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난 뒤.. 살만한 韓 MD 왜 없을까

  • 등록 2019-05-10 오전 6:00:00

    수정 2019-05-10 오전 6:00:00

뮤지컬 ‘라이온킹’이 공연하고 있는 드림씨어터에 마련한 MD스토어다. 공연 측에 따르면 일부 품목은 구매 수요가 높아 품귀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사진=클립서비스)
여성 관객에 인기가 많았던 ‘라이온킹’의 아프리카풍 팔찌(사진=클립서비스)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심바 인형 다 팔렸습니다.”

판매원의 한마디와 함께 길게 늘어선 대기줄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나왔다. 지난 3월28일 서울 공연이 끝난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의 MD 판매 부스다. 인기가 많았던 주인공 심바 인형은 4만 원의 높은 가격에도 일찌감치 ‘완판’이 됐다. 열쇠고리와 티셔츠 등도 빠르게 소진됐고 사자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와 에코백도 인기다. 주요 상징이 담긴 아프리카 풍 팔찌도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코리아’가 찍힌 상품은 한국 공연을 상징하는 특수성까지 더해 인기가 많다. 이를 구매하려 외국에서 온 구매자도 있다. MD 판매 부스는 대략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열렸는데 사려는 관객이 많아 애를 먹었다는 관계자 설명이다.

“본 공연보다 MD가 더 인기 있을 줄이야.”

지난해 9월 열린 ‘파이널 판타지 콘서트 : 디스턴트 월드’는 비디오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에 등장하는 주요 OST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연이다. 공연이 열린 롯데콘서트홀에 따르면 MD 상품을 구매하려는 관객이 몰리면서 진땀을 뺐다. 프로그램북부터 작은 기념품까지 일명 ‘쓸어가는’ 관객이 몰려 공연 측에서도 당황했다. 공연이 시작했음에도 MD 구매 줄이 줄지 않는 기현상도 나왔다. 다른 공연과 비교해 MD 판매 매출액이 100배를 넘겼다는 관계자 전언이다.

지난해 공연계 MD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두 공연장의 풍경이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온 콘텐츠라는 공통점이 있다.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연 MD상품 매출액이 포함된 기타 공연사업 수입은 연 446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29.8% 증가했다. 성장률만 보면 가장 높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물지 못하다. 매출 상승액의 대부분을 콘서트 부문에 기대고 있다. 뮤지컬을 제외한 클래식, 국악 등 공연에서의 MD 판매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업계 분석이다. 매해 규모를 키우는 한국 공연계나 MD 산업은 걸음마 단계다. MD는 머천다이즈(Merchandise)의 준말로 공연장이나 공연 콘텐츠를 소재로 만든 상품을 말한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상징하는 로고(사진=허명헌 개인 소장)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상징하는 로고가 박힌 에코백과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코스트 MD (사진=허명헌 개인 소장)
△살 게 없다.. 한국 공연 MD

“한국에서는 기념품으로 살만한 게 없어요.”

클래식 애호가를 자처하는 허명현 씨(28)의 푸념이다. 국내외를 오가며 공연장을 다니는 그는 다양한 상품군이 갖춰진 외국에 비해 한국 MD는 그다지 구매욕이 당기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들어 그나마 향초 등으로 세분화하긴 했으나 공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품이 많아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허 씨는 “공연 MD는 마니아에게 일종의 전리품 같은 것”이라며 “유럽에 있는 이름난 공연장에는 역사가 긴 유명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상징하는 MD 상품이 다양하게 있어 수집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적당한 가격에 제품의 질도 좋아 만족도가 높다.

부실한 MD는 클래식 뿐만 아니라 뮤지컬 등 비교적 대중화된 공연계도 마찬가지다. ‘라이온 킹’ 등 브랜딩이 된 유명 라이선스 공연과 달리 창작 공연계는 특정 출연진에 기댄 MD 제품을 출시해 반짝인기를 끄나 수명이 길지 않다. 공연의 감동을 오랫동안 이어줄 ‘핵심 MD’가 없다는 말이다. 공연이 단기간에 끝나는 클래식이나 무용, 국악 등은 MD 상품을 내기도 어렵다. MD도 공연의 일부라는 인식은 있으나 개발 의지가 낮아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오지 않는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공연 관련 MD의 경우 사업이라기보다는 관객 서비스라는 개념이 강하다”라며 “안정적으로 장기 공연을 하는 브로드웨이 등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아 공연 자체를 브랜드화하기보다 캐스팅에 초점을 맞춰 단기간에 판매고를 올리는 방식이 많다”고 밝혔다.

일례로 인터파크는 공연계와 연계해 MD 상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인터파크 MD샵’을 오픈했으나 최근에는 야구 등 스포츠와 게임 관련 MD 상품만 전시 중이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공연 관련 제품도 있었으나 한정 생산해 공연기간에만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재고 문제도 겹치면서 자연스레 공연관련 MD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제작해 판매 중인 피아노와 바이올린 오르간 등을 형상화한 배지(사진=롯데콘서트홀)
사진=롯데콘서트홀
△한국 공연 브랜딩 첫 단추 단계.. 시행착오 겪더라도

열악한 상황에도 공연 MD 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관람객의 인식 역시 ‘공연만 본다’에서 ‘추억할만한 MD도 구입한다’로 바뀌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공연 MD상품 구매경향에 따르면 공연을 10회 관람할 경우 MD 상품 구매 빈도는 약 20%가 두 번 정도는 구입한다고 나왔다. 지불가격은 1만원에서 2만원 사이가 42.1%로 가장 높았다.

‘라이온킹’을 준비한 노민지 클립서비스 과장은 “MD는 공연의 관람을 기념하기 위해 관객들에게 드리는 일종의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공연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로 자리 잡았다”며 “다양한 종류의 MD가 등장하고 사랑받으며 공연의 부가가치 시장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공연장 자체를 브랜드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처럼 관광화하는데 자체 MD는 필수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이 운영하던 자체 기념품숍이 예산 등을 문제로 지난해 2월 문을 닫는 등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자체 MD 개발을 진행 중이며 올 하반기에는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라 예고했다. 롯데콘서트홀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을 본뜬 배지를 제작하고 공연장의 모습이 담긴 에코백과 엽서를 제작하는 등 기초 단계를 밟고 있다.

공연계에서는 MD 산업과 관련해 제대로 된 통계도 찾기 어려운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다. 본 공연에 더해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건 체감하고 있으나 산업규모가 불명확하고 그나마 나온 성공사례도 일부 아이돌가수의 콘서트부문 MD에 집중돼 투자 여력을 찾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높은 퀄리티의 공연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나 MD 등 2차 콘텐츠로 브랜딩화하는 작업이 한국 공연계에서 더디다”라며 “공연 시장이 더 커지기 위해서는 MD 활성화를 통해 공연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고민을 해야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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