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두 남자, 두 풍경

누크갤러리서 2인전 '풍경산책 연 작가 강홍구·유근택
촬영한 사진에 그림 그려 올린 강홍구
전통 동양화 기법에 실험 더한 유근택
작품 교환한 인연…예술인생 교감해와
다른 도구·눈·색·공간서 빚은 닮은세상
  • 등록 2020-06-22 오전 12:20:00

    수정 2020-06-23 오후 12:20:40

작가 유근택(왼쪽)과 강홍구가 서울 종로구 누크갤러리서 연 2인전 ‘풍경산책’에서 자신들의 작품 앞에 나란히 섰다. 호형호제하는 두 작가의 인연은 2009년 서로의 작품을 교환하면서부터 이어졌다. 작가들을 기준으로 왼쪽으론 유근택 작가의 ‘베를린 풍경’ 연작(2019)과 ‘풍덩!’(2012)이, 오른쪽으론 강홍구 작가의 ‘미키네 집-구름’(2005∼2006)과 ‘서울산경 붉은 집’ 연작(2020)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여기 두 남자가 나란히 서 있다. 둘 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 할 인생을 예술 하나로 일희일비하며 살아왔을 거다. 그러다가 어느덧 ‘중견’이란 타이틀까지 달게 됐고. 하지만 이뿐이다. 홍익대 미대 동문이란, 오천만 국민이 대충은 엮이는 그 흔한 학연을 빼고 나면, 그다지 묶일 게 없어 보이는 거다. 그것도 한 사람은 서양화를, 다른 사람은 동양화를 했다지 않나. 세월이 가면서 간격은 더 벌어졌을 텐데. 서양화를 한 이가 불현듯 카메라를 잡았다니 말이다. 카메라와 붓이라니. 손에 쥔 무기까지 달라졌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안다. 사실 시빗거리도 못 된다. ‘하 수상한 풍경’이 어디 한둘인가. 다만 그저 궁금한 거다. 저이들이 ‘여기에 나란히 선 이유’가.

서울 종로구 평창34길 누크갤러리가 연 2인전 ‘풍경산책’에 나선 작가들 얘기다. 테마는 순한데 ‘2인’이 순하지 않은 거다. 오해는 말라. 평범한 주제에 비범한 작가라는 뜻이니. 작가 강홍구(64)와 유근택(55)이라니 말이다.

누크갤러리는 그간 제각각 작품세계를 꾸린 작가들의 2인전을 꾸준히 열어왔다. 평면과 입체를 가리지 않고, 신진부터 중견까지 맺어준 커플이 수십 쌍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가 서먹했던 건 강 작가와 유 작가가 가진 탄탄한 위치와 뚜렷한 색채 때문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나란히 놓고 보니 볼수록 묘하게 닮아있는 거다. 아니 섞여간다고 할까. 분명 다른 도구를 쥐었는데, 분명 다른 눈을 가졌는데, 분명 다른 색이 덮인 다른 공간을 바라봤는데. 게다가 무려 9살 차이(학번은 같다고 했다)라는 간극도 무색하게 말이다. 작품에 들인 ‘하 수상한 풍경’이 비슷해 보이는 거다. 전시는 두 작가가 굳이 맞추려 하지 않은, 꼿꼿하게 ‘내 세계’로 꾸린, 그래도 긴밀히 연결되는 40여점을 함께 걸었다.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유근택의 ‘창문’(2015·왼쪽)과 강홍구의 ‘안개와 서리’(2011)(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0여년 전 작품교환 하며 호형호제 이어와

“유근택과 하는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할까 말까 했다”(강홍구). 첫마디가 농담이다. 후배에게 먼저 날린 선배의 견제구라고 할까. “집요한 끈질김이 예술가의 재능이라고 할 때 그 재능을 타고난 유근택”이란 뒷말이 붙었으니. 후배의 화답은 이랬다. “홍구 형하고는 예전부터 같이 하고 싶었다. 예술가가 갖는 비평적인 지점이 매우 날카롭지 않나. 형의 매력이 거기에 있다”(유근택). 내친김에 유 작가는 둘의 공통점까지 정리했다. “형의 작업에 장르라는 건 의미가 없다. 나 역시 한지와 동양화란 매체로 작업해왔지만 가까이 있는 것을 달리 어찌 표현할까로 늘 고민을 했고. 바로 내 관심과 형의 작업이 크로스오버되는 부분이다. 무거움이란 것에 다른 언어가 필요했던 시기를 같이 감내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 유근택(왼쪽)과 강홍구가 서울 종로구 누크갤러리서 연 2인전 ‘풍경산책’에서 자신들의 작품 앞에 나란히 섰다. 두 작가는 사진에 회화를 올리고(강홍구), 관념산수에 머물지 않은 실험정신의 동양화(유근택)가 빚은 서로의 세상풍경을 오랫동안 나누고 보태왔다. 작가들을 기준으로 왼쪽으론 강홍구 작가의 ‘안개와 서리’ 연작(2012)이, 오른쪽으론 유근택 작가의 ‘베를린 웨딩에서의 풍경’ 연작(2019)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호형호제하는 두 작가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의 작품을 한 점씩 교환하면서부터란다. 강 작가는 유 작가의 ‘한 장면(A Scene)-대화’(2002)를 얻고, 유 작가는 ‘미키네 집-구름’(2005∼2006)을 얻었다. 덩그러니 공중전화박스 하나 놓인 게 전부인 수묵채색화 ‘한 장면’은 노란벽과 분홍지붕을 가진 작은 집 위에 뭉게구름 둥실 올린 사진 ‘미키네 집’과 맞트레이드 됐다.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내부의 전화박스’와 ‘수려한 북한산 배경의 장난감 집 한 채’라니. 범상치 않은 고수들끼리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첫눈에 알아본 건가. 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한 공간에 마주 걸렸다.

