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배려한 '착한 차' 크라이슬러, 왜 실패했을까

크라이슬러 노땅차, 독일 효도폰…
'노인=싸고 튼튼한 것' 맞춰 실패
미래 장수경제시장서 성공하려면
고령층 '필요' 넘어 '욕구' 읽어야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조지프 F 코글린|488쪽|부키
  • 등록 2019-03-20 오전 12:12:00

    수정 2019-03-20 오전 12:12:00

암투병 중인 아흔 나이에도 반려견을 태우고 자동차로 미국대륙을 횡단했던 미스 노마. 그녀의 이야기는 ‘드라이빙 미스 노마’란 소설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미국 노인시장 전문가인 조지프 F 코글린은 노년이 ‘그저 무사하게 안락한 여생을 보내는 시기’란 생각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필요가 아니라 욕구를 읽어내야 미래 장수경제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진=‘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캡처).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미끈하게 잘 빠진 자동차. 겉만 잘난 게 아니라 안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신경 써 배려한 건 운전의 편리성. 누군가가 “목을 꺾지 않아도 높이 매달린 신호등이 보입니다”라고 했다. 파워핸들을 돌리면서는 “잘 움직입니다” 했고, 버튼식 기어제어 장치를 보여주며 “이제껏 나온 자동차 가운데 가장 믿음직스럽습니다” 했다. 엔진룸을 홀랑 까 보이곤 “훨씬 가볍고 훨씬 조용하며 훨씬 연료가 덜 듭니다”라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착한 차’였다. 다른 건 다 접어두고서라도 무조건 어르신을 배려한다지 않나. 알아보기도 쉽게 아예 ‘노땅차’라는 애칭까지 만들었다. 크고 느리고 편리한 자동차라고. 이뿐인가. 차를 광고하는 모델을 봐라. 왕년의 스크린을 들었다놨다 한 68세의 대스타다. 지금까지 이런 모델은 없었다. 광고판에서 주름진 얼굴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한 줄기 희망이 됐으니까.

자, 이러니 얼마나 잘 팔릴까.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기대도 의욕도 하늘을 찔렀건만 딱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으니, 판매가 바닥을 기는 거다. 이런 상황을 언론이 놓칠 리가 있나. 뉴욕타임스가 잽싸게 나서 “성능도 이익도 추락했다”며 착한 차를 향한 비아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안 팔리는 건데?

답은 심플하다. 아무도 사질 않으니 안 팔릴밖에. 젊은 층은 물론이거니와 정작 조부모 세대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건데. 조용하고 편리하고 연료절약에 최적화한 자동차 생산에 몰두하느라, 가속이나 운전조종 같은 성능개발에 앞다퉈 새 기록을 세우는 경쟁사들의 행보를 놓친 결정적 실수도 있고. 뒤늦은 깨달음이었지만 자동차회사는 노인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연상작용이 가장 큰 패인이라 분석했다. 이때 나온 교훈이 있다. ‘젊은이가 타는 차를 노인에겐 팔 수 있어도 노인이 타는 차를 젊은이에겐 팔 수 없다.’

어떤 상품이 대놓고 고령사용자를 겨냥하면 노인조차 모욕을 느낀다는 대단히 선명한 사례. 이는 얼추 60여년 전 미국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의 뼈아픈 경험이다. 그렇다고 옛날 얘기로만 볼 것도 아니다. 비근한 예는 요즘도 왕왕 들린다. 버튼을 크게 달고 떨어뜨려도 절대 깨지지 않는 ‘효도폰’을 만든 독일 휴대폰회사가 결국 문을 닫았다는 얘기, 케첩으로 유명한 하인즈가 치아도 성치 않고 소득도 없는 노인을 위한다며 만든 ‘노인식 통조림’으로 경영위기에 몰렸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노인도 외면하는 ‘노인상품’

의도야 어떻든 한 차례씩 혼쭐이 난 이들의 변명은 한결같다. “우린 그저 노인시장을 겨냥한 시니어비즈니스를 했을 뿐이거든요.” 과연 그런가. 완전히 엇나갔다. 왜? 노인시장이란 게 따로 없으니까. “은퇴 혹은 신체적 불편에 초점을 맞춘 노인을 위한 상품은 망하게 돼” 있다니까. 시니어비즈니스의 통념을 깨는 이 역설은 미국 노인시장 전문가인 저자의 입에서 나왔다. 노인 개념부터 잘못 짚고 있으면서 판에 박힌 ‘실버타깃 어쩌고’ 해봐야 승산이 없다는 논지다. 이 한마디로 저자는 우왕좌왕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고령화 시장’에 커다란 간판 하나 걸었다.

