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의병정신

  • 등록 2018-06-25 오전 5:00:00

    수정 2018-06-25 오전 5:0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얼마 전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본인은 물론 두 아들과 함께 목숨을 바친 전라도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의병장의 거룩한 애국 정신을 다룬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의병장의 당시 활동상을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격하게 전개되는 전쟁과 평화의 냉·온탕식 기류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지금부터 42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혹독한 상처를 안겼다. 일본열도를 통일한 막강한 정예 왜병은 불과 두세 달 만에 조선 땅을 거의 유린했다.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고, 명나라 원군은 얼마 지나서야 일부 지역의 수복 전투에만 참전했다. 충무공의 활약도 주 무대는 바다였다. 이런 와중에 육지 곳곳에서 왜적과 맞서 싸운 것은 의병들이었다.

의병은 누구인가? 대부분 농사를 짓던 민간인이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무기도 변변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과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나섰을까? 그런 판단 이전에 평소 존경하던 향촌의 선비가 의병장으로 앞장서기에 그 결정을 믿고 뒤따랐을 뿐이다. 지도층의 리더십이 저절로 작동한 순간이었다.

고경명은 당시 60세의 노 선비이자, 전쟁 1년 전 동래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물러나 글을 읽던 한낱 전직 관료였다. 그런 그가 두 아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의병을 일으켰던 것이다. 자신과 아들의 몸만 바친 것이 아니고 주위의 수많은 사람을 의병으로 이끌어냈다. 또 무기와 군량도 본인 책임 아래 마련하였다. 나라가 어려우면 떨쳐나서는 것이 선비의 본분이라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쟁의 승패와 일신의 안위보다 오직 무엇이 옳은지 만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고경명과 두 아들 그리고 대부분의 의병은 그렇게 차례로 전장에서 순국하였다.

어디 고경명 장군만 그랬던가? 같은 호남 땅의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이 그랬고, 충청도의 조헌(趙憲, 1544~1592)도 700 의병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하였으며, 경상도의 곽재우(郭再祐, 1552~1617) 또한 붉은 갑옷을 입고 신출귀몰해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외에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공동체를 위한 지도층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야기 할 때 서양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거론한다. 그들은 축적한 부를 사회에 과감히 환원하고 전쟁이 나면 먼저 앞장서는 전통을 부단히 만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 선비들은 그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지않은 솔선수범의 문화를 일구었다. 궂은일은 앞서 맞고 즐거운 일은 남에게 먼저 양보하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이 나면 솔선하여 의병을 일으켜 가족과 아랫사람들까지 합류시켰다. 국가 권력 밖에 있는 비정규 조직이기에 무기와 각종 보급품도 스스로 조달했다. 주로 정규군 지원을 통해 봉사한 서양 상류층의 행동과는 결이 다른 거룩한 헌신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전쟁사에서 민간인이 주력 부대를 이루면서 전쟁을 전면에서 수행한 나라는 조선왕조 이외에는 유례가 거의 없다. 조선왕조 말에도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이 온갖 희생을 무릅쓰면서 강력한 일본 정규군과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승패를 떠나 얼마나 자랑스러운 전통이자 문화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도 나라가 위기에 직면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려면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외교에서 성공하려면 상대가 우리를 만만히 볼 수 없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나라의 힘은 어떻게 배양되는가? 애국심에 뿌리를 둔 국민의 단결심이 토양이다. 그 토양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준 대로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 속 선비의 의병정신을 오늘에도 되새겨야 하는 까닭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집중'
  • 사실은 인형?
  • 왕 무시~
  • 박결, 손 무슨 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