강홍구의 ‘미키네 집-구름’(2015). 2009년 작가 강홍구와 유근택이 맞교환했다는 작품이다(사진=누크갤러리).
유근택의 ‘한 장면(A Scene)-대화’(2003). 2009년 작가 강홍구와 유근택이 서로 맞교환했다는 작품이다(사진=누크갤러리).


강 작가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처리’한다. 어떻게? 촬영한 사진에 그림을 올리는 거다. 이 작업에는 ‘히스토리’가 있다. 오래전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여러 장르를 기웃거리다가 ‘사진!’으로 결론을 냈단다. 그렇게 사진작가로 살아왔다. 하지만 유전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어느 순간 ‘그리기’가 당기더란 거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사진에 채색’. 그 기량으로 그가 몰입한 건,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 기록하기’ 혹은 ‘말짱하게 포장된 자본주의 이면 들춰내기’ 등. 한 컷의 사진에 굳이 금을 내 층을 만드는 분할화면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풍경의 상처를 더 드러내기 위해서였을 거다.

강홍구의 ‘서울산경 붉은 집’(2020). 멀리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북한산 어느 봉우리에 놓인 바위를 촬영한 사진 위에 집 한 채를 그려 올렸다(사진=누크갤러리).


이 특별한 작업을 두고 강 작가는 “난 사진가가 아니라 사진이용자”라고 말한다. 사진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습을, 또 어린 시절부터 지켜온 회화적 관습을 모두 이용하고 있을 뿐이란 거다. “회화와 달리 사진은 의도하지 않은 게 프레임에 들어와 있을 때가 있다. 그게 무섭다. 사진의 그 ‘공적인 뻔뻔함’ 때문에 분위기나 감정을 덮어씌우자는 생각에서 회화를(두 관습을) 섞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바위산 전경에 집 한 채 달랑 매다는 작품은 강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서울 북한산 족두리봉, 부산 감천동 산동네 등, 유독 집과 산에 관심이 많다. 사실 ‘재개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상상 아니다. 은유고 상징이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이사를 35번이나 했더라. 개인적인 얘기지만 결국 모두의 얘기다. 바위에 집짓기처럼 이 땅에서 집 한 채 짓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강홍구의 ‘집’ 연작(2013). 바위산 전경에 집 한 채 달랑 매다는 작품은 강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다. 재개발되는 도시풍경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의 작품세계가 출발한 지점이기도 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카메라와 붓으로 담아낸 ‘나누고 보탠 세상풍경’

유 작가는 강 작가와는 달리 ‘한우물’만 팠다. 대신 그 안에서 다른 물을 길어냈다. ‘한국화의 새 시대를 개척했다’는 평가가 자주 따라붙는 이유다. ‘한지에 수묵채색’이란 전통기법이 바탕이지만 그가 그리면 다른 그림이 됐다. 끊임없는 실험 덕분이다. 관념산수화에 ‘일상’을 들인 건 이미 오래전. 6배접한 한지를 철솔로 문질러 섬유질을 일으키기도 했고, 동양화 붓 대신 유화 붓으로 이제껏 없던 화풍을 만들기도 했다. 몇 해 전, 한지 하나만 들고 독일 베를린으로 훌쩍 떠났을 때 ‘의도적으로 강제한 환경’의 결과물인 셈인데. 고즈넉하고 평화롭기만 한 화면이 쉬지 않고 꿈틀거리는 건 그 실험들 덕이다. 리듬감을 넘어 긴장감까지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에 유 작가는 ‘베를린 신작’을 대거 걸었다. 특히 일기처럼 하루하루 작업한 20점 연작이 눈길을 끈다. “한국에선 그림이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항상 머뭇거리고 형식을 고민하고. 독일에선 그런 게 없더라. 회화가 가진 본질적인 힘, 거기에 집중해 작업할 수가 있었다.”

유근택의 ‘베를린 풍경’ 연작(2019)과 ‘웨딩에서의 자화’ 연작(2019).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 머물면서 일기처럼 하루하루 그려냈다는 작품들이다. 갤러리 바깥 전경과 어우러져 ‘특별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사람은 “셔터소리가 들리지 않는 형의 사진에는 세상을 더듬는 막막함과 아슬함이 있다”(유근택)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우의 작업은 새로운 리얼리티가 별로 리얼하지 않은 방식 속에서 이뤄지는 게 특별하다”(강홍구)고 했다. 그렇게 두 작가는 전시 테마 그대로 서로의 풍경을 나누고 보탠다. 길은 달랐지만 마주칠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으려나. ‘풍경산책’이란 게 내 것이 아닌 것을 보는 ‘그 일’이라면 말이다. 전시는 7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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