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건희미술관' 설립, 고인 뜻 살리려면

다양한 시기·장르별 작품 엄선해 기증
한 군데로 모을 전시·연구 어려워
지나친 미술관 유치 경쟁으로 기증 의미도 퇴색
기증자 취지 고려한 활용방안 내놔야
  • 등록 2021-07-06 오전 6:00:00

    수정 2021-07-06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지난 4월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에 대해 정부가 7일 활용 방안을 발표한다고 밝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증자인 이건희 회장의 뜻을 기릴 수 있도록 “별도 전시관 설치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그 전시관의 소재지가 발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위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국내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높이고자 했던 이건희 회장과 유족의 기증 취지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은 작품의 제작 시기와 장르를 고려해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외 근현대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작가와 작품이 지역에 깃든 사연을 고려해 지역 미술관 5곳에도 작품을 기증했다.

미술계는 각 기증처가 이건희 회장이 모은 작품을 가장 잘 연구·보존·전시할 수 있는 곳을 심사숙고해 선정했다고 평한다. 유족 측은 작품을 기증하기 전 각 미술관의 소장품을 꼼꼼히 살피고, 가장 필요로 하는 작품을 엄선할 만큼 각 기증 장소별 작품을 각별히 신경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작품들을 다시 한 군데로 모으면 전시는 물론 작품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비용 측면에서도 미술관을 새로 건립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대구시는 미술관 건립에 약 25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박물관 및 미술관 내 기증관을 설치하면 일부를 리모델링하는 비용 정도로 충분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상설전시관에 기증관을 마련해 개인소장품 기증자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지자체들이 미술관 유치 경쟁에 나서면서 기증의 의미는 벌써 퇴색되고 있다. 30여 지자체가 이건희 회장과 지연·학연 및 지역 균형 발전을 내세우며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지역에 미술관을 건립을 결정할 경우 정치적 해석이 덧붙을 부담도 크다.

이번 기증은 국내 미술관·박물관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역대 최대 규모로 향후 기증 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삼성가에서 돈이 없어서 새로운 미술관을 짓지 않은 것이 아닐 터다. 문체부는 기증품 활용 방안 확정에 이 회장과 유족들의 기증 의미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중섭의 ‘흰 소’(1953∼1954·왼쪽)와 박수근의 ‘농악’(1960s).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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