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폐교될까 군대도 못가요”…한계 도달한 한국국제대

불 꺼진 도서관·쓰레기 나뒹구는 강의실
학생식당도 문 닫아…편의점서 끼니 해결
신입생 27명…수년째 교직원 월급 미지급
대학 상권도 무너져…"차라리 폐교됐으면"
  • 등록 2023-05-15 오전 6:00:00

    수정 2023-05-15 오전 6:00:00

지난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한국국제대의 한 건물이 텅 비어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진주=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군 복무 중 학교가 없어질까 입대도 못하고 있어요.”

한국국제대 물리치료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민성(21)씨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혹시나 군 입대 후 대학이 폐교된다면 특별편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 학기 기숙사에 낸 보증비 5만원도 아직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5만원도 못 돌려주는 곳이 대학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경남 진주에 위치한 한국국제대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 13개의 대학 건물 중 절반 가까이는 사실상 폐쇄했다. 학생식당마저 운영비 부담을 이유로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교직원들마저 수년째 밀린 월급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대학을 떠나고 있다.

지난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한국국제대의 한 건물에 있는 사물함이 방치돼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적막감만 감도는 캠퍼스

지난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한국국제대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창틀에 수북이 쌓인 먼지로 건물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됐는지 알 수 있었다. 강의가 한창 진행 중일 시간임에도 강의실은 텅 빈 채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노천극장에는 수풀이 무성히 자라 벤치를 가득 채웠다. 학생들이 실습수업에 활용했던 각종 실습기자재는 복도 한 켠에 쌓여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게시판의 홍보물들은 여전히 2019년에 멈춰 있었다.

한국국제대 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은 ‘딴 나라 이야기’다. 올해 한국국제대 신입생은 27명으로 간호학과 등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 MT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과금 낼 돈이 없어 단전·단수의 위기를 겪었던 대학에서 연예인이 오는 축제는 기대할 수도 없다. 방사선학과에 재학 중인 민모(20)씨는 “학생이 부족해 MT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한국국제대 학생식당이 셔터가 내려진 채 폐쇄돼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학생들은 캠퍼스 낭만보다는 당장의 한끼 식사가 걱정이다. 한국국제대 학생식당은 경영난으로 인해 지난 학기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학생관에 있던 컵밥가게·돈까스가게·카페 등 역시 이용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영업을 접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대학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특수교육과 박모(21)씨는 “캠퍼스 안이나 인근에 식당이 없다 보니 끼니를 대부분 거르다가 너무 배가 고프면 편의점을 찾는다”고 했다.

특히 기숙사생들은 끼니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 근처 상권도 사실상 붕괴된 상태이기에 이들은 편의점에서 매 끼니를 해결하거나 6000원이 넘는 배달비를 부담하며 음식을 시키는 상황이다. 특수교육과 김모씨는 “한 달 용돈이 40만원인데 매일 배달을 시켜먹기는 힘들다”며 “(돈을 아끼려) 하루 한 끼 편의점을 이용하고 일주일에 한번정도 배달을 시킨다”고 했다.

지난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한국국제대 학생관의 편의시설이 모두 비어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교수 반 이상 떠나…남은 직원 7명

1978년 진주여자전문대학으로 개교한 한국국제대는 2003년 4년제 대학으로 개편됐다. 당시 입학 정원은 1265명으로 전교생이 3000명이 넘었다. 돌아보면 그 때가 한국국제대의 전성기였다. 지금의 위기는 재단 비리에서 촉발했다. 2007년 학교법인 이사장이 교비 약 190억원 횡령하는 등 비리 사건이 터지며 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2018년 한국국제대는 교육부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대학진단)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으면서 정부 보조금 지급이 끊겼다.

부실대학 선정과 학령인구 감소가 맞물리면서 신입생 충원율은 급감했다. 2018학년도 738명 모집에 598명이 입학해 81%의 충원율을 보였지만 2019학년도에는 664명 모집에 293명이 입학, 충원율은 42.6%로 곤두박질쳤다. 2022학년도에는 충원율이 14.2%(437명 모집, 62명 입학)까지 떨어졌으며, 심지어 올해 입학생은 27명으로 사실상 대학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신입생 충원율 하락은 대학의 재정난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전·현직 교직원 임금체불 총액만 약 110억원이다. 이외에도 수도세 등 각종 공과금과 사학연금·건강보험 체납액도 꾸준히 불어나고 있다.

특히 교직원들은 2018년 10월부터 5년째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2018년 80명에 달하던 행정직원은 5년 만에 7명으로 줄었다. 전임교수는 2018년 115명에서 지난해 61명으로 줄었고 최근에는 40여명만 남았다. 박석원 한국국제대 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모아둔 돈과 대출로 버티고 있다”며 “버틸 수 없는 직원은 떠나고 여력이 되는 직원들은 책임감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한국국제대 인근 지역의 중식당이 영업을 멈춘 채 비어있다. (사진=김형환)
대학 구성원 “차라리 폐교됐으면”

한국국제대가 위기를 겪자 주변 상권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애초 한국국제대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탓에 상권이 발전하지 못했는데 교세마저 기울면서 그나마 있던 상권마저 무너졌다. 유일하게 있던 중식당은 올해 초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원룸형 빌라 역시 몇 가구를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다. 임대업자 고병제(75)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실이 전혀 없었는데 202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공실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지금 건물에 입주한 대학생은 3명뿐”이라고 했다.

신입생의 감소와 교직원에 대한 임금체불 등으로 한국국제대의 정상 운영이 힘들어지자 교육부는 지난 8일부터 한국국제대에 대한 종합감사에 착수했다. 사립학교법(47조)에 따르면 교육부장관은 설립목적 달성이 어려운 학교법인에 해산을 명할 수 있다. 대학 폐교 시 잔여재산은 국고로 귀속되며, 해산명령을 받은 대학은 청산절차를 밟아야 한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폐교된 대학은 모두 19개교로 이 중 경북외국어대만 청산이 완료됐다. 이번 교육부 종합감사 결과에 따라 한국국제대 폐교 여부가 결정된다..

교직원들은 정상화가 힘들다면 차라리 빨리 폐교해 청산절차를 거쳐 밀린 월급을 받길 원하고 있다. 박석원 직원노조 위원장은 “재정 기여자가 나와 학교를 정상화한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학교법인이 의지가 없다면 직원들도 빠르게 정리되길 원한다”고 했다. 학생들 역시 폐교를 원하고 있다. 방사선학과 민모씨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죄송스럽게 부모님이 택배로 먹을 것을 보내주신다”며 “차라리 폐교돼 딴 학교로 편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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