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피해에 회사 폐업”…피해자 증언으로 본 키코 사태 3대 쟁점

  • 등록 2019-04-15 오전 6:00:00

    수정 2019-04-15 오전 9:41:48

황택(오른쪽에서 셋째) 원글로벌미디어코리아 대표가 지난 2014년 7월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터넷TV 플랫폼 개발 공급 계약 서명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황택 대표 제공)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국내 최대 인터넷 TV(IPTV) 수출 기업으로 국무총리상을 받은 원글로벌미디어는 2014년 인도네시아 최대 통신사인 텔콤과 모바일 IPTV 플랫폼 개발 공급 계약을 맺었지만 기회를 날렸다. 은행이 판매한 파생 금융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큰 손해를 입으면서 재무 상태가 나빠지고 이로 인해 100억원대 투자가 무산돼서다. 한때 연 매출 700억원에 달했던 원글로벌미디어는 결국 2016년 폐업했다.

황택 전 원글로벌미디어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키코 계약 때문에 입은 손해가 은행에 낸 이자, 담보 처분한 부동산 등을 포함해 200억원이 넘는다”며 “회사를 성장시킬 기회를 놓치고 문까지 닫아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다음달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를 열고 원글로벌미디어 등 키코 피해 기업 4개사의 분쟁 조정 안건을 상정해 심의할 예정이다. 황 전 대표 인터뷰를 통해 분조위 논의의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①은행은 적합한 상품을 팔았나

키코는 은행이 과거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는 중소기업 등에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판매한 파생 금융 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수준 내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로 은행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그 이상이면 반대로 은행이 기업의 외화를 시세보다 싸게 사들이는 구조다. 금감원 조사 결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치솟으면서 기업 738개사가 3조2247억원 규모 손실을 보았다.

금감원이 문제 삼는 것은 은행이 기업 사정에 비춰 적절한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현행법상의 ‘적합성 원칙’과 상품의 투기성·위험성 등을 알려야 하는 ‘설명 의무’를 지켰는지 여부다. 대법원이 지난 2013년 “키코 판매는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고 판결한 만큼 상품 자체의 불공정성은 분조위 심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황 전 대표는 “회사가 체결한 키코 계약 금액이 수출액보다 훨씬 컸다”며 “은행이 회사 규모에 비해 과도한 금액의 계약을 권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글로벌미디어는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과 2007년과 2008년 키코 계약 2건을 맺었다. 계약 금액은 모두 3000만 달러에 이른다. 당시 원글로벌미디어의 매출액은 연간 100억원 규모였다. 은행이 회사의 매출을 잘 알면서도 수출 금액의 3배가량에 달하는 외화 교환 계약을 유도한 탓에 환율 상승 시 손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은행 측은 개별 지점이 기업의 매출과 적정 파생 상품 계약 규모 등을 상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한다.

②은행은 투자 위험성을 설명했나

은행이 기업에 적정 규모를 초과하는 키코 계약의 투기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했는지도 쟁점이다.

황 전 대표는 “당시 신한은행 양재지점의 A지점장이 ‘영업 실적을 올려야 하니 도와달라’며 키코 계약을 권유했다”면서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은 키코밖에 없다고도 했다”고 회상했다. 환율이 올라가면 기업이 보유한 외화를 시세 대비 헐값에 은행에 넘겨야 하는 투자 위험성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적합성 원칙과 함께 금융회사의 설명 의무 위반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금융사가 영업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파생 금융 상품의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고객에게 ‘밀어내기’식 투자 권유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③기업은 책임없나

또 다른 쟁점은 키코 계약을 맺는 기업의 책임은 없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3년 삼코, 세신정밀 등 중소기업에 키코 상품을 판매한 KEB하나은행과 신한은행 측에 전체 기업 손해액의 35%, 30%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은행이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를 위반했지만, 피해 기업도 손실 가능성을 미리 인지하는 등 일부 과실이 있다고 보고 손해 배상액을 감면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모나미와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현 SC제일은행)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경우 은행이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기업 패소를 확정했다. 기업이 금융 투자 이익을 목적으로 키코에 가입했다면 손실에도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금감원 분조위가 키코 판매 은행이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려도 기업이 손해액 전부를 돌려받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은행의 최종 배상액은 분조위에서 결정하는 만큼 이 부분이 분조위 논의의 주요 법적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를 두고 황 전 대표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재무적인 노하우가 없다”며 “은행이 어리숙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복잡한 파생 상품을 팔아 이익을 챙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키코(KIKO)

은행이 2007~2008년 국내 수출 기업에 집중적으로 판매한 파생 금융 상품.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로 은행에 외화를 팔아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일정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면 기업이 약정액의 2배를 미리 약속한 환율로 은행에 팔아야 해 큰 손해를 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달러·원 환율이 치솟으면서 738개 기업이 3조2247억원(2010년 6월 기준)의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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