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한국판 '잃어버린 20년' 피하려면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 등록 2023-10-10 오전 6:15:00

    수정 2023-10-10 오전 6:15:00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일본 경제성장률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일 간 성장률 역전은 25년 만의 일이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나 1980년 국가 비상사태와 같은 예외적인 해를 제외하면 1972년 이후 50년 만의 일이다. 실질적으로 한일 간 성장률 역전이 반세기 만에 나타나는 것이니 결코 가벼이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필자가 현장에서 한국경제 연구를 시작하던 1980년대 만 해도 일본 배우기 열풍이 거세게 불던 시기였다.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다. 당시 일본경제는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을 바짝 추격하며 기세가 등등하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본경제는 1980년대 말을 정점으로 급격히 추락했다. 제로성장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률이 크게 떨어졌고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경제의 늪에 빠져 들었다.

일본경제 추락의 핵심 원인은 인구 고령화, 초엔고, 디지털혁명 대응 실패로 요약할 수 있다. 생산인구 감소로 생산능력과 내수시장은 쪼그라들었고 지방은 소멸해갔다. 엔고로 수출은 위축됐으며 디지털 전환에 미적거리다 산업 경쟁력은 뒤처졌다.

추락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경제·사회 전반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으나 정치 리더십 실종으로 변화를 위한 개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갔다.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기간이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기준, 2023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치, 단위=%
그러던 차에 2012년 등장한 아베 총리에게서 반전이 시작됐다. 강한 정치 리더십을 바탕으로 개혁 드라이브가 걸렸다. 인구 감소에 대응해 여성 경제활동 참여 확대, 지방창생, 관광입국 등의 정책을 도입해 성과를 올렸다. 엔화 약세를 이끌어내는데도 성공했다. 디지털 혁명에 뒤처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근래에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아직 반신반의하는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주가는 2011년을 바닥으로 10여 년간 견고한 상승추세를 유지하면서 일본경제 회생을 웅변해주고 있다. 일본경제는 여전히 고전 중이지만 적어도 디플레경제에서는 빠져나오는 모습이 확연하다.

회생의 모습을 보이는 일본과 대비해 한국경제는 지금 화려한 정상을 뒤로 하고 시들어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정상에서 급전직하할 당시 피크(peak) 재팬의 그림자가 지금의 한국에 오버랩 돼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치명적 요인이었던 인구고령화는 당시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가속되는 반세계화의 기류는 수출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은 한국경제에 심히 우려할 만한 요소다. 1980~90년대 디지털 혁명에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올라타던 패기는 지금의 4차 산업혁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매년 한 명꼴로 6명의 총리가 갈린 정치 리더십 부재만큼이나 한국 정치도 표류하고 있다.

지금의 이런 한국과 일본의 현실을 투영한 결과가 반세기 만의 한일 성장률 역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늪에 빠진다면 그 시련은 일본보다 훨씬 혹독할 것이다. 내수시장 축소의 직격탄을 맞는 자영업은 그 비중이 일본보다 훨씬 높다. 수도권 집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인구감소의 지방소멸 효과 역시 더 클 것이다. 대외금융자산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본에 비해 쌓아 놓은 자산도 적어 버티기 능력도 떨어질 것이다.

이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 피크(peak) 코리아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잃어버린 20년 이상의 혹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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