단순히 흥하고 망하고의 문제만 들여다본 것도 아니다. ‘판에 박힌’ 시선들이 노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해 그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현장도 짚어냈다. “노년이 그저 안락한 여생을 보내는 시기라고?” 특히 주목한 것은 이제 고령층으로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문화적 욕구. 이들을 기점으로 노년의 개념은 완전히 탈바꿈했으니까. 역사상 가장 첨단기술에 능한 새로운 고령집단이란 사실을 인식시켜줬으니까.

기능만이 아니다. 자주들 얘기하는 ‘보편적 디자인’이란 것도 상황은 비슷하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접근가능한 디자인’을 의미할 텐데. 좀 더 특별하게는 노인, 나아가 장애인까지 사용할 수 있는 상품까지 말이다. 무릎으로든 의수로든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는 레버식 손잡이가 한 예란다. 대단히 훌륭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자가 볼 땐 영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니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인 ‘초월적 디자인’을 내놓으라 했다. ‘접근가능한’이 전제가 됐으니 어차피 효용은 뛰어날 거고, 미치게 갖고 싶다는 열망까지 일으키게 하라는 거다. 필요가 아닌 욕구를 읽어내라는 소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우리가 맞을 그림 ‘미래 고령사회’, 그 배경색을 완성한다. 고령층이 ‘소비자로서 해야 할 일’을 수월하게 완수하는 이상적인 사회. 가령 전자레인지말이다. 손떨림이 있는 누군가가 뜨거운 요리를 꺼내다가 다칠 수 있다는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전자레인지는 간편식 산업시장을 뒤집은 ‘초월’을 이루지 않았느냐는 거다.

△돋보기도 틴트선글라스쯤 돼야 팔린다

결국 저자는 연령 따위의 초라한 차별화가 내놓을 잿빛 청사진을 우려한 듯하다. 그 프리즘을 통해 본다면 미래는 늙어가기에 아주 척박한 시간이 될 것이고, 사업하기에도 꽤 황폐한 공간이 될 테니까. 한 줄 요약으로 보면 이거다. ‘고령소비자를 구닥다리 취향에 응급치료나 받아야 하는 중환자 취급해선 답이 안 나온다’는 뜻. 미래 장수경제시장에서 그래도 성공했다는 상품 한번 내놓으려면, 시니어마케팅 좀 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말이다.

‘어마어마한 고령층’이라고 겁부터 주고 시작한 책이다. 맞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고령층이 자격증을 따야 얻을 수 있는 타이틀도 아니고 유일하게 걸리는 제한이 ‘나이’뿐이니. 수명이 길어지는 한 숫자는 계속 늘어날 거다. 저자는 여기에, 그 규모에 걸맞은 파워를 붙여낸 거다. 그것이 소비력이든 욕구든. 그러니 사회가 그냥 늙어가는 게 아니라고. 점점 다르게 기능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싸고 튼튼하고 편리하고 단순하고’는 더 이상 공식이 아니다. 어차피 잘 안 들리니 음질은 대충? 무조건 잘 보이는 게 장땡이니 큼직하고 두툼하게? 천만의 말씀이란다. 보청기도 에어팟 정도의 음질은 갖춰야 팔리고, 돋보기도 틴트선글라스쯤 되는 디자인을 뽑아줘야 팔린다는 얘기다. 이미 60년 전 경험한 ‘노땅차’를 끌어안고 아직도 헛발질 중인 ‘늙은 사고’에 가하는 어퍼컷 한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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