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 "기다림·대역전… 야구는 삶과 닮은꼴, 해설은 대화다"

  • 등록 2009-08-12 오전 8:55:53

    수정 2009-08-12 오전 8:55:53


[경향닷컴 제공] 하일성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의 별명은 '하구라'다. 국민해설가로 불릴 만큼 감칠맛나는 야구해설은 물론 방송에서도 주부프로에서 시사프로에까지 등장해 고부갈등부터 금연문제까지 무슨 주제건 거침없다. 또 사석에선 사고뭉치였던 학창시절이나 월남전 참전 당시의 무용담, 깡패부터 전직 대통령 등 각계 인사와의 일화를 전하며 좌중을 압도한다. KBO 사무총장 시절엔 제8구단 창단,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금메달, WBC 결승 진출, 프로야구관객 500만명 달성 등 한국 야구 르네상스에 기여했다. 올해로 야구해설 30년을 맞는 그를 만나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 야구해설가, 행정가, 가발CF 모델, 방송패널, 강사 등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그의 삶과 한국 야구계의 미래를 들어봤다.

 

-언제 다시 방송에서 '하일성표 야구해설'을 들을 수 있나요.
" 현재 각 방송사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대우 문제, 즉 몸값을 협의중이에요. 제가 심장병수술을 받을 때도 기다려주고 기회를 준 KBS엔 무료라도 일해야하는데 주위에선 그게 이기적인 생각이라는군요. 다른 동료나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한답니다. 그래서 방송사들이 어렵다고 하지만 후배 해설가들을 위해서라도 연봉 등을 협상중입니다. 요즘은 조용히 표사서 야구장에 들어가 외야석에 앉아 야구관람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는 등 해설준비를 하고 있어요. "

-주변에선 연임설도 많았는데 KBO 사무총장을 지난 3월 31일에 미리 그만 두셨습니다.
" 연임은 제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사무총장은 꼭 하고 싶은 일이라 의욕이 너무 앞서 실수도 많았고 욕도 원없이 들었어요. 제 진심이 안통하는 것 같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였죠. 그래도 그만 두고 처음 한달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너무 바쁘다가 갑자기 실업자가 되니 공황상태가 되더군요. 산에도 가고 절도 다니며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그동안 일에 대한 철학이 없어 일을 즐기기보다 일에 집착해서 그런가봐요. 그러다 김연아 선수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인터뷰를 하는데 '상대 선수 컨디션이 좋다던데 어떠냐'고 묻자 '난 상대편과 싸우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4분 동안의 연기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왔다'고 당당히 말하더군요. 무슨 일을 하건 집착하기보다 즐겨야죠. 스무살인 연아보다 환갑 넘은 제가 더 철학이 없는 것 같아 인생 공부를 새로 합니다. "

-그래도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보람도 컸죠.
" 그럼요.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대표단 단장격으로 선수단을 뒷바라지해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긴장감, 짜릿함,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제가 선수때나 교사때도 금메달을 딴 적이 없는데 이번엔 헹가래도 받아보고…. 또 WBC에서 우승은 못했지만 결승에 진출했고 어린이 야구단이나 야구동호회도 늘어났고 프로야구 관객도 500만명을 돌파했으니까요. 제 묘비명에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써달라고 했어요. "

-만약 사무총장을 연임했다면 뭘 꼭 더 하고 싶은가요.
"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할 일은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 야구장 시설을 현대화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제가 총장에 취임할 땐 새 돔구장을 신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일하면서 보니 새시설을 짓기보다 현재의 야구장을 깨끗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게 시급해요. 아무리 야구시합이 재미있어도 악취나는 화장실이나 곳곳이 위험한 야구장에서 어떻게 야구를 즐기겠습니까. 또 요즘 프로야구 노조가 결성된다는데 제가 협회측과 선수측의 중재를 맡으면 갈등 요인도 줄어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합니다만 새 집행부가 잘 하겠죠. "

-지금은 한국야구계의 대부이고 명사인데 학창시절엔 그렇게 문제아였다면서요.
" 제가 외아들인데 아버지는 나중에 장군이 된 군인이셨고 어머니도 사업을 크게 해서 유복하게 자랐어요. 그러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어머니는 외국가시고 아버지는 지방부대에 근무해 가족과 떨어져 거의 혼자 지내면서 방황하고 환경에 대한 분노도 커서 불량서클도 가입하고 싸움도 많이 했죠. 오죽하면 제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는데도 어머니가 교장선생님을 찾아와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며 촌지를 드리고 가셨겠어요. 학생때 말썽을 부리면 봉투들고 학교 찾아오던 습관 때문이죠.(웃음) "

