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귀가중인 고교생을 끔찍하게 살해했나[그해 오늘]

2005년 구의동 고등학생 피살사건…17년째 미제로
동급생 범인으로 기소…"경찰관 폭행으로 거짓 자백"
법원, 1~3심 모두 무죄…짜맞추기 수사 가능성 지적
  • 등록 2022-09-07 오전 12:03:00

    수정 2022-09-07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05년 9월 7일. 자정 즈음 112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남성이 신음소리 가득한, 불분명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발신자는 인근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인택(당시 16세)군이었다.

고(故) 한인택군.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갈무리)
경찰은 발신지 근처에서 한군을 찾아 나섰으나 발견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그리고 1시간가량 지난 오전 1시께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이 있다”는 행인의 신고를 받고 인근 도로에서 숨져있는 한군을 발견했다. 한군은 흉기로 복부를 한 차례 찔린 상태였다. 인근을 수색한 경찰은 현장에서 90m 떨어진 곳에서 범행에 사용된 25㎝ 길이의 등산용 칼을 발견했다.

한군은 전날 밤 학원을 마치고 친구들과 놀고 난 후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가던 중 범행을 당했다. 광역버스를 타야 하는 한군은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하기 위해 친구와 헤어진 후 마을버스 대신 도보로 홀로 이동했다. 경찰이 판단한 한군의 피습 시간은 6일 밤 11시50분 전후였다.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경찰서(현 서울광진경찰서)는 사건 발생 1주일 뒤인 9월 13일 오전 “한군 피살 사건 용의자는 같은 학교 동급생인 A군”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A군이 한군에게 평소 앙심을 품고 있어 살인을 했다고 자백했다”는 것이 경찰의 발표 내용이었다. A군과 함께 현장에 있었다는 또 다른 동급생 B군의 진술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들을 처음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한군과 가장 마지막에 헤어졌던 동급생 C군이었다.

범인 몰렸던 학생 “경찰 폭언·폭행·협박으로 허위자백”

경찰은 아울러 현장 인근에서 도망가던 한군을 뒤쫓던 2명을 봤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도 제시했다. 또 한군이 112신고 당시 A군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A군 역시 자백 후 경찰서로 찾아온 한군 가족이 “네가 그랬니?”라고 묻자 “제가 그랬다”고 답하기도 했다.

검찰도 경찰 송치 의견대로 A군을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한군이 평소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손을 한 번 봐주겠다’는 소문을 학교에 퍼뜨려 앙심을 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A군은 법정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A군은 “한군이 살해당했다는 시간에 만화책을 보며 집에 있었고 살인 현장엔 가지도 않았다”며 “경찰 조사 당시 경찰관들로부터 폭언, 폭행, 협박을 받아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A군의 이 같은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A군과 B군의 경찰 자백 진술은 일관성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더욱이 통화 내역, 피해자 행적 등 객관적 증거와도 맞지 않았다. 범행 도구나 범행 현장에선 A군과 관련한 어떠한 지문이나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A군의 경찰 자백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아울러 한군 가족에게 한 발언에 대해서도 “만 15~16세에 불과하던 A군이 경찰에 체포돼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한군 가족이 다그치자 자백 진술대로 범행을 시인하는 대답을 한 것”이라며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범인 지목한 학생조차 “경찰로부터 폭행 당했다”

법원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대해서도 “식별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아닌 A군 한 명만을 대면시킨 것은 절차상 위법”이라며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흐려지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어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자정이 가까운 시간 네온사인 불빛이 꺼진 거리에서 5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5~10초간 뒷모습 및 옆모습만 본 목격자가 수개월 후 범인을 지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112신고 당시 A군 이름이 언급됐다’는 검경의 주장에 대해선 “A군 이름과 비슷한 음이 들리는 것은 맞다”면서도 “A군 이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살인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A군은 1·2심에 이어 2007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검경이 엉뚱한 학생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2년 넘게 수사와 재판에 매진하는 동안 진범은 사건 발생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 당시 한군과 함께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C군은 두 차례에 걸쳐 다른 범인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조사에서 “그날 저와 한군 등에게 피해를 본 중학생들이 (나쁜)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나흘 뒤인 2015년 9월 11일엔 “사건 당일 11시 26분께 PC방 인근에서 사복을 입은 머리가 긴 학생 2명과 시비가 있었다”는 취지로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A군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수사를 집중했다. 공교롭게도 C군은 A군 등이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9월 12일 경찰 조사에서 처음으로 A군을 언급했다. 훗날 C군 가족도 “C군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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