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볼딩 같은 학자는 평화를 적극적 의미의 평화와 소극적 의미의 평화로 구분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적극적 의미의 평화란 잠재적으로도 무력 사용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소극적
우리가 추구해야할 평화는 당연히 적극적 의미의 평화다. 하지만 적극적 의미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단 소극적 의미의 평화부터 이루도록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궁극적인 목표, 즉 적극적 의미의 평화에 도달하려 한다면 소극적 평화를 추구할 때에도 무력사용이 없는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잠재적으로도 무력 사용가능성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 시점부터 사용 가능성이 있는 무력을 없애는데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인 ‘종전 선언’ 문제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을 비난했지만, 내용을 보면 자신은 성의를 다해 실질적 조처를 해나가고 있는데 미국이 상응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불평”이라며 “북·미 정상 간 합의는 잘 이뤄졌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 마련을 위한 실무협상은 순탄치 않은 부분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드는 의문은, 지금 북한이 성의를 다해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조치를 북한이 취했다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건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만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실질적 조치’라고 평가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의 언론과 학계에서 많은 이견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어야 했다. 한미 양측의 학계와 언론에서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한미 양측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북한은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한미 양측은 한미 훈련을 중단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실질적 조치’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전문가들의 이런 평가를 감안했어야 했다.
논리적으로 맞는 순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그 이후 종전 선언을 추진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북한의 가시적 조치가 미진한 상황에서 종전 선언을 추구하면 오히려 북한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꼴이 돼,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더디게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종전 선언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선언’이기 때문에 정치적 이벤트일 뿐 구속력은 평화협정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상징성은 충분하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때, 핵을 가진 북한과의 종전 선언 추진은 앞으로 한반도에서의 우리 입장의 약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한반도의 평화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이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