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외국인 노동자와 파독 광부

  • 등록 2019-06-26 오전 5:00:00

    수정 2019-06-26 오전 5:00:00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무려 1425만 명을 동원하여 역대 영화 흥행 4위를 차지한 ‘국제시장’은 단지 어른들의 눈물샘만을 자극한 것은 아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로 상징된 우리 산
업 중흥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고생한 장면들이 객석에 자리한 젊은 세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비단 독일에서만이 아니었다. 40도를 넘나드는 열사(熱砂)의 땅 중동에서도, 외국 선주들의 배를 타고 오대양을 누빈 선원들까지 전 세계 곳곳에 우리 부모님들이 흘린 땀과 눈물로 가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가 200만 명을 돌파했다. 식당에서, 공사현장에서, 농사짓는 시골에서, 고기 잡는 해안에서, 전국 어디서나 외국인 노동자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법무부는 2021년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이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가 넘는 현실에서 이들이 미치는 경제적 파급은 물론 확산되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까지 정부가 고려해야 하는 현안은 쌓여가고 있다. 반면 일자리 축소로 인한 국내 노동자들의 반발, 더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등 ‘제노포비아(xenophobia·이방인 혐오증)’가 확산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 발언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황 대표는 지난 19일 부산 중소·중견기업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기여한 것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법 개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임금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휘발성이 강한 주제를 세상에 던진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명백한 차별 발언”이라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결론을 먼저 내리자면 황 대표의 발언은 우리 법체계에 어긋난다. 헌법재판소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 하에서 근로자가 기본적 생활수단을 확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하여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그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는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근로기준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 노동 기구(ILO) 협약 제111호는 고용 및 직업상 국적을 불문하고 임금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국내법을 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황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를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살짝 한걸음 물러선 모양새다.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인상안에 대해 너무 급하게 인상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상당히 거세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2017년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공제지침을 마련해 노사 협의 아래 월급의 8~20% 수준에서 숙식비를 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고, 언어구사능력과 노동생산성을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 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최저임금법 개정안도 다수다.

황 대표로서는 이번 발언으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봤다고 자평할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최저임금인상에 대한 반발 여론에 편승한 것을 말한다. 또한 당장은 일부 지지층의 성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차별을 내세우는 것은 르펜(Le Pen)과 같은 극우정파를 제외하고는 선진 우파정당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자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도리이지만 외국인 차별 발언은 삼가야 한다. 또한 노동생산성에 따른 임금차별은 타당하지만, 이는 내국인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국적과 무관한 사안이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면 우리나라 노동자들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독일 건설업 노동자들이 1996년 파업을 통해 내·외국인 근로자의 동일 임금 체제를 관철시킨 것은 반면교사로 삼을 가치가 있다.

탄핵정권시절 총리라는 가시 돋친 비판 속에서 제1야당 대표로 취임한지 4개월째다. 황 대표가 앞으로도 자극적인 발언으로 눈앞의 열렬 지지자들을 규합하는데 그칠지 아니면 수권정당으로서 보수 가치를 재건할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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