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다문화 서사가 K컬쳐 경쟁력

  • 등록 2022-09-15 오전 6:15:00

    수정 2022-09-15 오전 6:15:00

[정덕현 문화평론가]지난 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프랑스 르몽드지를 인용해 한국 드라마들이 아프리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카메룬,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콩고 같은 국가에서는 <오징어게임>이 열풍을 일으키며 극중 게임이 SNS를 통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K콘텐츠가 아프리카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와중에,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드라마도 있다. 지난 4월 방영됐던 <별똥별>이 그 드라마다. 남자주인공인 공태성(김영대)이 아프리카 봉사를 간다는 그 대목이 문제가 됐다. 공태성이 아프리카로 가 식수를 위한 우물을 파주는 광경이 담긴 이 설정에는 아프리카를 낙후된 지역이자 ‘봉사하러 가는 곳’이란 선입견과 편견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국가도 아닌 ‘아프리카’를 통칭해 그렇게 묘사한다는 건 그 지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강화한다는 비판들이 나왔다. 또 극중에서 공태성이 그 곳 사람들을 돕고 선의를 베푸는 장면 또한 깊이 있는 내용으로 다뤄진 게 아니라 단지 이미지로서만 그려졌다는 점 또한 비판받았다. 그건 전형적인 ‘백인구원자 콤플렉스’를 조장하는 내용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 생각해봐야 할 건 확실히 달라진 시대에 우리가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별똥별>이 별 생각 없이 담아낸 아프리카에서 우물을 파는 그 장면은 2009년 방영됐던 MBC <일밤-단비>의 콘셉트 그대로였다. 공익 예능을 표방하며 아프리카까지 달려가 그 곳에서 우물을 파 식수를 해결해주는 그 프로그램에 수많은 톱스타들이 참여했다. 그 때만 해도 이러한 콘셉트는 비판받기보다는 박수 받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이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온정의 손길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내미는 손길에 그들의 문화나 삶에 대한 상호 존중과 배려가 동시에 담겨야 한다는 점이다. 거기에 우월 혹은 차별적 시선이 담긴다면 그건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눈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이 다문화 사회다. <오징어게임>에도 외국인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가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도시화로 농어촌 지역의 젊은 세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 노동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들도, 또 공단의 힘든 육체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또 농촌지역에 국제결혼으로 다문화 가정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제 이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을 찾는 건 한국사회의 생존과도 관련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이러한 변화에 걸맞는 ‘다문화 감수성’을 우리가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징어게임>에서 파키스탄 노동자인 알리 역할을 인도인인 아누팜 트리파티가 해서 파키스탄인들에게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감수성이 얼마나 더 예민한 사안이 됐는가를 잘 말해준다. 물론 인도인인데다 배우이고 한국말도 익숙한 아누판 트리파티가 파키스탄 노동자 역할을 한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만 좀 더 다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이 캐스팅을 들여다봤다면,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영토 분쟁 중이고 종교 갈등도 존재하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놓여진 갈등요인들 또한 염두에 둘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다문화 감수성에 대한 요구는 특히 점점 글로벌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그 영향력도 커진 K콘텐츠에서 중요한 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MBC 금토드라마 <빅마우스>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사로 벌어진 태국 비하 논란은 이러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적인 사례다. 극중 주인공인 박창호가 교도소에서 연쇄살인범에게 “네 엄마가 너 낳고 미역국은 드셨냐? 진짜 궁금해서 그래. 너 같은 사이코 새끼를 낳고 뭘 드셨는지. ㅤㄸㅗㅁ양꿍? 선짓국 같은 거? 아홉 명 죽였다며. 열 명 채워 봐.”라고 하는 대사에서 ‘ㅤㄸㅗㅁ얌꿍’이 문제가 됐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이 드라마를 보는 태국의 시청자들은 이 대사에서 ㅤㄸㅗㅁ얌꿍을 대사에 넣은 것이 마치 태국을 폭력과 범죄가 많은 나라라는 비뚤어진 인식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의견들을 쏟아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타국인들이 심지어 인종차별이라며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들이 벌어지는 건 제작진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제작진이 다문화에 대한 그만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 않다보니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택들이 별 생각 없이 등장하고 그것이 의외로 큰 논란으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다문화 사회에 들어와 있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들이 의도와 상관없이 겪게 되는 차별의 실체이기도 하다. 차별은 악의가 있어 벌어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다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없어서 벌어지기도 하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부지불식간에 강화하게 된 건 기성세대들이 받아온 ‘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시대를 겪어오며 그 결집을 위해 강조되던 단일민족 서사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한 외세를 겪어온 우리에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경계에서 서서 그 양자의 문화를 섞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그 지점은 사실상 현재 글로벌 공감대까지 만들어내는 K콘텐츠의 위상을 만든 면이 있다. <오징어게임> 같은 작품에 깃든 보편성과 차별성, 로컬과 글로벌의 다문화적 속성이 바로 이런 한국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보다 다문화의 서사가 오히려 우리의 경쟁력이자 정체성이라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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