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없는 '받글'에 흔들리는 증시…개미 피해 커진다

"급상승 종목 알려준다" 미끼로 무작위 투자자 모집 후 매매 리딩
선행매매 후 인위적 주가 부양해 부당 이익 챙겨
시장 교란 갈수록 늘어, 음지화되며 단속 사각지대로
출처불분명 정보 가려야…정보효율성 강화가 근본 과제
  • 등록 2023-08-17 오전 6:15:00

    수정 2023-08-17 오전 6:15:00

[이데일리 이정현 이용성 기자]“숫자 ‘5’라고 말씀 주시면 급상승할 종목 2개 알려 드립니다.”

직장인 A씨가 주식 정보가 오가는 텔레그램 채팅방에 초대된 건 생소한 번호로부터 날아온 문자 메시지가 시작이다. 주식으로 재미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발을 들였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채팅방에서는 ‘전략실장’의 주도로 수백여 명이 주식을 사고 팔았다. 특히 증권가에서 돌고 있다는 ‘받글’(받은 글의 줄임말로 출처가 불분명한 짧은 정보)이 공유되기도 했고, 받글에 따라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알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A씨는 텔레그램 채팅방에 더 의존하게 됐다.

초반 매수와 매도 신호에 돈을 벌었던 A씨가 매수 신호가 떨어진 한 종목을 대량 사들였을 때 해당 채팅방은 예고 없이 문을 닫았다. A씨가 매수한 종목은 이미 손실을 만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가가 꼬꾸라졌고, A씨는 미확인 정보를 믿은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텔레그램과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주식 관련 미확인 정보가 확산하며 시장을 교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2차전지와 초전도체 등 짧은 소식 하나에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가는 테마주 열풍이 이어지면서 ‘받글’ 하나에 시장에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오를 것” 한 마디 받글에도 상한가…혼란스러운 증시

대단한 정보가 아닌 내용을 담은 받글이 주가를 끌어올릴 때도 있다. 지난달에는 ‘제2의 포스코홀딩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짧은 받글에 LS 계열사의 주가가 상한가를 찍는 등 급등했다. 이달 들어서는 미국과 중국 등 학계로부터 상온 초전도체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LK-99’ 물질과 관련, ‘초전도체가 아닌 초전반도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글이 SNS로 유포된 후 관련 종목이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는 일도 발생했다.

받글의 영향력이 강해지며 이를 활용한 주가조작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정 종목을 선행매매한 후 사실관계 확인을 거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조직적으로 다수의 리딩방에 매수 신호를 보내 주가를 부양하는 방식이다. 리딩방에 속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SNS를 통해 퍼진 받글에 이끌려 매수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증권 관련 유튜버들이 유명세를 타고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들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흔들리는 일은 이미 빈번하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주가 조작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슈퍼개미’로 불리며 55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던 B 씨는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이용해 미리 매수를 해둔 종목에 대해 반복적으로 매수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다. 1년여 동안 5개 종목에 대해 매매 추천을 해서 해당 유튜버가 얻은 부당이득만 58억원에 이른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미끼로 개인투자자를 현혹해 주가를 조작하는 등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공정거래 수리사건 현황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는 2019년 127건에서 2020년 166건, 2021년 180건, 지난해 232건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이 미등록 투자업체나 SNS 채팅방, 유튜브 등에서 본 피해 사례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제도권 밖에서 활개…‘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기 어려워

문제는 SNS 받글이나 유튜브 등의 영향력은 확대하는 만큼 이들을 단속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제도권 밖에 있는 투자 정보와 투자 추천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다. 실제로 받글을 단순히 공유하거나 내가 알고 있는 주식 관련 정보를 대가 없이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자본시장법상 불법 유사투자자문업이 성립하려면 수익방, 토론방, 자문방에서 유로로 종목을 추천하는 등 정보 제공이나 종목 추천으로 수익을 거둬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받글로 인한 주가 하락과 이를 통한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지난달 상승세를 이어가던 에코프로(086520) 주가는 서울 한 지점에서 ‘큰 손’이 수백억원 규모 매도 주문을 냈다는 받글이 돈 후 고점 대비 20%가량 폭락했다. 받글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에코프로 주가는 내리막을 탔고 주로 개미들의 손실이 컸다.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는 탓에 금융당국의 대응도 늦어지고 있다. 직접 시장에 개입하기 어려운 데다 텔레그램과 같은 폐쇄된 SNS를 이용할 경우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아무리 촘촘한 그물망을 짠다고 해도 불법 리딩방과 받글을 모두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투자자들이 불법 유사투자자문업체와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를 선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개인투자자 역시 받글과 같은 시장교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투자자문업자가 아니라면 수사기관 등에 신고하고 계약해지 및 이용료에 대한 환불 거부나 지연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피해구제를 신청해야 한다. 허위정보를 유포하면 금감원에 신고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의 재산상 손실 이상으로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가급락과 시세조종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정보효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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