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다]"환자는 나를 모른다…나는 쉐도우 닥터다"

  • 등록 2014-09-26 오전 7:00:00

    수정 2014-09-26 오전 11:53:53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나는 ‘쉐도우 닥터’(shadow doctor)다. 외과 전문의지만 성형외과에서 메스를 들고 성형수술을 한다.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오고 마취가 끝나면 원장은 옆 수술실로 이동한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TV에서 보던 원장이 자신을 수술한다고 믿고 다른 병원보다 20~30% 비싼 병원비를 냈다. 하지만 메스를 들고 집도하는 사람은 나다. 옆 수술실의 환자도 마찬가지다.

현행 의료법에선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의사 면허만 취득하면 누구나 성형수술을 할 수 있다. 안과 전문의나, 내과 전문의라도 관계없다.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10곳 중 7곳은 비전문의들이 차린 병원이라고 한다.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불법은 아니라고 애써 자위해 본다.

의사가 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고등학교 때 의대 진학을 목표로 밤낮없이 공부해 의대에 입학했다. 재수까지 하며 노력한 덕에 서울대는 못 가도 서울 소재 사립대 의대는 갈 성적은 됐지만 학비가 부족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집 근처 사립대 의대를 지원했다. “의사면 다 같은 의사이지, 출신 학교가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했다. 첫번째 실수였다.

6년만에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군의관으로 3년을 근무했다. 이후 인턴 1년, 외과 전공 4년을 거쳐 전문의 시험까지 통과하니 34살. 모교에서 의대 교수가 돼 볼까도 생각했지만 가뜩이나 인기 없는 외과 전공인데다 명문대 출신 선배들에 밀려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외과에 지원했을 때 만류했던 여자친구의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두번째 실수였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개원을 준비하는 의사라고 하니 은행에서 3억원을 빌려줬다) 여자친구가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아버지의 퇴직금까지 털어 고향에 병원을 차렸다. 선후배들은 돈이 되는 ‘미용 외과’를 개원하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외과’ 간판을 내걸었다. 세번째 실수였다.

3년만에 망했다. 간호 조무사 한명만 두고 주말과 휴일에도 문을 열었지만 환자들은 외과에 갈만한 상처면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이자가 밀리자 은행에서 독촉이 들어왔다. 결혼조차 미루고 다른 병원에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외과 전문의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선배의 소개로 서울로 상경했다. 강남에서 꽤 잘 나간다는 성형외과다.

쌍꺼풀 수술 같은 간단한 수술도 원장이 맡아 주길 바라는 환자들 덕에 원장은 수술 스케줄이 하루에 20여건씩 됐다. 그 많은 수술을 어떻게 다 소화하나 했는데 의문은 곧 풀렸다. 수술 스케줄 없이 대기하던 나와 또 다른 의사가 원장 대신 수술한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나를 모른다. 나는 쉐도우 닥터다.

(이 기사는 취재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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