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도시에도 봄은 왔는가"…청보리밭의 유혹

'靑'의 도시 경북 포항 여행
봄기운 따라 해안도로 드라이브
초록물결 넘실…호미곶 보리새순
낭만이 흐르는 1.3km 포항운하도
  • 등록 2015-03-03 오전 6:35:00

    수정 2015-03-03 오전 9:03:30

경북 포항 대포면 구만리 일대의 청보리밭. 보리 새순은 지금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 5월 말 황금빛으로 물들기 전까지 싱그러운 초록바다를 일렁인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봄 문턱을 넘어선 삼월. 바람은 차가워도 지천에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산과 들판에는 지난겨울 동안 더 단단해진 가지를 뚫고 올라온 연록색 새순이 봄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가운데 제왕은 보리. 밭에선 한발 앞선 진초록의 봄빛이 벌써 선연하다. 잔디만큼 자라오른 보리순이 아직은 차가운 들판에서 따뜻한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보리 새순은 지금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 5월 말 황금빛으로 물들기 전까지 싱그러운 초록바다를 일렁이며 봄축제를 선도해 나간다. 보리 새순 소식이 궁금해 찾아간 곳은 ‘철의 도시’ 경북 포항. 포항에 가까워질수록 봄 풍경은 더욱 또렷해진다. 온기를 머금은 봄바람은 해안선을 따라 후후 불어오고, 먼 바다부터 겹쳐지는 파도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겨우내 깊게 잠든 대지를 깨운다. 그 바다를 바라보며 날개를 접고 몰려 앉은 갈매기떼를 헤아리노라면 가슴 가득 청량감이 밀려든다. 동해안 최대 상설시장이라는 죽도시장과 포항운항, 입맛 돋우는 음식에서도 포항의 봄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하선대에서 바라본 영일만 전경. 영일만은 동쪽에 돌출된 호미곶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 일대에 해안단구가 잘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925번 지방도를 타면 길 옆 반대 연안으로 포항제철소와 포항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봄기운 가득한 해안도로 드라이브

포항 호미곶으로 가는 길. 포항시내를 벗어나 925번 지방도에 오른다. 구불구불 오래된 어촌마을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바다는 줄곧 오른편에서 떠날 줄 모른다. 느리면 느릴수록 더디면 더딜수록 더 정겨운 길이다. 천천히 다가가면 속속들이 꺼내 보여주는 봄 소식을 만날 수 있어서다.

도구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승용차로 30분. 해안가 낮은 언덕을 굽이굽이 오르내린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포구와 검은 갯돌해안, 금빛 해변이 띄엄띄엄 보인다. 가까이 포구마을이 보이면 반듯한 도로를 버리고 갯가 둑 위로 난 좁은 샛길로 들어선다. 봄기운 가득한 바다풍경이 좀 더 가까워 정겹게 느껴진다. 과메기와 오징어를 덕에 척척 걸어 놓는 촌부의 활기찬 손놀림에 덩달아 기운이 생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해안도로에는 오밀조밀한 풍경이 가득하다. 하선대와 선바위, 장군바위와 두꺼비바위 등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행진 끝 부분, 까꾸리개라 이름 붙은 갯바위 해안을 만난다. 까꾸리개는 경상도 사투리로 ‘갈퀴’를 의미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셀 때 해안 가까이 회유하는 청어떼가 갯바위까지 떠밀려와 갈퀴로 쓸어 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우뚝 선 해안에는 지금 청어 대신 갈매기떼가 하얗게 바다를 뒤덮고 있다. 이 또한 장관이다.

포항 호미곶이 있는 대보면 구만리 일대를 가득 채운 청보리밭. 잔디만큼 자라오른 보리 새순이 아직은 차가운 들판을 싱싱하게 달구고 있다. 보리밭 가운데 다섯소나무가 고고한 학처럼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초록물결 넘실… 호이곶 청보리밭

까꾸리개에서 호미곶 등대로 넘어가면 파도에 밀려온 바람에 넘실대는 거대한 초록물결을 마주한다. 대보면 구만리 일대에 펼쳐진 청보리밭이다. 이곳을 가득 채운 66만㎡(약 20만평)를 넘는 청보리밭은 드넓은 들판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닷가 언덕까지 이어졌다. 겨우내 모진 추위를 꿋꿋이 이겨낸 보리들이 이젠 봄 햇살에 푸름을 더하고,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한없이 일렁인다.

이곳 일대는 바닷바람이 강해 쌀농사가 힘들어 본래부터 보리밭 천지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대보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못 먹는다’는 말이 있을까. 그만큼 쌀 구경하기가 들었던 곳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리밭 사잇길로 하얀색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이색적인 풍경을 그리며 한가롭게 돌고, 연초록 보리밭이 산과 바다를 향해 지평선과 수평선을 그린다.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다. 보리밭 가운데 선 다섯 그루의 소나무는 고고한 학처럼 기품을 잃지 않고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 소문 듣고 찾아온 사진작가, 지나던 길에 멈춰 선 관광객들이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

호미곶 해맞이 광장 앞바다에 세워진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셀프카메라 찍기에 여념이 없는 여행객들.


◇과거 속으로 풍덩…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청보리밭에서 호미곶까지는 지척이다. 해안가로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수면 위로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거대한 조형물이 나타난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과 그 앞바다에 조성한 조각 ‘상생의 손’이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1999년 12월 세운 상생의 손 조각은 본래 두 개다. 대부분 사진으로 봤던, 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 거대한 손이 ‘오른손’이고, 나머지 ‘왼손’은 육지공원광장에 있다. 이 사실 알게 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손가락 끝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은 모양새가 고즈넉하다. 호미곶에는 ‘상생의 손’ 외에도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새천년기념관)와 그림 같이 예쁜 등대가 있는 국립등대박물관도 있다.

