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만든 역사…적에서 동지 된 美·獨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로널드 스멜서·에드워드 데이비드 2세│600쪽│산처럼
동부전선의 뒤틀린 '신화' 추적
  • 등록 2020-05-13 오전 12:30:00

    수정 2020-05-13 오전 11:28:42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러시아가 싸웠던 동부전선은 20세기 후반 냉전이라는 상황 아래 그 실상이 심하게 뒤틀려버렸다. 독일은 가해자였고 소련·러시아는 피해자였지만,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이미지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나치친위대의 만행이 폭로되면서 근본적인 오해가 바로 잡힌 건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독일의 렌즈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잘못된 이미지가 각종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책은 이런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느낀 미국 유타주립대학 역사학과의 독일사 전공자인 로널드 스멜서와 미국사 전공자인 에드워드 데이비스 2세가 오랜 시간 각종 사료를 모으고 연구해 집필한 것이다. 주로 2차 대전 중 독일과 소련이 벌인 전쟁을 미국인이 기억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신문, 잡지, 뉴스, 영화 등 러시아에 벌어지던 전쟁에 관해 미국인에게 전달된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살폈고, 20세기 냉전으로 인한 역사관의 변화도 짚었다.

1945년 4월 미군(왼쪽)과 소련군이 독일 동부 토르가우에서 처음 만나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산처럼).


독일군 영웅화 과정은

독·소전쟁은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해 1945년 5월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막을 내렸다.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공동의 적이었다. 독일이 소련을 기습침공한 지 여섯 달 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고,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동맹을 맺었다. 당시 미 언론은 독일에 맞서 싸우는 동맹국 소련을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전쟁터로 가는 아들을 전송하는 러시아 가족에 대한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미국 독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전쟁 직후 미·소 냉전이 이어지면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과거 동맹국의 영웅적 면모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 독일 여성들을 강간한 사실 등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전쟁이 끝난 후 적국 독일은 미국이 공산주의 종주국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나라로 바뀌었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이제 독일은 미국의 동맹국이 된 것이다.

마크 여거, 리하르트 란트베어 등의 미국인 저자들은 독일이 러시아에서 벌인 싸움을 낭만화하는 대중용 출판물에서 독일국방군 신화를 퍼뜨렸다. 무장친위대 군인들을 예우하면서 이 군인들이 동방에서 벌인 인종 노예화와 말살의 전쟁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새로운 독일국방군의 인기와 존경은 광범위한 문화로 스며들었다. 전쟁게임, 인터넷 웹사이트, 채팅방 등 오늘날까지 미국의 여러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대중 활동의 밑바탕을 만들어냈다.

‘역사재연동호활동’도 독일국방군에 대한 환상을 부추겼다. 자기 영웅들의 제복을 입고 주말과 휴가를 보내면서 ‘결백한’ 독일국방군이라는 환상을 적극적으로 실행한 것이다. 그들은 히틀러가 실수를 한 것일 뿐 장군들은 결코 실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독일군이 승리했을 것이라고 마음속에 그리는 ‘~했더라면 어땠을까 식 역사(What-if-history)’가 잘못된 신화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한다.

거짓 신화 한국에도 영향

독일군에 대한 거짓 신화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만 세계 역사와 한반도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기에 미국의 영향력은 너무나 컸기에 미국인의 인식은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인의 인식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거짓 신화는 그대로 한국에 전달됐고, 오히려 강화됐다. 많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소련군은 인명 피해를 무시하고 그저 병력 수로만 밀어붙여 싸운 사악한 군대로 인식돼 있다. 반대로 독일군은 현대적 전략 전술을 구사하면서 고성능 무기로 싸웠지만, 병력이 달린 탓에 안타깝게 패배한 멋진 군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과 결과는 한반도의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 깨기, 즉 독일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바로 보는 올바른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집중'
  • 사실은 인형?
  • 왕 무시~
  • 박결, 손 무슨 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