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시간은 각자 다르게 흐른다

  • 등록 2020-01-08 오전 5:57:00

    수정 2020-01-13 오후 6:50:27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올해 금융권의 화두는 ‘생존’이다. “앞으로 10년은 과거의 10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앞으로가 “생존의 시험대”(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변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관행과 습관이 늘 발목을 잡는다.

새헤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다. 교보생명이 전 직원을 상대로 직무급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권 중에서 처음이다.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죄다 호봉제다. 호봉제는 연공서열 중심이다. 연차가 쌓이면 월급도 자동으로 올라간다. 내가 무슨 일은 하건 월급과는 큰 상관이 없다.

우리니라의 연공서열은 그 정도가 심하다. 기업의 30년 일한 직원의 평균 임금은 신입사원의 3.3배(고용노동부 조사, 2015년 기준)의 월급을 받는다. 일본(2.5배), 독일(2.1배), 유럽연합(1.7배)보다 훨씬 높다.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호봉제 폐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할 정도로 호봉제를 두고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다. 노동운동을 했던 홍영표 민주당 의원도 “지금까지 연공서열의 호봉제 임금체계였다면 앞으로는 직무급으로 가야한다”고 거들었다.

직무급제는 연차에 따른 직급이 아니라 ‘직무’에 따라 임금을 산정하는 제도다. 그 직원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받는 월급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올해부터 교보생명에선 같은 대리 직급이라도 누구는 연간 60만원의 성과급을 받지만, 맡은 업무가 지점장급 직무라고 판단하면 성과급 규모가 264만원으로 껑충 뛴다. 하는 일이 어려우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성과급이 깎이는 직원도 나온다. 일단 기본급의 5% 수준만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차차 범위를 넓혀가갈 예정이다.

시간의 질은 다르다

교보생명 노동조합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세부 사항에 이견이 있는데 회사가 동의 없이 강행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성과급이 달라지는 상황을 반기는 노조는 없다. 연대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럼에도 회사측은 직무급제를 강행할 분위기다. 교보생명의 한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독일의 데카방크라는 은행을 찾아가봤어요. 유럽에서는 이미 직무급제가 완전히 정착돼 있었습니다. 임금의 80%만 기본급으로 받고, 나머지 20%는 개인별 직무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문화였어요.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들에게 도전적인 목표의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직무급제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직무급제의 취지는 일한 시간뿐 아니라 업무의 난이도를 함께 고려하자는 정신이 깔려 있다. 근로시간에 따른 기계적인 평가와 보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같은 시간을 근무했다고 해서 다 같은 일은 한 건 아니잖아요. 일의 시간이 같더라도, 보낸 시간의 질이 서로 다른 것 아닙니까.”

생존이라는 화두 앞에 놓인 금융회사들은 저마다 혁신을 꾀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한국 금융업계의 시계는 각자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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