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줌인] 마음의 상처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이다영 국가트라우마센터 담당관 /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등록 2023-01-15 오전 12:11:58

    수정 2023-01-15 오전 12:11:58

[이다영 국가트라우마센터 담당관 /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응급실 인턴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30대의 여성이 심정지 상태로 119 구급차를 타고 실려왔다. 분주하게 처치하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나도 다른 인턴들과 손을 바꿔가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다행히 환자는 호흡과 심장 박동이 회복되어 심근경색에 대한 응급 중재 시술을 받고 얼마 후 특별한 후유증 없이 두 발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막힌 관상동맥을 뚫는 전문적인 치료도 물론 중요했지만 한 젊은 여성의 미래와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발생 직후 골든 타임 내에 응급 처치가 이
이다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루어져 신체 주요 기관의 비가역적인 손상이 없는 상태로 전문 치료까지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기본적인 응급처치가 심폐소생술인데 우리나라는 10년 전만해도 심폐소생술이 구급대원이나 의료진이 하는 전문적인 처치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발생 후 5분이라는 골든 타임을 생각하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 의해 즉각적으로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어야 소생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민관 가릴 것 없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년간 꾸준히 심폐소생술에 대한홍보와 교육을 진행했고 지금은 유치원의 어린 아이들도 심폐소생술에 대해 배우는 전국민의 기본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신체를 살리기 위한 응급처치가 심폐소생술이라면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마음을 다친 사람들에 대한 응급 처치법도 있다. 심리적 응급처치, Psychological First Aid의 약자로 흔히 PFA로 부르는데, PFA는 재난이나 사건 사고 등 충격을 겪은 직후부터 수일 이내의 시기에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도울 때의 기본 방침으로 전문가만이 아닌 교육을 받은 누구나 주변의 사람들 또는 자기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많은 국제 기관들이 PFA를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효과적인 개입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건사고가 다양해지고 정신건강이 신체건강 만큼이나 중요해 진 지금, PFA는 많은 사람의 정신적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심폐소생술만큼이나 관심을 가지고 보급해야 하는 대처방법이다.

PFA란 무엇인가? 신체에 작은 상처가 생겼을 때 경우 응급처치 만으로도 통증이 줄어들고 새살이 돋으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거나 큰 부상이더라도 응급처치가 잘 되면 생존과 회복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정신적인 충격이 있을 때 신속하게 위험을 제거해 안전을 확보하고 사회적·신체적·정서적 지원을 통해 심신의 안정과 조절감, 연결감을 촉진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극복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빠르게 도움을 받아 큰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PFA이다.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초기의 개인과 집단을 돕는 현장 실무자들은 PFA의 핵심 행동원칙인 “보고, 듣고, 연결하기”에 따라 활동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나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직접 제공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자연 재해로 대피소 생활을 하는 이재민들에게 부족한 생활필수품을 제공하고, 신체와 정신건강을 살피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으면서 위로와 대처방법을 알려주고, 피해 보상이나 법률 자문, 병원 치료 등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담당기관을 연결해 주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실무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과정을 다 수행할 필요는 없다.

PFA의 핵심사항을 기억하고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찾아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비록 돕는 입장에 있더라도 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내 사정에 맞추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 힘든 일을 이야기할 것을 재촉하거나 도움을 받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기다려주면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큰 충격을 겪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져 간단한 일도 잘 대처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자기 자신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리가 안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내미는 손길도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이것저것 묻기보다는 그 사람한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필수적인 것부터 먼저 채워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식사준비나 집안정리 등 기본적인 생활관리부터 간단한 일 처리를 대신해주거나 그 사람이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일정 조정을 돕는 것 등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면서 내 선에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제안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좋다. 또 많은 경우에 마음속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공감을 받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상대가 이야기 할 때 전문적인 상담이나 조언을 해주지 않더라도 경청해주고 고통을 수용해 주는 것 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려는 목적에서 또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생각에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에게 더 상처가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곧 좋아질 것 이다’, ‘힘내야 된다’,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그 정도라 다행이다’ 와 같은 막연한 위로나 ‘그때 이랬어야지, 그러지 말았어야지’ 등의 현재 상황에서 의미 없는 조언을 덧붙이는 것이다. 공감해준다는 것은 상대의 입장이나 고통을 내 것처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라는 것을 이해하고 가치판단이나 섣부른 조언 없이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설사 내가 그 사람의 입장에 전부 동의하거나 100%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너는 그렇구나. 그런 상황이라니 정말 힘들겠다.” 라고 공감 해주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면서 아픔을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이다. 공감과 존중의 태도는 PFA의 핵심 요소로 몸의 상처를 보호하고 재생을 돕는 연고와 같이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필수품이다.

만일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정식적인 PFA 교육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PFA에 대한 이론 교육과 훈련은 보건복지부 국가트라우마센터 등을 통해 자격제한 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확대해 갈 예정이다. 심폐소생술과 같이 PFA도 생명을 살리는 기본 상식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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