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17>곰보자국까지 정직하게 그려주게

▲'송창명 초상' '오명항 초상'으로 본 조선의 선비정신
백반증 앓아 피부 얼룩덜룩한 송창명 초상
흑색황달에 두창 흉터 선연한 오명항 초상
고관대작 올라도 결점 감추거나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올곧음 강직함 투영
  • 등록 2021-06-04 오전 3:30:00

    수정 2021-06-04 오전 3:30:00

‘송창명 초상’(1768·왼쪽)과 ‘오명항 초상’(1728). 송창명 얼굴의 하얀 얼룩은 ‘백반증’을 앓은 흔적이고, 오명항의 검은 얼굴과 곰보는 ‘흑색황달’과 ‘두창’을 앓으며 얻은 흔적이다. 고관대작의 인생말년을 그리는 데도 예외가 없던 ‘있는 그대로’의 화풍에서 조선 선비정신의 올곧음과 정직함을 읽어낼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작자는 알 수가 없다. 비단에 채색, 50.1×35.1㎝(송창명 초상), 51.2×39.5㎝(오명항 초상), 일본 덴리대도서관 소장.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세수를 하거나 샤워를 하면서 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늘어가는 주름의 개수가 보이는 겁니다. 얼굴에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합니다. 생활의 고비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훈장처럼 주름도 하나씩 생기고, 즐거움과 기쁨은 표정과 안색으로 나타납니다. 또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병색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얼굴에 항상 민감합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SNS 덕분에 더욱 자신의 얼굴에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겠지요.

사진이 없던 시절에는 그림이 사진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동수 초상’이 그려진 357년(고국원왕 27년)에 건립된 안악3호분 벽화에서부터 현대의 다양한 초상화까지 우리는 늘 자신의 모습을 그려왔습니다. 특히 기록에 더욱 철저했던 조선시대에는 행사나 모임을 기록한 계회도뿐 아니라 임금의 어진을 비롯해 공을 세운 신하의 초상이 대거 그려졌습니다. 초상화는 낯설지만 공감하기 쉬우며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그림입니다. 어느 시대보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초상화에서 선비정신의 진수인 정직함과 담백함이 잘 드러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중 두 점을 살펴볼까 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조선 18세기 문신 ‘송창명 초상’입니다.

병색까지 그려넣은 고위관료의 초상화

송창명(1689∼1769)은 영조 때 문신으로 사헌부·사간원의 주요 직책을 거쳐 대사헌·대사간까지 역임한 고위직 인물입니다. 사헌부·사간원은 임금의 하루일과를 간쟁하거나 정사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언관으로 문신 중에서도 뛰어난 인물이 주로 임명됐던 자리입니다. 초상화 속 송창명의 복장은 조선 관원이 공무를 볼 때 입었던 집무복인 시복(時服)이고 모자는 사모(紗帽)입니다. 사모는 앞이 낮고 뒤가 높은 모양으로, 뒤쪽에는 좌우로 수평의 뿔[角]을 꽂았습니다. 뿔도 직급에 따라 달라, 당상관은 무늬가 있는 뿔을, 당하관은 무늬 없는 뿔을 꽂았는데 ‘송창명 초상’의 뿔에는 무늬가 있는 것으로 비춰 당상관 이상인 고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가는 고운 색감과 섬세한 붓질로 고관 대신의 복장을 잘 표현했습니다.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얼굴은 어떻습니까. 갸름한 얼굴형에 눈썹은 많이 빠져 희미하고 눈 주위는 마치 동그란 안경을 쓴 것처럼 움푹 들어갔습니다. 팔자주름이 선명하고 수염은 백발이니, 모델의 나이가 가늠이 됩니다. 그런데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얗게 칠해져 있는 왼쪽 뺨과 턱, 귀, 이마입니다. 그 하얀 면과 본래 얼굴색의 경계도 일정하지 않고 얼룩이 번진 듯한 모습입니다. 송창명의 얼굴은 왜 이럴까요. 그 이유는 현대에 와서 밝혀졌습니다.

송창명이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현대의학적 병명으로 백반증이라고 합니다. 백반증은 정상 피부가 검게 변했다가 다시 흰색으로 변하는 ‘경계과색소침윤’이란 탈색현상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환자로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있었지요. 백반증은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며 멜라닌 색소가 없는 탓에 피부암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초상화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얼굴뿐만 아니라 손과 발을 비롯해 온몸이 하얗게 변해 있을 겁니다.

