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관점에서 주목할 시기는 13세기 초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의 ‘소빙하기’이다. 13세기 초 소빙하기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중앙아시아 목초지대가 급격히 감소한다.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몽골 지도자 칭기즈 칸은 정복 전쟁을 시작한다. 금나라를 정복한 칭기즈 칸은 이슬람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결국 아시아와 유럽을 뒤흔든 칭기즈 칸의 신화는 기후변화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몽골군은 성문을 걸어잠근 이슬람과 유럽 군대를 공략하기 위해 전염병으로 사망한 시체를 성안으로 던졌다. 이때 몽골이 사용한 전염병이 바로 흑사병이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나무가 없고 풀이 많은 스텝 지대에서 발생했다. 기후변화에 생존을 위해 변이한 전염병이 기후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복전쟁을 펼친 인간 숙주를 따라 전 세계에 퍼진 것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도 소빙하기는 이어졌고, 흑사병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흑사병 앞에 성직자도, 왕족도, 귀족도 속수무책이었다. 자신들과 똑같이 흑사병으로 죽어나가는 성직자들을 지켜본 평민들은 평등사상을 깨우치기 시작한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지배한 가톨릭 중심의 권력체제를 붕괴시키는데, 그 시발점은 1517년 독일 수도사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신실한 가톨릭 수도사였고, 신구교간의 물리적 충돌을 막으려 노력했다. 종교개혁을 종교전쟁으로 확대시키는데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분노한 농민들이었다. 기근으로 고통 받던 독일 민중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신교 세력에 흡수된다. 결국 신구교간에 벌어진 30년 전쟁에서 패배한 신성로마제국이 붕괴하고, 베스트팔렌에서 ‘국가’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조선도 명나라를 무너뜨린 소빙하기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종 11년(1670년) 이상 기온이 발생하면서 경신대기근이 일어난다. 현종실록에 지진, 역병, 냉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조선 인구 1200만 중 90만~1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수치는 70년 전 임진왜란 사망자의 4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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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기후변화와 팬데믹이 권력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도 예외가 아니다. 각국 수뇌부는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는 한편, 이번 사태가 정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은 3월 개최 예정이던 양회 일정을 4월로 연기했다. 1978년 양회가 정례화 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은 코로나19를 ‘보이지 않는 적’으로 지칭하며 전시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와 유가폭락으로 자신의 자랑거리인 경제 부흥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는 지난 2월 코로나 특별대책반을 구성하고, 매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실 코로나19에 의한 정치적 파장이 가장 큰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코로나 사태 한복판에서 총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정치적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는 코로나 사태로 더욱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무후무한 국가적 위기에 전문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정치적 선동만 난무하고 있다. 그들이 던지는 달콤하거나 살벌한 주장들 어디에도 국민의 안위는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이다. 다만 기존 생태계에 처음 선보였을 뿐이다. 이번 팬데믹을 거치면 살아남은 인류는 면역성을 갖게 되고, 신종 코로나는 ‘신종’이라는 접두어를 떼고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생태계에 정착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각 국가들은 코로나19가 초래한 새 시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치열한 레이스를 펼칠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대한민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승리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