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TMI]‘1조원대 계약 무산’…한미약품 불성실공시인가요?

얀센과 계약 당시 자율로…일반 계약 공시와 형태 달라
임상 불확실성 높아…계약금액 중 확정·조건부 구분해야
계약 해지 시 거래소가 귀책사유 판단해 제재 등 결정
  • 등록 2019-07-07 오전 10:10:04

    수정 2019-07-07 오전 10:10:04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갖가지 악재가 몰렸던 한주가 지났습니다. 별안간 일본은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소재를 제한하겠다고 나섰고 미국의 무역분쟁은 유럽으로도 번졌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아픔을 안겨줬던 소식은 제약·바이오 분야서도 나왔습니다. 한미약품이 해외에 팔았던 신약 기술이 반환됐고, 코오롱생명과학의 치료제는 최종 허가 취소 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기술의 수출 계약과 해지에 대한 공시는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요?

계약 규모 큰데 왜 의무 공시 아닐까

한미약품은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파트너사인 얀센이 2015년 11월 6일 계약 체결로 확보한 비만·당뇨치료제(HM12525A) 권리를 반환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습니다.

계약 당시 공시를 보면 한미약품은 얀센으로부터 계약금 1억500만달러와 임상시험, 시판허가, 매출단계별 성공에 따른 마일스톤(기술료)으로 최대 8억1000만달러를 지급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조원대 계약이 무산됐습니다. 다만 한미약품이 이미 수령한 계약금 약 1230억원은 반환하지 않아도 됩니다.

보통 일반 기업들은 매출액 일정비중 이상 규모의 계약을 하면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합니다.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이라는 항목이죠. 계약 내용(금액, 기간, 상대방)과 최근 매출액대비 비중 등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제약·바이오 기술 이전 공시는 형식이 약간 다릅니다. 이번에 무산된 한미약품 계약은 ‘기술도입·이전·제휴 계약체결’ 항목으로 자율 공시했습니다. 계약 규모가 1조원인데 왜 의무 공시가 아니었을까요? 이는 계약금 중 상당부분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한국거래소 설명입니다. 당장 매출로 인식하게 되는 계약금만 놓고 보면 의무 공시할 규모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제약·바이오산업이 점차 커지고 있고 시장 파급효과도 확대되는데 기술 수출 공시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네요.

투자자 입장에서도 기술 수출 공시를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약품의 경우 얀센과의 계약상 임상이 성공해야만 9400억원대의 마일스톤을 받는 것인데요. 시장에서는 이미 상용화가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거래소도 기술 수출 계약 공시의 혼선을 막기 위해 지난해 8월 가이드라인을 정했습니다. 계약금액을 확정과 조건부로 나눠 공시토록 한 것이죠. 예를 들어 지난 1일 유한양행(000100)의 총 1조원 규모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기술 수출 계약을 보면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은 470억원선입니다. 나머지는 임상에서 성과를 내야만 얻을 수 있는 ‘러닝 개런티’입니다. 당장 1조원대 매출 예상은 너무 앞서나간 ‘희망사항’입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이미지=이미지투데이 제공)
기술 반환 or 계약 해지? 결국 ‘같은 뜻’

제약·바이오업체의 기술 수출 계약은 무산되는 과정도 일반 공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기업들은 계약이 해지됐다면 ‘단일판매·공급계약해지’ 공시를 통해 알립니다. 이 또한 의무 공시 사항입니다.

이번 한미약품 공시를 보면 기술 수출 계약이 사실상 취소됐음에도 ‘해지’가 아닌 ‘반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회사측에 따르면 기술 계약 해지라고 쓰게 될 경우 얀센에 넘겼던 기술 개발 자체가 무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기술 이전 계약의 해지’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단일판매·공급계약과는 공시 형태가 달라 이처럼 유연한 공시도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래소에서도 기술 반환에 대해 계약 해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특별히 ‘계약 해지’라고 따로 적을 필요는 없다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드는 의문은 계약이 해지됐을 때 상장사가 받을 수 있는 제재 여부입니다. 보통 상장사들은 단일판매·공급계약해지를 공시를 내면 이후 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공시번복’입니다. 이미 냈던 계약공시를 취소해 시장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죠.

그러면 1조원대 계약이 무산된 한미약품도 불성실공시법인이 될까요? 아마 그러긴 쉽지 않을 겁니다. 계약 취소의 귀책사유가 한미약품이 아닌 얀센에게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얀센이 한미약품의 기술을 가져와 임상을 해봤는데 생각한 만큼 효능이 나오지 않으니, 마일스톤은 지급 안하고 기술을 다시 반환한 사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귀책사유가 회사에게 있다면 제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판단하는 주체는 거래소가 됩니다. 거래소 담당 팀장은 이에 대해 “단일판매·공급계약 의무공시뿐 아니라 자율공시라고 하더라도 계약의 해지 여부에 대해 불성실공시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며 “단순히 계약이 해지됐다고 무조건 불성실공시로 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2015년 일명 한미약품의 ‘잭팟’ 이후 제약·바이오기업의 기술 수출 계약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실패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초반 계약 소식에 흥분하기보다는 시장성과 실현 가능성까지 살피고(전문가 진단도 참고하면서) 신중하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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