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②'경제 원로' 박승 전 한은 총재에게 길을 묻다

활력잃은 한국경제, 기업 뛰놀게 해야 위기 벗어나
소득 성장 치우친 文정부, 생산성·경쟁력 강화 소홀
노동·규제개혁으로 기업 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최저임금 인상 틀은 맞지만, 정부 보전은 신중해야
증세는 불가피…복지·세금 '5년 로드맵' 만들어야
  • 등록 2018-01-01 오전 4:00:00

    수정 2018-01-01 오전 4:00:00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6일 서울 평창동 자택 인근 한 호텔에서 이데일리와 신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보수와 진보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시대다. 정치는 물론 사회·경제 모든 분야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 집권 이후 경제정책의 틀이 과거 보수 정권과 비교해 확 달라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대화와 타협을 기반으로 통합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데일리가 팔순(八旬)이 넘은 노(老)경제학자를 찾은 것도 갈등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박승(81) 전 한국은행 총재는 대표적인 한국 경제 원로이자 중도 실용주의 인사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 자문위원장을 지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인 이른바 ‘제이(J)노믹스’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분명히 하려는 듯 보였다. 그는 “청와대에 가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면서 “(특정 자리를 맡지 않고) 여든이 넘은 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파수꾼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전 총재와의 신년 인터뷰는 지난 26일 서울 평창동 자택 인근 한 호텔에서 1시간30분여 동안 진행됐다.

“소득 주도 성장론, 속도조절 필요”

-지난해 3% 성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위기라는데.

△우리 경제는 양과 질 양면에서 위기라고 본다. 과거에 있었던 그런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다. 한 마디로 노화(늙음)를 막아야 하는 위기라고 본다. 우선 성장활력이 냉각되고 있다. 10년 전 만해도 성장률이 4~5%였는데, 지금은 반토막이 나 있다. 질적 측면에서 보면, 양극화나 빈부의 대물림 같은 구조적 불균형이 깊어졌다. 경제의 틀 자체를 고쳐야 하는 그런 과제를 안게 됐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전반은 어떻게 보는가.

△큰 흐름으로는 잘 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의 개혁 과정이니까. 다만 외교정책, 대북정책, 사회정책은 잘 하고 있다고 보는데, 경제정책은 조금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 어떻게 평가하는가.

△소득 주도 성장론은 저도 응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여러 면에서 소득 주도 정책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수출보다 내수 주도로 성장하자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소득보다도 가계소득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수출 주도 성장은 불가능하다. 대기업은 소득이 있어도 국내에 투자하지 않고, 국내 투자를 해도 고용 효과가 없다. 소위 낙수 효과 성장으로부터 소득 주도 성장으로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정부가 보전해주는 정책은 어떻게 보는가.

△앞으로는 복지를 늘리고 최저임금도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영세기업 문제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이게 실용주의 정책이다. 이번에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서 정부가 3조원을 들여 보전한다고 하는데, 이는 가급적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보전정책은 가급적 단기간에 끝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총공급 측면의 성장 엔진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면에서의 성장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의 성장정책, 즉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 기업의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 등은 따로 필요하다. 그런 정책은 4차 산업혁명의 추진, 벤처기업의 육성, 기술 혁신, 노동개혁과 노사관계 개선, 서비스업과 4차산업 분야의 규제 철폐 등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총공급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부분적으로 공급 측 성장정책이 소홀히 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은 필연이다. 그 길 아니고는 없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소득 주도 성장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우리 사회에) 많이 기여하지 않나. 대기업에 따뜻하게 해주고 동시에 사회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대기업이 사업하기 어려운데 그게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서 그렇다면, 그것은 정부가 잘못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통화정책에 의존해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경제는 시장기능에 의해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민간기업이 그런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 한다는데 있다. 민간기업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투자하더라도 고용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이래서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환류되는 길이 차단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 등 양극화 대책이 불가피한 단계에 있다.

-문재인정부 인사들이 역량은 충분히 있다고 보나.

△다 능력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고, 어쨌든 이번에 개혁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기업 활동을 재밌게 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줘야 한다. 규제 문제나 노동 문제 같은 것도 풀어줘야 한다. 대통령이 이번 재계 신년하례식에 안 나간다고 하는데, 그것은 조금 잘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6일 서울 평창동 자택 인근 한 호텔에서 이데일리와 신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文정부, 복지 5년 로드맵 만들어야”

-저출산 고령화 문제, 어떠한 견해를 갖고 있나.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 경제 노화의 최대 원인이라고 본다. 자녀가 많을수록 납세, 주택, 급여, 연금 등 모든 면에서 혜택을 줘야 한다. 노령화 문제는 단기적으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을 강화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고령화 시대의 필연적 복지 문제, 증세는 필요한가.

△문재인정부가 복지와 세금에 대한 임기 5년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걸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 결론적으로 전반적인 증세는 불가피하다. 증세는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부가가치세 순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법인세 역전 우려도 나오는데.

△종합적으로 볼 때 아직 판단이 어렵다. 다만 미국에서 대기업의 국내 투자가 급증하고 고용도 증가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감세정책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지 않나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법인세를 내려준다고 투자가 증가한다고 볼 수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제조업에서 투자가 일어나도 고용은 감소하고 있다. 법인세 감세가 일자리 창출과 국내 투자 증대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경제의 근본 틀이 바뀌는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 소비 정책도 과거 같으면 ‘소비 절약’ ‘저축 증대’다. 내가 한국은행 총재(2002~2006)였을 때 저축추진본부장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 없지 않나. 이제는 ‘소비 증대’ ‘저축 감소’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선성장 후복지 정책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교육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교육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수능시험 상위 30% 안에 든 저소득층 자녀의 경우 대학 4년간 등록금 전액 면제하자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문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하려고 한다.

-위기론이 많지만 우리만의 장점도 있다고 보는데.

△과거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만큼 경제 발전이 되고 민주화가 된 나라는 없다. 성취를 위한 민족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나라가 너무 분열돼 있는데, 정부가 국민통합을 이뤄주길 바란다. 민족적 에너지의 힘으로 경제발전을 계속 이끌어갔으면 한다.

대담=이익원 편집국장/ 정리=김정남 김정현 기자/ 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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