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 이국종 교수는 할 수 없는 일

한국계 미국인 의사 '대증요법' 반기
최첨단 의료기술·신약 답? 그건 환상!
환자 주체 안 되면 어떤병도 못 고쳐
이윤찾기 골몰하는 제약회사 비판도
…………
환자 혁명
조한경|344쪽|에디터
  • 등록 2017-11-29 오전 12:12:00

    수정 2017-11-29 오전 9:41:02

한국계 미국인 의사인 저자 조한경은 당장 통증부터 다스리려 드는 ‘대증요법’이 지배하는 현대의학을 꼬집는다. 최첨단 의료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신약개발이, 과학·테크놀로지가 ‘답’을 갖고 있다는 환상을 버리라는 거다. 환자가 건강주권을 찾겠다고 나서는 의료혁명이 없다면 어떤 병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의료과실로 환자가 죽는다. 그것도 대단히 많이.” 한국이라면 입 밖에 꺼내놓는 순간 서로에게 재앙이 될 상황. 그 상상조차 버거운 의료과실에 대한 통계가 미국에는 있나 보다. 하루에 700명쯤 된단다. 굳이 비유하자면 ‘점보 여객기가 매일 두 대씩 추락’하는 꼴이다. 2013년에 연간 25만명을 찍었다. 전체 사망자의 9.5%나 된다. 심장질환, 암에 이어 미국인 사망원인 건수로 3위란다.

도대체 의료진이 뭘 어떻게 했길래 환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뜨나. 그래서 사망자 25만명을 낸 의료과실을 따져봤다. ‘의약품의 부정적 효과’가 가장 많았다. 10만 6000명. 마이클 잭슨이니 휘트니 휴스턴이니 유명인사를 사망케 한 그것이다. 약은 제대로 처방했으나 약물 부작용을 일으킨 경우다. 다음은 8만명에 달하는 ‘병원 내 감염’. 그 뒤를 이어 ‘약 처방 외 의료진 실수’(2만명), ‘불필요한 수술’(1만 2000명), ‘병원 내 약 처방실수’(7000명) 등이 줄지어 따라나왔다.

이 수치도 참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 한 방이 더 있으니, 이 가운데 적게는 5% 많이 잡아봐야 20% 미만의 의료과실만 정상적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

상황이 이렇다면 한국에선, 자꾸 비교하려 들어 미안하지만, 진짜 죽고 살 문제로 전면전이 벌어질 판. 그런데 이 와중에도 미국인들은 “희망을 찾아야” 따위의 놀라운 말을 꺼내놓는다. 의료과실이 나쁜 의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처벌이나 법적 대응으로 풀 일도 아니며, 구조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는다고.

그러곤 결국 이런 생각을 가진 의사를 만들어낸다. “그럼.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말이다. 왜 우린 이런 위험천만한 의술을 고집해야 하는 건가.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한국계 미국인 의사인 저자 얘기다. 책은 바로 그 ‘다른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 기존 의료상식에 반기를 든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척추신경전문의로, 영양학·기능의학 연구자로 17년간 진료를 했다는 경험을 곧추세운다.

△명의와 돌팔이의사 가르는 기준

무엇보다 대증요법에 반기를 든다. 대증요법이 뭔가. 무턱대고 통증을 다스리려 드는 것이다. 이 안에서 의사의 보람은 한 가지다. 약을 잘 처방해 통증이 멎었다고 환하게 웃는 환자의 얼굴을 보는 것. 그런데 생글거리던 환자가 다시 얼굴을 구기고 돌아왔다? 저자가 볼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의사는 두 종류로 나뉜다. ‘이건 아니다’라고 비로소 깨어나는 의사와 ‘그래도 어쩌겠느냐’고 계속 주저앉아 있는 의사. 그중 깨어난 의사가 이제 침술을 공부하고 영양학을 공부해야겠다고 한다면 ‘사이비 의사’ 취급받기 딱 좋을 거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여기서 발동한다. “의사가 좀 그러면 어때?”

