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 당했어요"…육아휴직 의무 시행한다지만 현실은

서울시, 공공기관부터 단계적 육아휴직·출산휴가 의무 시행
소규모 사업장, 임산부 권고사직 팽배…"타의로 외벌이 부부"
배우자 육아휴직 시 월 212만원 지원…평균 생활비에도 못 미쳐
"경력단절 해결 못하면 복지 좋은 회사 다니는 여성만 도움될 것"
  • 등록 2023-06-02 오전 7:00:00

    수정 2023-06-02 오전 7:39:25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서울시가 1일 시와 산하 투자·출연기관을 시작으로 민간에까지 배우자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임산부들을 향한 권고사직이 여전히 팽배한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배우자의 육아휴직도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란 토로가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시는 일·생활 균형 3종 세트를 시행한다고 1일 밝혔다. 주요 내용은 △배우자 출산휴가(10일) 의무사용 △눈치보지 않는 육아휴직 사용 분위기 조성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서면권고(연1회) 등이다. 시행일자는 서울시는 이날부터, 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은 오는 9월 1일부터 시행하고 단계적으로 민간기업으로 확산을 유도한다.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배우자 출산휴가 의무사용제는 직원 신청 없이도 사업주가 10일의 출산휴가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남성의 육아 참여를 보장하자는 취지다.

서울시의 이같은 정책에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정작 임신으로 ‘권고사직’ 등을 경험한 이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출산 현상 심화로 배우자의 육아휴직 활성화 등 분위기가 일고 있지만, 정작 ‘임신=경력단절’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아서다.

실제 오는 9월 출산을 앞둔 A씨(31)는 임신 7주 만에 서울에 있는 소규모 마케팅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받았다. A씨는 임신 판정을 받고 초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사 말에 단축근로를 신청했으나, 회사는 출산 후 육아휴직 사용 유무 등을 꼬치꼬치 캐묻다 끝내 에둘러 사직을 권고했다.

A씨는 “임신해도 자아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계속 회사를 다니고 싶었고, 그래서 단축근로를 신청했는데 회사는 사직을 권고했다”며 “회사의 그런 반응을 보니 내가 버티면서 다닌다고 달라질 것 없을 것 같다 그만뒀다”고 토로했다.

근로기준법 제74조에 따르면 사용자(회사)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때 사용자는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단축근로 허용 대신 임산부 권고사직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한 사업주에 대해 1인당 월 30만원을 지원하며 독려에 나서고 있으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지원을 받는 대신 사직을 권고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규모 사업장에 다니며 9월 출산을 앞둔 B(29)씨도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 단축근로를 신청하면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한다는 오픈채팅방의 말을 듣고 버텼지만, 회사에서 먼저 잠시 쉬고 오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이처럼 임산부의 경력단절은 자연스레 배우자가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배우자가 육아휴직을 쓰면 정부 지원으로 월 통상임금의 80%, 최대 150만원(이때 25%는 복직 6개월 이후 일시금으로 받음)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서울시 기준으로 일부 자치구에서는 30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올해 만 0세 기준 부모급여로 월 7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월 금액으로 따지면 총 212만 5000원 수준이다. 이는 서울연구원이 2015년에 조사한 2인 가구 평균 생활비 230만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B씨는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받아 타의로 외벌이 부부가 됐는데, 배우자가 육아휴직을 쓰면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라며 “임신이 곧 경력단절이라는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배우자 육아휴직은 복지가 좋은 일부 기업에 다니는 여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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