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일본은행 발표 후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일본 재무성은 “일본은행과 함께 엔화는 사들이고 달러는 팔겠다”며 환율개입에 나섰다. 금융완화와 환율개입이라는 손발 안 맞는 정책을 동시에 실시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결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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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부터 이틀간 치러진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지켜보는 총리관저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달러당 115엔 수준이던 엔·달러 환율은 엔화의 끝없는 추락에 140엔대까지 올라섰다.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신선식료품을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까지 올랐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원망에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출범 1년 만에 곤두박질쳤고 설상가상으로 자민당-통일교 유착 문제까지 불거졌다. 미국이 올 들어서만 평소의 세 배인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는데 구로다 총재는 기존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간 겐다이에 “이대로 일본은행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기시다 총리는 구로다 총재에게 ‘얕보이고 있다는(なめられている) 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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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이 이번에도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건 22일 정오께. 일본 정부도 환율개입 가능성을 넌지시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 1시30분쯤 칸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이 취재진에 “(환율 개입은) 스탠바이 상태”라며 “언제든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다.
오후 3시30분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친 구로다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발언한 뒤 오후 5시 재무성은 약 3조엔 규모의 환율개입을 밝혔다. 같은 시각 방미 중이던 기시다 총리도 뉴욕증권거래소를 찾아 “1년간 엔화 가치가 30엔 넘게 떨어졌는데 이런 일은 과거 30년간 없었다”며 “과도한 변동에 대해선 단호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환율개입에 힘을 실었다.
기시다 정부 지지율 하락 주범으로 몰린 구로다 총재가 한 방 먹었다는 평가다. 한 시장 관계자는 “금융완화 유지와 엔 매수 개입은 모순되는 정책”이라며 “반쪽짜리 정책을 실시하게 된 건 구로다 총재의 결정에 관저가 노를 들이댄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일본은행도 발끈했다. 3일 공개된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 발언 주요 내용에서 한 위원은 “금융정책을 운영하는 데 있어 환율은 직접 통제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외환시장 개입을 담당하는 두 축이 정부와 중앙은행이긴 하지만, 일본은행을 이번 환율개입에 끌어들인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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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치 돈을 쏟아붓고서라도 엔화 가치를 올리려던 일본 정부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달 30일 재무성은 8월30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간 환율개입 실적액이 2조8382억엔(약 28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급등한 날은 환율개입을 단행한 22일 하루뿐이라 모두 이 날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엔화 가치는 개입 당일 5엔 내린 140엔대를 기록했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144엔대로 오르며 제자리걸음했다.
역대급 엔화 매입에도 엔화 가치가 좀처럼 오르지 않으면서 일본 정부가 두 번째 시장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나온다. 다만 전망은 밝지 않다. 오버시즈파이니즈뱅킹콥(OCBC) 전략분석가 크리스토퍼 웡은 블룸버그통신에 “당국이 개입할 수는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국가들과의 공조가 없는 한 개입 효과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