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숙? 비상시 왕궁! 남한산성의 두 얼굴

  • 등록 2014-06-23 오전 7:00:01

    수정 2014-06-23 오전 7:00:01

세계유산이 된 남한산성(사진=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백숙.” 30~50대 직장인 10명에게 “남한산성 하면 뭐가 떠오르나”라고 물었더니 7명이 “닭볶음탕” “장어” 등 먹을거리를 답했다. 서울 수유리에 사는 김영자(가명·49) 씨는 “남한산성 하면 아무래도 몸보신 하러 먹으러 가는 곳이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며 “그 다음이 사람들 북적이는 등산로 정도”라고 말했다. 22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이 된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사적 제57호). 이곳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생각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도 절반이 “모르겠다”고 답했다. 남한산성이 백숙을 먹거나 산책하는 곳 정도로만 여겨질 정도로 우리 안에서는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소리다.

남한산성 속 역사(자료=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비상시 임시수도’ 산속 왕궁 남한산성=둘레 11.76㎞, 면적 52만 8000㎡의 남한산성은 ‘비상시 왕궁’이었다. 조선시대 임시 왕궁인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춰 전란이 일어나면 수도 역할을 했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가 병자호란(1636) 때 한양 도성을 포기하고 피신해 저항했던 곳이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비상시 임시수도 역할을 했던 산성은 세계적으로 남한산성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남한산성은 1000년이 넘는 축성술과 무기발달사도 간직하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672) 때 지어진 주장성에서 출발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치르며 인조부터 정조(1779) 때까지 150여년 동안 증축됐다. 이 과정을 거치며 성곽 돌모양이 달라졌고, 활을 쏘는 전안에서 대포를 쏘는 포안 등으로 무기 변화 흔적도 남기게 됐다. 이것이 전쟁을 거치며 동아시아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으로, 바로 세계유산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은 지점이다. 여기에 유형문화재 6건(수어장대, 연무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과 무형문화재 1건(남한산성 소주) 등이 다양하게 퍼져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행궁 등 유·무형문화재가 살아 숨 쉬는 복합 문화유산 터인 셈이다.

남한산성 속 마을(사진=문화재청).


▶300년 넘게 사람과 공존…‘삼전도 굴욕’부터 홍상수 영화까지=남한산성은 이야기가 있는 길이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을 빼놓을 수 없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송파의 한강변인 삼전도에서 9번이나 머리를 맨땅에 조아린 역사의 회오리가 지나간 곳이다.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치열했던 47일간의 항전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남한산성은 종교의 보고이기도 하다. 입구 주변에는 천주교 순교성지와 함께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천주교 박해로 당시 신자들이 끌려와 순교를 당하던 곳이다.

이 모두는 사람과 역사가 얽힌 흔적이다. 사람 없이 역사는 깃들지 않는다. 남한산성은 군사시설이다. 하지만 내부에 사람이 살면서 생활이 이뤄졌던 산성도시였다. 인조가 성 내부로 백성의 정착을 장려해 4000명 이상이 살았고, 현재까지도 주민이 살고 있다. 살아 있는 유산인 셈이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인 최재헌 건국대 교수는 “조선시대 방어전략으로 군사적 기능과 읍성의 행정기능을 산성에 결합하는 산성거주론이 실현됐고 이 기능은 오직 남한산성만 유지했다”고 남한산성의 도시로서 가치에 의미를 뒀다. 300년 넘게 사람과 함께 산 남한산성은 그만큼 친근한 장소다. 과거와 현실의 공존, 일상이자 환상의 공간이기도 한 남한산성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최종병기 활’ 등 영화의 주 배경으로 쓰이며 예술공간으로도 주목받은 이유다.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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