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①강현수 국토연구원장 "획일적인 재개발, 도시 다양성 죽인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추천
도시의 기본 가치는 다양성…외관보다 기능이 중요
미국 도시계획 흐름을 바꿔놓은 고전
  • 등록 2018-09-07 오전 5:05:00

    수정 2018-09-07 오전 5:05:00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도시를 획일화하는 것보다는 도시재생을 통해 다양성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강 원장이 지난 3일 세종시 국토연구원에서 제인 제이콥스의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재개발·재건축으로 초고층 아파트를 올리는 것보다는 낮은 층의 건물을 오밀조밀한 상태로 두는 게 도시의 발전에 더 낫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하는 거죠.”

개발이 안돼 낙후한 지역은 살기 나쁜 곳일까. 대규모 개발사업이 도시에 꼭 필요한 일일까. 재개발이 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선물이 됐을까. 강현수 국토연구원 원장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정부의 국토개발 싱크탱크인 국토연구원 수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반여. 강 원장은 최근 대학원 시절 읽었던 고전을 다시 꺼내 들었다. 기자 출신인 제인 제이콥스가 1961년에 쓴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다. 그는 이 책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도시계획을 두고 하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며 추천했다.

“도시,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중요”

제이콥스는 1960년대 보존과 개발로 엇갈린 보스턴의 노스엔드와 웨스트엔드를 예로 들어 도시계획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보스턴 최악의 슬럼가로 꼽히는 노스엔드는 모두가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곳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와 낡은 저층 건물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보스턴 시장 선거 때마다 노스엔드 재개발은 단골 공약이었다.

하지만 노스엔드를 직접 가 본 제이콥스는 활기가 도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저층 상가주택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으며 이탈리아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었다. 노스엔드는 슬럼가가 아니라는 점은 여러 통계로도 뒷받침됐다. 이곳의 청소년 범죄율이나 발병률, 결핵 사망률도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것이다.

반면 바로 옆 웨스트엔드는 완전히 철거하고 반듯한 필지에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짓고 큰 도로를 냈다. 도시계획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성공적인 곳이었지만 단조롭고 지루한 분위기의 평범한 곳으로 전락했고,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아 노스엔드보다 높은 범죄율을 보였다. 제이콥스는 노스엔드가 철거 대상이 아니라 성공 사례라고 주장하며 철거와 재개발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강 원장은 “당시 도시계획가들 사이에서는 도시를 일종의 악으로 보고 농촌형 전원도시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도시를 개발해 큰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는 게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주류였다”며 “제이콥스는 기존 흐름과는 달리 대도시가 갖고 있는 장점과 매력을 강조하면서도 재개발·재건축보다 도시 본연이 가진 다양성과 활력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미국의 도시계획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건설이나 철거를 통한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생겨났고, 이 책은 시민운동의 교재가 됐다.

강 원장은 “이 책은 원래 학술적 저서라기보다 뉴욕 시민이 지하철에서 읽을 정도로 대중적 저서로 쓰였지만 도시계획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도시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도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시각을 제시한 책”이라고 말했다.

다양성 해치는 재건축·재개발…개발이익은 공공에 환원해야

강 원장이 도시와 지역을 연구하게 된 계기도 낙후돼 가는 고향 때문이었다. 그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로 대학을 오기 전까지 줄곧 강릉에서 ‘시골사람’으로 살았다. 1982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원에선 전공을 바꿔 도시계획학 석사와 행정학 박사를 땄다. 낙후된 고향 강릉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도시계획학을 전공하는 계기가 됐다. 강 원장은 “쇠퇴한 지역의 균형 발전과 함께 서울 같이 발전된 도시에서도 70~80년대 달동네처럼 소외된 지역과 주민의 삶의 개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1980년대 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주택, 토지, 부동산 문제로까지 관심 분야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 역시 도시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다양성을 꼽는다. 강 원장은 책에 대해 얘기하던 중 최근 서울 연남동이나 이태원을 가봤느냐고 물었다. 이들 지역은 대규모 재개발 없이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다양한 상권이 형성되고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 된 대표적인 곳이다. 그의 고향인 강릉도 변화했다. 개발을 통해서라기 다양성을 지킨 결과다. 강 원장은 “다양성을 키우고 특색을 살리면 사람들이 알아서 몰리고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이 된다”며 “재건축은 다양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이익을 특정 계층이 향유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집주인이 노력하지 않고 얻은 대가는 공공이 환수해야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그는 “농지는 퇴비를 뿌리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면 지대가 오르는데 지금 서울 집값은 비옥도가 아니라 입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며 “입지를 만드는 게 바로 인프라인데 이것은 개인이 만든 게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강 원장은 재건축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을 용적률에서 찾았다. 강남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수익이 생기는 것은 용적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용적률을 대가 없이 올려주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산 차익을 누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며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 수익이 나면 그 혜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보유세 강화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은 맞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1964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82년 강릉고 졸업 △1986년 서울대 공과대학 학사 △1989년 서울대 도시계획학 석사 △1995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1992~현재 중부대 교수(현재 휴직 중) △2003~2006년 대통령 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2004~2005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정책평가위원회 위원 △2010~2013년 한국공간환경학회 학회장 △2017년 5~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 △2017년10월~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2013~2018년 7월 충남연구원 원장 △현재 국토연구원 제16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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