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숙제하듯 3월 말 4월 초 제출되는 사업보고서를 그러 모아 분석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분·반기 보고서가 제출되는 시기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전자공시시스템 도입은 이런 번거로움을 상당 부분 덜어 줬으나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재무보고국제표준전산언어(XBRL) 시행이 ‘탈노동화’에 가속도를 붙게 했다. 다만 재무제표 본문만 XBRL 작성·공시가 의무화됐을 뿐 주석은 회색지대로 남았다.
문제는 IFRS 시행으로 재무제표 본문을 간소화하고 주석에 중요 세부 내용을 담는 기업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재무제표 이용자들로부터 반쪽짜리 XBRL 적용이란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이 재무제표 주석까지 표준화·데이터화를 추진하고 나선 것이 10년여 만에 이뤄지는 대격변인 이유다.
금감원 관계자는 “6월 22일부터 11월 30일까지 23주간 항공업은 리스, 유통업은 매출채권 등 업종별 필수 공시항목을 마련할 것”이라며 “코스피200 편입 종목 및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50개사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국내 비금융업 회사(포스코, 한국전력, KT, SKT, LG디스플레이)의 사업보고서 주석사항 등을 참조해 표준주석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영업부분(사업부별, 지역별 등) 매출액 등 기업 환경에 따라 주석사항이 달리 공시되는 경우에도 분석이 가능하도록 참조 값을 부여(태깅)하는 등 규칙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XBRL은 재무제표 각 계정과목의 수치와 항목에 표준 식별코드(태그)를 부여한 국제 전산언어를 말한다. 각 기업이 사용하는 용어(매출액, 영업수익 등)가 달라도 같은 꼬리표가 붙어 있어 자료를 수집해 해석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에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재무제표 본문뿐만 아니라 주석에 대해서도 표준화 및 데이터화 하는 추세다. 재무제표 작성·공시 부담이 가중되는 기업들 반대에도, 우리 금융당국은 이런 흐름을 비켜갈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이다. 향후 재무제표 주석까지 표준화·데이터화가 완료되면 오픈 다트를 통해 누구든지 쉬이 활용 가능해지면서 생기는 부가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한기원 삼정KPMG 상무는 “데이터전문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재무정보 범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기 때문에 훨씬 더 정교한 분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인 이용자들 역시 시중에 나와 있는 분석 툴을 이용하면 간단한 분석의 경우 더는 전문업체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