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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세영(여·31) 씨는 최근 경복궁 옆에 있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평소 영화보는 것이 취미였던 이씨가 극장이 아닌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영상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에는 장 뤽 고다르와 장률, 지아장커 등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던 유명감독의 영화들을 서울관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서울관 내 필름앤비디오실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내 미공개영화와 미디어작품을 감상하게 됐다.
◇장르파괴 영역파괴…융복합콘텐츠 멀리 있지 않다
최근 ‘융복합콘텐츠’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정부까지 나서 융복합콘텐츠에 지원을 몰겠다고 한다는 얘기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창조벤처단지를 만들고 카이스트의 융합교육센터도 문을 열었다. 그런데 융복합콘텐츠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막연히 각 분야와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장점을 섞어서 새롭게 만들어낸 콘텐츠라고 할 뿐이다. 보다 구체적인 힌트는 미술관과 박물관에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조직들이 발 빠르게 융복합콘텐츠의 모델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3년 11월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애초 설계 당시부터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다른 방향으로 지어졌다.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는 7개의 전시실 외에도 최신 영사시설을 갖춘 영화관 필름앤아트와 융복합작품의 전시를 염두에 둔 멀티프로젝트홀과 미디어작품을 볼 수 있는 미디어랩 등을 갖춘 것이다. 30여년 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설이다. 덕분에 서울관은 회화와 조각 등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작품뿐 아니라 여러 장르를 이종교배한 작품의 전시가 가능해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서양에서 만들어진 ‘청바지’를 소재로 기획전을 꾸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바지는 서양문화의 상징이자 한국에서는 1970년대 청계천 일대 등 봉제공장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수출품이기도 했다. 박물관은 이에 대한 민속학적 접근으로 새로운 전시콘텐츠를 얻어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서소문본관에서 ‘세마 하이파이 비피엠’을 열어 젊은 관람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세마 하이파이 비피엠’은 국내 최초로 미술관에서 펼치는 레이브파티(전자음악파티)로 다양한 장르의 실력 있는 국내 DJ들이 전자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3개의 전시장 공간에서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연하는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변지혜 서울시립미술관 홍보담당은 “영화·음악·퍼포먼스 등 장르의 협업을 통해 융복합콘텐츠의 개발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당시 1000명 이상 시민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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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콘텐츠는 결국 다양한 장르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이종교배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런 측면에서 예술과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다큐멘터리와 미디어아트를 혼합한 작품이었다. 예술영역의 이종교배를 통해 노동문제에 대해 새롭게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인숙 한국콘텐츠진흥원 융합전략기획본부장은 “20세기 IT혁명 이후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융복합콘텐츠 창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며 “예술분야에서 융복합이 선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분명한 만큼 이 과정에서 뚜렷한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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