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2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혹독한 상처를 안겼다. 일본열도를 통일한 막강한 정예 왜병은 불과 두세 달 만에 조선 땅을 거의 유린했다.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고, 명나라 원군은 얼마 지나서야 일부 지역의 수복 전투에만 참전했다. 충무공의 활약도 주 무대는 바다였다. 이런 와중에 육지 곳곳에서 왜적과 맞서 싸운 것은 의병들이었다.
의병은 누구인가? 대부분 농사를 짓던 민간인이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무기도 변변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과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나섰을까? 그런 판단 이전에 평소 존경하던 향촌의 선비가 의병장으로 앞장서기에 그 결정을 믿고 뒤따랐을 뿐이다. 지도층의 리더십이 저절로 작동한 순간이었다.
어디 고경명 장군만 그랬던가? 같은 호남 땅의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이 그랬고, 충청도의 조헌(趙憲, 1544~1592)도 700 의병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하였으며, 경상도의 곽재우(郭再祐, 1552~1617) 또한 붉은 갑옷을 입고 신출귀몰해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외에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공동체를 위한 지도층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야기 할 때 서양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거론한다. 그들은 축적한 부를 사회에 과감히 환원하고 전쟁이 나면 먼저 앞장서는 전통을 부단히 만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 선비들은 그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지않은 솔선수범의 문화를 일구었다. 궂은일은 앞서 맞고 즐거운 일은 남에게 먼저 양보하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이 나면 솔선하여 의병을 일으켜 가족과 아랫사람들까지 합류시켰다. 국가 권력 밖에 있는 비정규 조직이기에 무기와 각종 보급품도 스스로 조달했다. 주로 정규군 지원을 통해 봉사한 서양 상류층의 행동과는 결이 다른 거룩한 헌신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려면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외교에서 성공하려면 상대가 우리를 만만히 볼 수 없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나라의 힘은 어떻게 배양되는가? 애국심에 뿌리를 둔 국민의 단결심이 토양이다. 그 토양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준 대로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 속 선비의 의병정신을 오늘에도 되새겨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