-그런 문제아가 선생님이 된건 좀 뻔뻔한(?) 일이 아닌지요.
" 공부 잘하고 순종적인 모범생보다 저같은 문제아 출신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교육상 효과적이죠. 이 선생님도 노력해서 이렇게 됐으니 너희들도 마음먹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희망을 주니까요. 선생님 말이라면 잘 들어주고 존경해주는 순박한 학생들과 지낸 5년동안 제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고 아이들에게 알기 쉽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연습을 한 것이 야구해설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야구해설은 어떻게 시작한 겁니까.
" 오관영 선배님 덕분이죠. 그분은 환일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시면서 배구 해설도 하셨는데요. 당시에 TBC라는 동양방송의 김재길 체육부장님이 야구가 프로화가 된다는 전제하에 대비해서 앞으로 5년 동안 해설자를 좀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오관영 선배가 저를 추천하셨어요. 그 때 조건이 싸움 잘하고, 여자 사랑할 줄 알고, 술 잘 먹는 선수 출신을 찾아서 제가 발탁된 거라더군요. 저는 환일고에서 근무하며 일본유학을 준비중이었어요. 일본 유학 다녀와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야구해설을 맡아 교사직도 교수꿈도 포기했죠. "

-처음부터 해설을 잘 했나요.
" 웬걸요. 거의 말도 못하고 버벅거려 잘릴 뻔했어요. 1979년 청룡기 경기로 제가 첫 해설을 시작했죠. 그 당시 저와 처음 같이 하셨던 아나운서 분이 박종세·유수호·이장호 아나운서 세 분이셨어요. 기라성같은 아나운서 옆에 있으니 입이 안열려요. 해설자가 말을 해야 해설자 아닙니까? 긴장을 해서 너무 말을 안하니까 PD가 컵에다가 술을 따라 왔어요. 술이라도 마시고 진정하고 말 좀 하라고요. 그런데 긴장이 풀리는 게 아니라 술까지 취해서 그냥 " 네, 네, 네 " 란 말만 했어요. 완전 방송사고 수준이죠. 그후에도 계속 나아지지 않아 동양방송 간부회의에서 하일성은 해설자로서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내리자고 했는데, 그 때 김재길·박종세 두 선배님이 진짜 사표를 걸고 저를 옹호했어요. 6개월 만 기다려보자면서요. "

-그후에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 공부했죠.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설명했는데, 우리 선배님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정말 피나게 공부를 했죠. 그랬더니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야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

-한국 최고의 야구해설가, 국민해설가로 인정받은 비결은 뭔가요.
" 전 해설은 대화라고 생각해요. 한번도 해설을 위한 해설은 안했어요. 보통사람들이 맥주집이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어제 야구시합 봤어?'라고 떠들 때의 수준으로 편하고 쉽게 선수나 시청자들과 이야기하듯 한 게 친근감을 준 것 같습니다. 또 권위의식을 버렸어요. 모르면 뭐든 물어봤죠. 해설하다가 이해 안가는 룰이 있으면 심판에게 찾아가 물어보고, 선수들에게도 '그때 왜 그런 플레이를 했냐?' '뭐가 힘드냐' 등을 물어봤어요. 어린 선수들과 더그아웃에서 장난치듯 물어본 것들이 다 자양분이 되더군요. "

-'예상해설'의 선구자이기도 한데요.
"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빨간 장갑의 마술사라고 하는 김동엽 선배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그분이 '우리가 여지껏 했던 해설은 어떤 상황을 쫓아가는 해설이다. 너는 그러지 마라. 해설에 승부를 걸어라. 네가 정확하게 예상이 되면 과감하게 말해라'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전에는 예측해설보다는 벌어진 상황에 대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를 많이 설명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저는 김동엽 선배님의 조언을 듣고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쪽으로 바꿨죠. 워낙 기라성같은 선배님들이 해설을 하고 계시니까 그분들과 경쟁해서 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도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패턴을 바꿨는데 호응을 얻었습니다. "

-예상이 빗나갈 때도 있잖습니까.
" 당연하죠. 전엔 예상이 빗나가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거나 왜 그런 예상을 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말을 많이 했어요. 이젠 제가 잘못 판단한 거라고 사과를 해요. "

-KBS TV < 아침마당 > 은 물론 각종 프로그램의 인기 초대손님인데 일상 대화도 맛깔스럽게 하는 비법이 궁금합니다.

