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한일합섬, 철저한 구조조정으로 회생 기미

  • 등록 2000-08-06 오후 3:02:43

    수정 2000-08-06 오후 3:02:43

부도로 사형선고를 받은 한일합섬이 2년 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법정관리 아래에서 착실한 자구노력을 진행, 회생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구조조정에 실패한 현대건설의 워크아웃, 법정관리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법정관리 기업의 재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일합섬의 박창준 상무는 "부도났을 당시에는 우리만 당했다는 원망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법정관리 덕분에 철저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고 털어놓는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시작하다=한일이 부도난 것은 지난 98년 7월1일. 이로부터 6개월만인 99년1월 법정관리 개시결정이 나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사실 부도가 나기전인 90년대 초반부터 한일은 구조조정을 생각했다. 섬유산업이 성장에 한계를 보임에 따라 이 부분을 줄이는 대신 건설, 생명공학, 전자 등으로 다각화하고 섬유공장 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박 상무는 "구조조정 착수 시기가 남들보다 늦은 것은 아니었다"며 "다만 최고경영진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어 효과가 미미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없는 구조조정이 잘 될 리 없었다. 법정관리는 이런 자발적 구조조정보다 가혹하게 회사를 바꿔놓았다. 한일은 생명공학 진출의 꿈을 스스로 접었다. 총 700억원 투입해 키웠던 한효과학기술원을 198억원에 벤처기업에 팔면서 제약 사업부도 매각했다. 의류내수 부문은 총 7개 브랜드중 자체 수익이 가능한 남성복 "윈디클럽", 여성복 "레쥬메" 등 2개 브랜드만 남기로 5개 브랜드를 포기했다. 900억원 매출사업이 300억원으로 축소됐다. 올해 한해동안 162억원의 자구노력을 이행키로 채권단과 약속했지만 한일은 올들어 6개월만에 269억원의 자구실적을 달성, 채권단을 안심시키고 있다. 그 사이 엄청난 인원이 회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97년말 15개 본부 1789명으로 연간 인건비가 449억원이 소요되던 한일합섬은 2년6개월만에 10개본부 1009명으로 줄였고 인건비도 227억원으로 낮췄다. 한때 40명이나 되던 임원도 지금은 9명에 불과하다. 인원수는 44%, 금액은 49%가 감소한 것으로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눈물을 머금고 회사를 떠났는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이들의 희생 대신 연간 280억원 규모의 손익개선 성과가 가능할 전망이다. 백용기 기획실 차장은 "2년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기간동안 노조의 파업이 없었고 올해에는 노사가 임금가이드라인 이하로 임금인상을 타결지을 정도였다"고 직원들의 협조가 큰 보탬이 됐음을 잊지 않았다. 김정재 한일그룹 전부회장을 재산관리보전인으로 맞은 것도 불행중 다행이었다. 수년전 김중원 회장과 마찰을 빚어면서 그룹 부회장에서 물러났던 김 관리인은 기획통으로 한일합섬 사장을 지내기도 하는 등 한일의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직원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박 상무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원이나 은행 등으로부터 협조를 받는게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관리인 덕분에 이를 잘 넘기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 관리인은 직원들의 협조를 끌어내는데도 강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노사가 한몸이 되어 구조조정을 진행하자 구사주가 경영에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백 차장은 "만일 구사주가 경영에 개입했다면 구조조정은 백년하청이 됐을 것"이라며 "이것이 법정관리의 최대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철저한 자구노력과 노사협조, 구사주 배제 등 3박자가 갖춰지자 한일은 고통의 터널에서 서서히 헤쳐나올 수 있었다. 한일의 몰락은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 한일합섬은 70~80년대 달러를 긁어모으던 한국 최고의 수출업체였다. 이 회사가 부도난 것은 98년7월1일로 지금으로부터 거의 2년전의 일이다. 문민 정부 시절 경남고 인맥을 내세워 무리한 사업확장을 펼치던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모기업인 한일합섬을 중심으로 전체 매출이 기껏 2조원 안팎이던 한일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우성그룹을 인수하려고 촉수를 뻗쳤던 것은 무모한 확장경영의 대표적인 예. 우성 인수가 무산된지 얼마 안돼 우리나라가 IMF관리체제로 들어가자 한일은 바로 휘청거렸다. 