다만 조건이 있다. 의사가 태산같이 걱정하는 일부터 짚자. 의학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숙한 환자들이 혁명하듯 들고 일어나 의료체계를 뒤집어놓는 것이다. 이른바 ‘환자혁명’. 저자는 바로 그걸 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가 주체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병도 고칠 수 없다고. 국민이 못미더웠던 과거 정치독재자들도 똑같은 걱정을 하지 않았느냐고.

환자에게도 일침을 꽂는다. 최첨단 의료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신약개발이, 과학·테크놀로지가 ‘답’을 갖고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거다. ‘돈은 남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막상 더 중요한 건강은 잘도 맡기더라’와 같은 현대인이 처한 모순을 물고 늘어진다. 항생제를 안 주면 돌팔이의사인가? 병명은 알지만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는데도?

△제약회사가 주도한 과학에 휘둘려서야…

음식이 병의 원인이란 인식도 희박하지만 음식이 병을 고친다는 건 기겁할 일이다. ‘민간요법’이니까. 이건 격리시켜야 할 ‘정신병’쯤 되니까. 대신 현대의학이 관대한 건 약이다. 무한신뢰로 나눠준다. 그런데 저자가 보아하니 병은 여기서 생기더란다. 응급상황과 만성질환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가령 어떤 환자가 병원을 찾았는데 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치자. 의사의 목표는 정확하다. ‘혈압을 잡을 것!’ 우선 혈압을 내리고 질문은 그다음에 하기로 한다. 고혈압은 응급상황이니까. 약에 부작용이 생기면 어떡하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고혈압은 역시 응급상황이니까. 부작용은 그때 가서 또 응급처치를 하면 되지 뭐.

블랙코미디 한 편을 펼쳐두고 저자는 정작 제약회사를 상대로 날을 세운다. ‘제약회사가 주도하는 과학에 끌려다닌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의과대학과 종합병원을 후원하고, 의학저널의 최대 광고주가 되고, 모든 의학연구에 뭉텅이돈을 기꺼이 내놓는 그 선행을 ‘콕’ 찍어서. 이게 뭐겠나. 의료계를 그들의 축으로 돌리려는 계산이란 거다. 아무런 비판이나 여과없이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을 받아들이게 하고 거대한 의료공화국을 세우려는 목적이라고.

저자가 제약회사에 갖는 불신이 큰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약을 들이밀고 그 약을 맹신하게 한다. 나빠질 건 뻔한데 당장 괜찮아졌다 싶게 증상만 완화해주는 약을 만든다는 건 더 심각하다. 그래서 기능의학이 필요하단다. 몸에 필요한 건 채우고 해가 되는 건 빼내는 그것. 약물의존적 증상완화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살인자의 칼이 따로 있지 않다

최근 판문점으로 귀순한 병사를 수술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가 화제다. 국내 중증 외상분야 최고권위자로 평가하는 데 트집 잡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이 교수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환자 스스로가 건강주권을 찾겠다고 나서는 의료혁명이다.

물론 “의사가 가까이 가면 환자가 살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이 교수의 지론은 진리에 가깝다. “이윤에 집중하는 병원에만 올인하니 외상센터가 생기기 전에 암센터가 생긴다”는 얘기도 맞다. 하지만 저자의 논지에 비춰보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외상환자보다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해 그 길을 재촉하는 환자가 더 많을 수 있다. 만약 사투를 벌일 만큼의 위중한 외상이라면 이 교수를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나머지는 다른 의사가 아닌, 환자 하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현대의학이 ‘그간 군림해온 독점적 지위를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는 권고. 이를 위해 책은 질병과 의료계, 환자의 삼각구도를 그려놓고 입체적으로 더듬는다. 대부분이 미국의 사례인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저자가 의도한 큰 그림을 먼저 잡아낼 수 있다면 딱히 거슬리는 부분은 없다.

한 가지 더. 이 교수를 지칭한 ‘칼잡이’란 표현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 이 교수가 직접 한 말이니까. “나는 칼을 쓰는 사람이다. 살인자가 쓰는 칼과 칼 잡는 각도만 다르다”고 했더랬다. ‘칼’이라면 저자도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아마 살인자의 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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