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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서 나눔을 찾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오죽하면 현 정부 금융정책 방향을 `포용적 금융`으로 정했나 싶다. 불가능해 보인 일에 도전한 이는 손영채(47·행정고시 42회)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이다. 1998년 행정 고등시험에 합격하고 줄곧 금융정책 당국에서 근무해온 베테랑이다. 그가 덧셈과 뺄셈, 곱셈, 나눗셈으로 금융을 네 갈래로 해부했다. 금융방정식_사칙연산으로 보는 금융의 원리. (나남. 307쪽. 2만원)
왜 사칙연산을 끌어왔는지 물었다. “누구나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쉽게 쓰려고 빗댔습니다.” 미국 세계은행에서 유학하던 2015년 겨울, 샌디에고에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차를 몰고 가던 길에 생각했다고 한다. `이 길이 뺄셈 기호를 닮았다. 삶도 이 길처럼 뺄셈이다.` 이후 사칙연산을 우리네 금융활동에 갖다 붙여 삶에 비유했다.
나눗셈을 쓰는 게 어려웠던 이유는 이것이 금융의 핵심인 까닭이라고 했다. “금융시장 질서는 시장 참여자가 자기의 분수(分數)를 지키는 데 달렸기 때문입니다.” 나눗셈을 달리 표현한 게 분수다. 수학 기호 분수와 `분수를 지킨다`는 말에서 분수는 같은 한자를 쓴다. 나눗셈을 모르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분수를 지키지 못한다고 했다.
얘기는 대출(나눗셈)로 이어졌다. “대출로 얻는 기회비용은 이자율 이상으로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소비(뺄셈)와 소득(덧셈), 저축(곱셈)에 대한 기회비용은 덜 쓰거나, 덜 벌거나, 덜 모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대출(나눗셈)은 △빚 독촉 △고금리 △차압딱지 △신용도 하락 △소송 등 결과가 따른다. “나눗셈의 기회비용을 정확히 모르고 남의 돈을 만지면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공무원이 책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손 과장처럼 담당하는 정책과 관련 분야라면 더 그랬다. 자칫 금융위 관료 시각이 시장에 선입견을 줄 수 있다. “책을 쓰기까지 굉장히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왜 썼냐고 했더니, 미소금융의 잔상 탓이라고 했다. 책을 쓰기로 처음 다짐한 게 2010년이다. 세계은행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2016년 9월부터 쓰기 시작해 지난달 탈고했다. 초판 10권이 나오고 금융위원회 최종구 위원장과 김용범 부위원장에게 직접 갖다 줬다. `금융위 일이 한가하냐`는 말 듣기 싫어서 티 내고 쓰지도 못했다. “주말이랑 휴일에 집에서 책만 썼죠. 좋은 말 들었을 리가 있었겠습니까.”(하하) 베테랑 관료이자 작가일지 몰라도, 좋은 남편이자 아빠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