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추상의 정도가 노골화된 현대예술에 이르러서는 대중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판이하게 바뀌었다. 그들은 표현방식의 고려를 통해 대중의 이해를 돕기보다, 관람자가 직접 자신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난해하고 황당한 구성물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될 수 있는 것도 이같은 개념의 전환 때문이었다.
현대예술 이후 등장한 팝아트는 이같은 상충된 예술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자연주의적 묘사를 지양하는 점에서 팝아트는 분명 현대예술이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현대예술 특유의 불친절함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동대문디자인플라자, 3월17일까지) 미국 출신 작가 키스 해링 역시 이같은 대중적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작품 활동을 한 팝아티스트다.
해링은 자기 작품의 대중성을 자랑스러워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술은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대단히 대중주의적인 예술관을 표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이 “보편적이며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해링의 신념은 그의 대표작인 ‘아이콘’ 연작이 오늘날까지도 인기 상품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통해 사실로 증명된 건지도 모른다.
사실 해링의 그림을 전통적인 ‘아름다움’, ‘장대함’의 관념으로 바라본다면 실망할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해링의 이름이 예술사에 큰 흔적을 남긴 데는 그의 작품 자체가 가지는 충격보다 그가 주도한 예술 유통 방식의 혁신이 더 큰 영향을 미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이라는 딱지가 보통 사람들을 상대로 한 판촉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작가 중 한명으로서, 해링은 앞으로도 대중적 명성을 유지하는 예술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170점 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이번 국내 전시 관람은 그 가능성을 직접 확인할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