호미곶을 나와 구룡포까지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해변을 따라 도착한 구룡포에는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역사거리. 구룡포항 인근 구룡포우체국을 돌아들어 가는 작은 골목. 안으로 일본식 목조건물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어부들이 황금어장인 이곳 구룡포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거리다. 당시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들이 한 세기가 지나도록 작은 골목길을 사이로 두고 머리가 맞닿을 듯 서 있다. 우리가 흔히 ‘적산가옥’이라 부르는 건물이다.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지어진 일본인들의 집. 목조가 주를 이루며 군더더기 없는 외형과 창이 많은 점 등이 특징이다.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포항운하와 크루즈. 지난해 3월 개통한 포항운하는 형산강과 동빈내강을 잇는 길로 물길이 원활해져 수질이 좋아졌다.


◇다시 뚫린 물길 위에 낭만도 흐른다…포항운하

포항 도심 경관이 확 달라졌다. 지난해 3월 포항운하를 개통하면서다. 형산강과 동빈내강을 잇는 길이 1.3㎞, 폭 15~26m의 포항운하는 지난 40여년 동안 끊겼던 물길을 다시 잇기 위해 뚫었다. 운하가 개통되면서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송도동은 섬이 됐고, 물의 흐름이 원활해져 수질이 좋아졌다. 운하 주변은 군데군데 설치미술 작품이 있는 깔끔한 산책로로 탈바꿈했다.

포항운하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포항크루즈를 타는 방법이 가장 좋다. 포항크루즈는 A코스와 B코스로 운항한다. A코스는 크게 도는 코스로 약 8㎞, 40분 정도가 걸린다. 요금은 1만원. B코스는 기상이 안 좋을 때 A코스를 줄여 단축 운항하는 코스. 왕복 6㎞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6000원.

포항운하관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작은 배를 타고 아기자기한 도심을 유랑하는 맛이 제법 낭만적이다. 승선 전에 선장이 ‘새우맛 나는 과자’를 사라고 호객하는데, 미리 사오지 않았다면 이때 무조건 사는 게 좋다. 이 과자 덕에 몰려드는 갈매기에 잃어버린 동심을 찾을 수 있다. 크루즈는 파도가 높은 날을 제외하면 운하, 요트 계류장, 포항함 체험관, 여객선 터미널을 거쳐 영일만의 넓은 바다로 나간 뒤 다시 포항운하관으로 돌아온다. 포항운하관에는 포항운하의 복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운하전시관과 바다 쪽으로 큰 창이 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바다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그윽하다.

철규분식 찐빵. 고급스럽지 않은, 그래서 더 인공적이지 않아 더 정감가는 맛이다.


◇여행메모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해 대구까지 가서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간다.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서 김천으로 가서 김천∼포항 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4월 초에는 포항까지 가는 길이 가까워진다. 코레일이 4월 2일부터 서울역~포항
역을 잇는 KTX를 20여편을 운행한다.

△묵을 곳= 지곡단지 내 숲 속 영일대호텔(054-221-9452~3)이 자리하고 있다. 포항제철소를 건설하는 동안 숱한 귀빈들이 다녀간 포항의 역사가 담긴 숙소다.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아예 이곳을 숙소 삼아 제철소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포항을 방문할 때면 이곳에서 주요 인사를 만나고 업무도 처리했고 김수환 추기경도 생전에 다녀간 포항의 ‘명소’다.

△먹을 곳

▷철규분식(054-276-3215)=구룡포초등학교 앞 50년 전통의 찐빵집이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특이한 점은 찐빵을 단일메뉴로 먹을 확률이 거의 없다는 점.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주인장의 “찐빵 없어요”가 먼저 울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마시길. 일단 국수나 팥죽을 시켜놓고 찐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기다림의 끝은 달콤한 전통 팥빵. 국수(2000원), 팥죽(2000원), 찐빵(3개 1000원)이다.

▷다미촌(054-283-0046)=생고기 전문점이다. 육회와 뭉태기, 갈비살이 대표음식. 하지만 생고기보다 유명한 것은 바로 이곳 주인장인 함순복 씨다. 일명 ‘폭탄주 달인’으로 불린다. 모 주류회사에서 명예홍보대사 1호로 선정했을 정도. 총 여섯 가지 폭탄주를 제조하는데 단골을 위한 주인장의 특별 서비스인 셈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칵테일 제조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선대에서 바라본 영일만 전경. 영일만은 동쪽에 돌출된 호미곶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 일대에 해안단구가 잘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925번 지방도를 타면 길 옆 반대 연안으로 포항제철소와 포항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925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갯가 둑 위로 난 좁은 샛길로 들어서면 과메기와 오징어를 덕에 척척 걸어 놓는 촌부의 활기찬 손놀림도 볼 수 있다.
925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갯가 둑 위로 난 좁은 샛길로 들어서면 과메기와 오징어를 덕에 척척 걸어 놓는 촌부의 활기찬 손놀림도 볼 수 있다.
구룡포과메기 덕장.
호미곶 전망대에서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여행객.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전경. 양 쪽 건물이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닿을 듯 서 있다.
포항크루즈로 몰려드는 갈매기떼.
포항크루즈로 몰려드는 갈매기떼.㎦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포항운하의 포항크루즈.
포항운하의 야경. 운하 주변으로는 군데군데 미술 작품이 있는 깔끔한 산책로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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