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무제한 양적완화에도 '돈맥경화' 여전…직접 대출 카드 꺼낸 한은

한은 무제한 양적완화에도 단기자금·회사채 불안 여전
달러 부족하다더니…통화스와프 자금 응찰미달
정부자금 '낙인효과' 우려.."자금 공급대상 넓혀야"
한은, 비상상황 안전장치 준비.."간접지원 될 듯"
  • 등록 2020-04-03 오전 1:00:00

    수정 2020-04-03 오전 1:00:00

한은, 임시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경은 원다연 기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단기자금시장과 회사채 시장의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잇단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보수적 자금집행으로 인해 정작 자금이 필요한 곳까지 정책자금이 다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불안이 어느 정도 완화되긴 했지만 국지적인 자금 경색이 이어지고 있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을 가능하도록 한 ‘한은법 80조’를 시장 상황에 따라 발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금 경색이 계속될 경우 한은이 직접 ‘최종 대부자’로서 자금 투입에 나설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 무제한 양적완화에도 단기자금·회사채 시장 불안 여전

이날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는 전일 대비 2bp(1bp=0.01%포인트) 상승한 2.23%에 거래됐다. 하루에 10bp씩 급등했던 때와 비교하면 변동성은 크게 줄었지만, CP 금리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12거래일 연속 오르면서 기준금리(0.75%)와의 격차는 0.61%포인트에서 1.48%포인트까지 확대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연일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회사채·CP 차환 프로그램’(지난달 30일 가동·3조9000억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1일·20조원) △한은의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조치(2일 5조2500억원 첫 매입) 등이 쏟아졌다.

정부와 한은의 연이은 조치에 국고채와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등 우량채권의 금리 급등세는 진정된 모습이다. 국고채 3년물과 산금채 1년물 금리는 지난달 19일 1.193%까지 급등했으나 이날은 1.059%를 기록했다. 산금채 1년물 금리 역시 12거래일 중 고점인 1.263%(3월23일)에서 1.199%까지 내렸다.

그러나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하고 있다. 3년물 무보증 AA- 등급 회사채 금리와 국고채간 금리차(스프레드)는 기준금리 인하 직후인 지난 17일 0.71%포인트에서 이날 1.144%까지 확대했다.

시장의 공포는 전반적으로 진정됐지만, 정부와 중앙은행의 직접 대상기관이 아닌 곳들까지는 정책효과가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여러 정책들이 발표됐지만 구체적인 매입대상이 뚜렷하지 않아 여신전문금융회사나 증권사들에 대한 유동성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시에는 보수적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의 특성상 위험시장에 대한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허정인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기한을 정해놓지 않은 ‘무기한 RP 매입’이 아닌 한 기관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자금만 쓰고 CP나 회사채까지 사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오는 12월까지 일반기업 발행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는 20조6000억원(A등급 이하 6조2000억원), CP 만기도래 규모는 15조4000억원(A2등급 이하 4조7000억원) 등 총 36조원이다. 2분기 중에는 회사채가 8조9000억원, CP가 11조4000억원 만기도래한다.

금융기관들은 ‘낙인 효과’ 우려…이주열 “최종 대부자로 나설 수도”

정책기관에 손을 벌릴 때의 ‘낙인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신호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달 30일 산업·기업은행에 접수된 CP 차환 요청은 각각 1건씩(500억원), 총 2건(1000억원)에 불과했다. 첫날 이후 신청 건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달러 자금 시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미달 사태가 났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통화스와프 자금 600억달러 가운데 120억달러를 입찰했으나 실제 응찰액은 87억2000만달러로 3분의 2수준에 그쳤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말 급하지 않은 한 낙인효과 탓에 은행들은 중앙은행에 손을 잘 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고착화하면 정작 자금이 필요해지는 위기 상황이 벌어질 경우 중앙은행이 직접 손쓰기 힘든 시장까지 유동성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주식시장 급락세가 재개되면 증권사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증거금 추가납부)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고, 이때 증권사가 은행을 통해 달러를 잠시 빌리려해도 은행이 위험관리를 위해 달러 대출을 꺼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은이 최종 대부자가 아닌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금 공급에 나서는 데 따른 한계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비상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 나서 자금 공급 대상 범위를 넓히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오후 주요 간부들과 회의를 열어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한은법 80조에 의거한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 방안을 언급했다. 한은법 80조는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크게 위축되는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 하에서 영리기업에 대해서도 여신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정부 보증 없이는 회사채와 CP를 직접 매입할 수 없으므로 아마도 간접적 지원이 될 것”이라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구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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