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AI에 대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도 불안 요인이다. 현재는 처벌 조항이 존재하지 않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각료와 기관장에게 AI 사용에 관한 지침과 규정을 만들도록 지시한 이유에서다. 미국은 시장 중심 규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추가 입법을 통해 포괄적인 사전 규제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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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경쟁력 7위인 한국…기업 크기 고려해야
미국 투자전문지 인사이더몽키가 발표한 ‘2023년 AI국가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AI 글로벌 경쟁력은 7위에 머문다. 1위는 미국, 2위는 중국, 3위는 영국이었고 싱가포르와 캐나다가 공동 4위, 이스라엘이 6위로 우리나라를 앞섰다. 이 순위는 세계 최대 데이터 사이언스 커뮤니티인 ‘캐글’과 영국 매체인 ‘토더스미디어’ 지수를 종합해 평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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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이익 살피는 미국·중국
AI 규제를 설계할 때 자국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AI에 대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 연방기관에게 AI의 안전과 보안을 위한 국가 표준을 개발하라고 지시하면서도 ‘국가 AI 연구자원(National AI Research Resource)’을 통해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AI 자원과 데이터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중국도 AI 알고리즘 규제를 포함한 입법을 먼저 시행했지만 생성형 AI가 출시되자 법안을 수정했다.
심지어 미국에선 EU의 플랫폼 규제법(디지털시장법· DMA)이 글로벌 AI 기술을 선도하는 구글·메타 등을 옥죈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플랫폼 규제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AI 개발에 위장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박민철 변호사는 “얼마 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국회의원 22명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DMA를 막아달라는 서한을 보낼 정도로 기존 경쟁법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EU의 AI법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민철 변호사는 “AI가 학습하는 단계에서는 빅데이터를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AI 학습 시 개인 데이터(개인정보)는 최대한 학습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개인에게 많은 내용을 계속 알려주는 형식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U의 AI법에는 생성형 AI 서비스 의무에 대해 △고지의무 △불법 콘텐츠 방지 의무 외에도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 의무가 있는데 출처 공개와 동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형식적인 동의 만능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네이버처럼 데이터가 풍부한 기업이 아니면 우리나라에서는 초거대 AI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업이 거의 없을 수 있다.
최소한 AI 개발을 위해 어느 정도의 데이터 사용이 허용돼야 한다는 데는 다른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이상용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직된 EU보다는 사후적인 규제를 추진하는 영국식 접근법이 더 낫다”면서 “AI 고유의 규제는 일단 투명성에 대해서만 자율적이고 유연하게 하면 어떤가. AI 모델 자체에 대한 금지 여부를 담은 EU법은 여러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박광배 변호사는 “범용 AI를 만들 능력이 없는 EU가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미국 기업을 겨냥해 AI법을 만든 것”이라며 “너무 포괄적이어서 각국에서도 어떻게 적용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EU를 따라가다가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