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alk 살롱]과시냐 만족이냐, 명품의 두 얼굴

  • 등록 2023-06-05 오전 6:30:00

    수정 2023-06-05 오전 6:30:00

[김재환 한화갤러리아 상품본부 패션부문장] “과시를 위한 허황된 소비인가?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자의 권리인가?”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이 세계 1위라는 기사가 외신을 통해 소개되면서 명품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럭셔리 셰임(luxury shame)’으로 표현되는, 과시욕에서 비롯된 천박한 소비라는 부정적 시각에서 가장 먼저 문제 삼는 것이 애초에 ‘럭셔리’는 ‘명품’이 아닌 ‘사치품’이라는 용어로 통용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연 명품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한 정의(定義)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명품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은 1988년 서울올림픽,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등을 통해 해외 문화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되는 시기였고 패션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때였다.

당시 소재 생산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한국 패션시장은 디자인보다는 소재에 중점을 둔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부터 한국 패션시장도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디자인 트렌드를 신속히 반영하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탄생했고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세계적인 해외 패션브랜드가 국내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 고객들은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를 단순히 값비싼 ‘사치품’보다는 글로벌 패션 유행의 원조라고 인식했다.

일본에서 ‘럭셔리’를 대를 잇는 장인들이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하는 고가의 상품과 구분하기 위해 ‘브랜드품’(brand product)이라고 용어를 정한 것처럼 한국에서는 당시 고객들이 해외 ‘럭셔리’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각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 바로 ‘명품’이었다.

럭셔리가 사전적인 의미의 사치품이 아닌 명품이라는 용어로 둔갑해 예술작품이 아닌 상업적 마케팅으로 활용되면서 현재의 소비현상을 조장했다는 비판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특수한 시대적 맥락을 간과한 주장이다. 현장에서 소비자들은 ‘사치품’과 ‘명품’을 본능적으로 구별해낸다. 트렌디함, 희소성, 이미지와 같이 브랜드마다 다른 이유로 다수의 고객들이 소유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브랜드를 고객들은 명품이라고 인식한다. 사치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명품은 고객에 의해서만 선택된다.

사치품과 명품의 논쟁에는 자연스럽게 과시욕이냐 또는 만족감이냐 하는 논쟁이 뒤따른다. 럭셔리를 사치품으로 본다면 최근 명품 매출의 성장 원인은 한국인 특유의 과시욕으로 해석된다. 물론 명품은 태생적으로 신흥 자본세력의 신분상승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과시라는 감정을 어느 정도 포함한다. 하지만 이는 만족감을 주는 요소의 일부일 뿐 전체는 아니다.

국내 명품시장의 성장이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의 비하적인 특수성이 주요 원인이라면 한국 못지 않은 중국과 일본 등의 동아시아 명품 시장의 성장과 1990년대 중반 한국 시장에 진출한 명품이 왜 이제서야 한국의 특수성과 결합하면서 놀랄 만한 실적증가를 기록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명품매출 성장은 그들이 MZ세대에게 만족감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MZ세대들은 자기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성과를 이뤘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비하며, 자신의 성과를 표출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아울러 MZ세대는 형식과 완성도보다 개념과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춘 상품을 선호한다. 명품 브랜드는 MZ세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진지함을 일부 내려놓고 위트와 아이디어가 넘치는 상품을 출시했다. 정작 가장 꼰대스럽게 보여 질 수 있는 오래된 브랜드들이 실제로는 그들이 원하는 변화를 가장 빨리 수용해 MZ세대가 가장 소비하고 싶은 브랜드가 된 것이다.

최근 많은 명품브랜드는 한국시장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마케팅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하지만 물량부족에 따른 오픈런과 ‘오늘이 가장 싸다’는 명언을 만든 지속적인 가격인상만 고집한다면 소중한 소비시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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