간 모더니즘’이란 거다. 얼음같이 냉랭한 기계, 삭막한 현실이 브라질 모더니즘을 입으며 방어막을 형성하는데, 그게 바로 전시명이기도 한 ‘에어백’이라고 했다.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에 연 라파 실바레스의 개인전 ‘에어백’에 걸린 ‘세 마리’(2022·140×120㎝) 옆으로 갤러리 설립자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가 섰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 실바레스는 글로벌 MZ작가들이 포진한 갤러리에서 서울점 개관을 신고하는 자리에 첫 주자로 낙점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브라질 작가 작품, 독일 갤러리에 걸려 한국 관람객 만나

그렇다면 결국 브라질에서 날아온 작가의 작품이 독일계 갤러리에 걸려 한국 관람객·컬렉터를 만나는, 이 유니크한 상황에도 ‘에어백’이 필요하지 않겠나. 혹여 생길 긴장과 마찰을 분산하고 중화할 어떤 요소가 말이다.

페레스 대표는 그 고리를 ‘작가’란 열쇠로 푼다고 했다. “동시대 작가의 같은 전시를 서울 이후 베를린과 밀라노에서도 열 것”이라며 “누구도 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또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이들이 감상하고 즐기게 하자는 데 첫손을 꼽는다”고 했다. 그 신념이 20년 전부터 젊은 작가를 찾아다니게 했다는 거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한국 작가도 발굴할 계획”을 귀띔했다. “눈여겨보는 작가가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략(시장)을 위한 공략(작가)은 하지 않겠다는 뜻은 분명히 했다.

독특한 점은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의 위치다. 신라호텔 지하 아케이드. 그림 파는 화랑이 호텔 지하 아케이드에 있지 말란 법은 없지만,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중심으로 ‘목 좋은 자리’에 줄을 대는 ‘서울 러시’ 해외 갤러리들과는 좀 다른 양상이란 얘기다. “서울점을 내기 전부터 만든 네트워킹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는 페레스 대표는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낼 가교역할”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실바레스의 작품이 그렇듯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스파클 튀는’ 접점 바로 그거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서울 중구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의 외관. 독일 베를린에 거점을 둔 페레스프로젝트는 지난달 서울 중구 신라호텔 지하 1층에 서울점을 내고 글로벌 작가와 한국 관람객·컬렉터를 연결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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