백반증을 앓으면 외관상의 이유로 삶의 질이 많이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위 언관으로 임금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직책을 수행했던 송창명은 자신의 얼굴 때문에 매우 괴로웠을 것입니다. 오른쪽 제발에 79세 때라고 적어뒀으니 사망하기 한 해 전 모습입니다. 그런데 대사헌·대사간을 지낸 고관대작이 인생 말년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굳이 백반증까지 드러내야 했을까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한데 초상화는 조금도 꾸미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조선 영조 때 문신 송창명(1689∼1769)을 그린 ‘송창명 초상’(1768) 부분. 얼굴의 왼쪽 뺨과 턱, 귀, 이마 등에 그가 앓았던 ‘백반증’ 흔적이 선명하다.
고관대작의 인생말년도 예외없던 정직한 표현

병색까지 그려넣은 초상화가 더 있을까 싶습니다만, 사실 백반증보다 더 무서운 병을 그린 다른 초상화도 있습니다. 바로 ‘오명항 초상’입니다. 오명항(1673∼1728)은 숙종 때 문신으로 이조좌랑과 경상도·강원도·평안도 관찰사를 두루 거쳤습니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사직했으나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등용될 때 이조·병조판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금부판사·사도도순무사로 반란을 진압하며 분무공신으로 책봉됩니다.

초상화는 1728년에 그린 시복본으로 역시 무늬가 있는 단령을 착용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분홍빛 옷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검은 얼굴과 그 얼굴을 덮고 있는 곰보자국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선시대 회화 중 인물의 얼굴이 검게 보이는 작품이 종종 있는데, 물감의 변색으로 생긴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 초상화의 경우는 변색이 아니라 처음부터 검게 그린 것입니다. 오명항의 얼굴이 검은 이유는 간경변증의 말기 증상인 흑색황달 때문입니다. 당시 간경화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오명항은 초상화가 그려진 해에 사망했습니다.

검은 얼굴색만큼 놀라운 것은 얼굴 전체에 남은 곰보자국입니다. 천연두·마마로도 불리던 두창의 흔적입니다. 두창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먼저 심한 열이 나면서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고름이 차고 나중에 딱지가 떨어지면서 흉터를 남깁니다. 다행히 회복된다고 해도 평생 흉터를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조선시대 인물화에는 두창 흉터, 일명 곰보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초상화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명항 초상’은 그중 특히 곰보자국이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어릴 적에 생사의 고비를 얼마나 힘겹게 넘겼을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선 숙종 때 문신 오명항(1673∼1728)을 그린 ‘오명항 초상’(1728) 부분. ‘흑색황달’로 인한 검은 낯빛, 두창을 앓은 흔적인 곰보가 얼굴에 선명하다.
태조 이성계 어진에도 사마귀·곰보자국

초상화에 나타난 두창의 흔적은 ‘태조 이성계 어진’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마귀와 더불어 곰보자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런 흉터를 기록한 초상화가 우리나라 전체 초상화 중 14%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이라고 두창이 없었을 리가 없는데 흉터까지 그린 초상화는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렇듯 조선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임금이든 정승이든 곰보·사팔·황달까지 숨김없이 그려놓는 무서우리만큼 원칙에 충실한 나라였습니다. 자신의 흠결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 원래 그대로를 보여주는 담백함이 조선의 선비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송창명 초상’의 백반증, ‘오명항 초상’의 흑색황달을 찾아낸 이는 피부과 전문의로 가천의과학대 총장을 지냈던 이성낙(83) 선생입니다. 선생은 의사로 교수로 은퇴한 뒤 다시 학생이 돼 미술사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요, 특히 조선시대 초상화 연구자로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송창명 초상’이 백반증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란 것을 밝혀낸 것도 선생입니다. 이 성과는 이후 국제적으로 거듭 인정을 받으며 초상화 연구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초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적 경험인 동시에 그림 속 인물과 만나는 심리적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나를 보여주는 오랜 전통인 초상화를 통해 자기 얼굴에 책임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이 “40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 말은 결국 자기 삶과 인생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였던 겁니다. 포토샵으로 감출 수 없는 내 삶과 인생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얻는 기쁨과 희열이 모두의 얼굴에 새겨지기를 응원합니다.

※ 조선시대 초상화

가히 ‘초상화의 시대’라 할 정도로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다. ‘유교’란 이념 덕이다. 왕을 비롯해 성현, 스승, 공신, 관료, 조상 등 지위와 관계를 기리고 기념하는 일이 필요했던 거다. 덕분에 ‘정신세계’를 묘사하는 일은 필수. 외형은 물론 내면과 인격까지 담아내야 했다. 다만 방점은 조금씩 달리 찍혔다. 시서화에 능했던 윤두서는 털·수염까지 잡아낸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자화상’을 그렸고, 최고의 궁중화원이던 이명기가 얼굴을, 최고의 풍속화가이던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는 ‘서직수의 초상’은 눈동자가 압권이다. 당시 기법으로는 배채법(뒷면에 색을 칠해 앞으로 배어나오게 함), 육리문(피부 밑에 감춰진 골상 표현), 운염법(얼굴 농담을 달리함) 등이 있다. 하지만 말기로 갈수록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은 음영법이 강조되며 영·정조시절 탄력 있고 긴장감 넘쳤던 화법은 점차 사라진다. 이 시기 전통양식을 따른 마지막 인물화가이며 전통과 서양화법을 조화시킨 이로 채용신이 꼽힌다. ‘세부묘사와 원근, 명암 등을 장기로 ‘영조어진’ ‘최익현 초상’ 등 70여점을 남겼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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