특히 수출유전스를 1억달러 가량 사용하고 있던 한일합섬은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자 환차손의 직격탄을 맞았다. 1달러당 800원에 빌렸던 것을 1600원이상으로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이 600~700%에 이르던 한일은 급기야 정부의 퇴출기업 명단에까지 포함됐다. "법정관리 신청이라니, 그런 소리는 내앞에서 다시 꺼내지 마라" 부도가 나기 한달전쯤 한일합섬의 자금담당 실무자들이 김 전회장에게 법정관리를 준비하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정 뿐이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실무자들은 몰래 법정관리 신청을 위한 서류준비를 시작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자금 담당자를 중심으로 일상 업무가 끝나는 저녁 시각부터 경영진 몰래 숨어서 일을 했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실제 며칠 뒤 한일은 정부의 퇴출기업 명단에 포함되면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98년7월1일 도산했다. 당시에는 불만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김영삼 정권과 관계가 가까운 대표적인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손 볼 기업"으로 찍혀 부도처리됐다는 식의 서운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며 "얼마뒤 우리가 법정관리절차를 밟는데 비해 고합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을 비교하면 더 그랬다"고 술회했다. ◇되살아나는 회사 분위기=지난2월말 법정관리 인가결정으로 일단 채무상환이 유예받게 되자 남 탓을 하는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회사정리계획안에서 당시 확정된 채권액은 무려 2조3천183억원. 이중 주채무는 7357억원이었고 계열사 보증채무와 건설사업과 관련한 분양채무 등이 나머지 대부분이었다. 한일은 확정 채무중 보증채무를 100% 면제를 받았다. 대신 7개나 되던 자회사의 지분을 내놔야 했다. 주채무 7357억원가운데 담보채권 5590억원은 전액 상환키로 하는 한편 나머지 정리채권은 은행이 70%를 출자로 전환하며 30%인 1703억원(원리금 포함)만 상환하는 조건을 부여받았다. 모두 7293억원 및 이자를 10년내 갚으면 법정관리체제에서 졸업하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 등 채권단의 협조가 있자 곧 좋은 징조가 나타났다. 첫째 한일합섬의 사업근거지인 마산 지역 주민들이 한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일은 마산 도심에 위치한 총 13만평에 달하는 공장 부지중 일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 올 7월초 664세대를 분양했다. 당시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도 요즘처럼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 분양율이 70%만 되어도 다행이라 할 만큼 리스크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마산 시민들이 적극 참여한 덕분에 1차 분양에서 90%가 넘는 분양율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분양대금으로 742억원이 확보된 셈이다. 한일은 2006년까지 이 지역에 모두 4880세대를 분양, 7458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이중 2827억원의 자금을 회사로 유입시킨다는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건설사업 확대와 함께 신인견 섬유인 "코셀(COCEL)"의 사업화도 한일이 사운을 걸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섬유는 93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이화섬 박사팀이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하는데 성공, 95년부터 한일합섬과 상업화를 추진했던 신섬유다. 한일은 현재 마산공장에 연산 60톤짜리의 파일럿 공장을 가동, 여기서 생산된 원면으로 방적, 제직 및 염색가공을 거쳐 후가공 업체들을 통해 제품화하고 있는데 성공할 경우 영업이익률이 무려 30%나 되는 기대주다. 이 같은 시험운영과 함께 모두 90억원을 들여 하루생산량 7.5톤 규모의 1단계 생산공장건설을 착수, 내년 3월 국내 섬유업계에서 처음으로 정상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어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증설, 2단계는 하루 생산량 30톤, 3단계도 30톤 등 모두 800억원을 투입해 총 하루생산량 67.5톤 규모로 공장을 확대, 연간 85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한일은 이밖에도 연평균 115만달러에 이르는 대북경협사업을 더욱 확대키 위해 기술을 전수하고 유휴공장 이전 등 사업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8월중 실무회담을 목적으로 평양 방문도 추진중이다. 백 차장은 "4500억원 정도(97년)이던 매출액이 지금은 4000억원정도로 줄어 들었지만 올해 64억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으며 건설사업, 신인견 섬유의 사업화가 성공하면 회사 실적은 급속도로 호전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일은 무엇보다 부도후 한푼의 신규자금도 은행으로부터 지원받지 않은 채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수행, 은행권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부실기업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박결, 손 무슨 일?
  • 사실은 인형?
  • 왕 무시~
  • 한라장사의 포효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