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파워]'모든 병실을 1인실로' 한국 의료를 혁신하다

이순남 이화의료원장 인터뷰
"여성성 가능성 세계가 주목..섬세함 장점"
"자주성으로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를 주도하라"
  • 등록 2013-11-22 오전 6:15:20

    수정 2013-11-22 오전 6:15:20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모든 병실을 1인실로 짓겠다.”

너나없이 혁신을 외친다. 기업도 사회도 정부도…. 혁신 과잉시대에 진짜가 나타났다. 한국 의료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대담한 시도다. 의료업계를 선도한다는 ‘빅5’(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가 아니다. 이화의료원은 오는 2017년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건립할 예정인 제2병원 병상 1000개를 모두 1인실로 운영하겠다고 최근 폭탄 선언을 했다.

편안하게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환자에게 1인실은 당연한 요구다. 개인 프라이버시가 강조되고 병원 감염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저렴한 1인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낮은 의료 수가와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굴지의 대형 병원들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어쩌면 이화의료원 흥망의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이번 계획은 지난 8월 부임한 이순남 이화의료원장(59)이 주도하고 있다. 그가 환자 중심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시작한 일이다. 혈액종양내과 교수로 병원 경영자가 아닌 학자의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한 결단이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서 모든 병실을 1인실로 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신축 병원은 병상의 70%를 추가 비용을 받을 수 없는 일반병상으로 운영해야 한다. 건강보험에서 주는 입원비는 3만~5만원 선에 불과해 1인실 운영비 충당이 불가능하다.

이 의료원장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1인실이 보편화돼 있다. 4년 후, 10년 후, 100년 후를 내다보는 첨단 국제병원을 지향하면서 지금의 눈높이로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저러다 망한다” “경영 수지를 못 맞춘다”는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도 과감히 떨쳐버렸다.

그는 이어 “경영보다는 환자를 중심에 놓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의료도 정당하게 지불하고 정당하게 대우받는 시스템으로 정상화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경영의 최고 철학은 원칙을 지키는 것 ”

이화의료원은 수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60년 역사의 이대동대문병원이 2008년 문을 닫았다. 그 과정에서 인력 감축 없이 전 직원을 이대목동병원이 끌어안았다. 같은 소속병원이지만 이질적일 수밖에 두 병원 직원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기도 전에 제2병원 건립이라는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 진행됐다. 혁신이 강조됐지만 그만큼 직원들의 피로감도 극에 달했다. 그런 불만이 터져나온 게 지난해 노조의 파업이었다.

이 의료원장이 이대목동병원이라는 큰 조직을 떠 맡은 데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정치’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살아온 그다. 본인 스스로도 “병원 경영에 관심이 없었고 시켜줘도 안한다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내부 직원을 다독이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중책을 맡았다.

이 의료원장은 “우리가 빨리 달리다 보니 너무 지쳐 있다”며 “전 직원이 소통과 화합을 통해 자긍심을 갖고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 의료원장은 섬세함을 강조한다. 마음을 조금만 쓰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도 마곡지구에 지어질 제2부속병원의 역할은 중요하다. 병원 통합으로 늘어난 인력을 효과적으로 배치함과 동시에 각각 새로운 지향으로 성장해 가는 두 병원에서 직원들도 성취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어서다.

이대목동병원은 대규모 주거단지와 학교, 학원이 밀집해 있는 특징을 살려 여성 및 소아 관련 특화 서비스와 함께 밀착 가족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특히 고위험 산모를 위한 모자센터와 갱년기 센터, 여성암센터 등을 통해 여성 생애주기 맞춤형 병원을 지향한다. 반면 제2병원은 암 전문치료센터와 심혈관센터, 뇌졸중센터 등을 통해 고난이도 중증질환 중심 병원의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다.

그가 생각하는 병원 경영 철학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국내 의료 환경이 왜곡된 것도 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법을 사용한 때문”이라며 “원칙을 지키면서 정도를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화의 정신은 ‘자주성’… “스스로 바뀌고, 변화를 주도하라”

이 의료원장은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수료한 뒤 이화의료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의사 가운을 입었다. 소위 말하는 ‘이화인’이다. 그가 말하는 이화의 정신은 ‘자주성’이다. 여성들만 생활하는 공간이다보니 학교와 선배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대우받는 일 없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배웠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주성이 몸에 체화됐다는 것이다. 이화의료원이 지금까지 많은 여성의료원장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현재 그가 책임을 맡고 있는 이화의료원 역시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병원들은 남자 의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이곳은 절반이 여성이다. 여성을 이해하는 병원이기에 경직된 다른 병원과 달리 육아 휴직 사용 등도 비교적 자유롭다.

의사라는 직업 또한 친여성적이다. 그는 “의학은 무엇보다 전문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덜한 측면이 있다. 특히 섬세함이란 여성의 장점은 의학에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남녀 차별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똑같다면 남자를 월등하게 본다”며 “결국 여성은 같아서는 인정을 못 받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료원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여성성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성격인 섬세함, 또 분쟁보다는 화합, 육체적인 측면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을 요구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며 “여성성을 살리면서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 변화하고,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려고 노력하면 여성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여성 인력이 사회 중추로 자리잡기 위해선 아이 양육을 사회가 맡아주는 공적 보육서비스가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아이 걱정없이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아이는 사회가 키워줘야 합니다. 단순히 맡아주는 수준이 아닌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해야 여성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이순남 의료원장은

1954년생으로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여고와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혈액종양내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전임의사(1년)와 미국 노스웨스텐 의대 암센터 연수 시절을 제외하고는 30여년간 이화여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교수 시절 임상교학부장과 의학교육실장, 의과대학 학장 등 의학 교육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학전문대학원 협의회 회장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임상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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