" 우선 누구와 만나도 제가 편안한 마음을 가져서 그럴 겁니다. 무엇보다 진솔한 것이 제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감정 표현을 잘 감추지 못하고 저나 가족이 부끄러운 이야기도 솔직하게 말하거든요. 뭐 방송에 이미 소개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딸들이 호주에서 유학할 때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았어요. 방송에 나가 '내 자식이 아니면 담배 피우지 말라고 야단칠 텐데 막상 내 자식에겐 뭐라 할말이 없더라. 이젠 자식에게 질 때다. 지더라도 멋지게 지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아서 공공장소에서는 피우지 말라고 했다'라고 했죠.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이들을 보면 다 도덕적인 성인군자이고 절대 죄라고는 안짓는 천사들뿐인데 저는 실수담이며 남부끄러운 이야기도 털어놓으니 재미있나봅니다. "

-한국 주먹을 상징하는 김태촌씨부터 한국의 석학이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도 친분이 두터운데요.

" 인간관계 폭이 넓긴 합니다. 김태촌씨 아들이 장가갈 땐 그 사람이 옥중에 있어 제가 혼주 역할도 했죠. 사람들은 누구나 배울 게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면 그분들도 마음을 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보면 다양한 삶을 관찰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니 좋죠. 제 취미가 독서와 술입니다. 환할 땐 책보고 깜깜해지면 술 마셔요. 매일 술만 마시다 보니 60평생 < 맘마미아 > 같은 유명한 뮤지컬은 물론 연극 한편 보러간 적ㅔ이 없어요. 남들이 다 즐기는 문화생활을 제대로 못해본 게 후회스럽습니다. "

-그렇게 술드시다 결국 죽을 고비도 넘기셨잖아요. 주변에서 술많이 드신다고 걱정하면 '내 간은 심심산골 주지의 간보다 깨끗하다'고 자랑하시더니….

" 간은 아직도 말짱해요(웃음). 어느날 방송중에 가슴 통증이 너무 심해 곧바로 병원에 갔다가 여섯시간에 걸쳐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죠. 그 후에도 위의 종양절제술, 담낭제거술, 연골수술, 손목수술 등을 몇년 사이에 받았어요. 심장수술받고는 술과 담배를 끊고 조신하게 살았는데 다시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고 조직세포 검사하느라 1주일을 기다리는데 그때가 가장 무섭고 고통에 시달렸어요. 결국 양성으로 밝혀졌는데 그게 악성이라고 판정났으면 인생이 달라졌죠. 글자 하나 차이에 생과 사가 오가듯 어찌 보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술, 담배는 적당히 즐겨요. 제가 월드컵때는 토론프로에 흡연자 대표로 나갔다가 심장수술을 한 후엔 금연자대표로 나갔는데 KBO 사무총장하면서 다시 담배를 피웁니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한 거에요. "

-다섯번이나 수술을 한 분이 야구때문에 다시 담배를 피우셨군요. 그렇게 평생을 매달린 야구의 매력이 뭡니까.

" 야구가 우리 인생과 가장 닮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마다 다 특징이 있지만 야구는 테니스나 농구처럼 공으로 하면서도 공에 승패가 달려있지 않고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 매력적이에요. 또 선수가 공을 쳐서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죠. 감독의 지시, 동료들의 투혼 등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오면서 삶의 지난함을 체험합니다. 또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까 기다려야 하는 등 기다림의 미학도 배울 수 있고 다 죽어있던 팀들이 펄펄 살아나 대역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야구만의 매력입니다. 야구만큼 철학적이고 드라마틱한 운동도 드물죠. 반항아에 말썽꾼이던 소년에게 야구가 멋진 인생을 선물한 것에 감사해 제 여생도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

▲하일성은 누구인가
고교 체육교사로 사회생활…79년 TBC서 해설위원 입문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경희대학교 체육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포 양곡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 당시 제자와 결혼해 두딸을 두었다. 1979년부터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 1982년 한국방송 스포츠국에 야구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종 방송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이장호 감독의 < 공포의 외인구단 > (1998년),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 (1998년) 등 야구영화에도 특별출연했다. < 하일성 없이도 프로야구를 10배 재미있게 즐기는 책 > < 하일성의 나는 밥보다 야구가 좋다 > < 인생은 1%의 싸움이다 > 등의 책도 펴냈다. 어느 일도 5분 만 설명하면 남들에게 50분 동안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순발력과 재담이 뛰어나다. 최근에야 돈에 눈떠 부자가 되어 야구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단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깜찍 하트
  • '곰신' 김연아, 표정 3단계
  • 칸의 여신
  • 스트레칭 필수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